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디대디 Dec 28. 2023

관계회복 그리고 상처

돈. 못. 사. 시리즈 2편

오랜 기간 연애한 우리는 결혼 전, 

양가 부모님의 동의하에 작게나마 약혼식을 치르고 


난생처음 부동산계약을 한 뒤, 

작은 평수의 전셋집에서 약 6개월 간 혼전 동거를 하였다.  


연애하는 내 내, 

장거리 연애를 하다, 마침내

한 곳에서 같이 살게 된 우리.


처음에는 모든 게 좋아 보였다. 

근데, 

연애기간이 길어서였을까. 

오랜 커플이 의례 겪는 권태가 찾아왔다.


그렇게 

무관심으로, 

막상 몸은 가까워졌어도

마음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있어 본 것은 처음이기에,

퇴근하고 돌아와 자기 전까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오랫동안 연애하고 결혼하는 

그런 다른 커플들처럼 

이제 약혼도 했으니, 

더 이상 서로 피곤하게 줄다리기할 일도 


사소한 일도 다투고 

며칠간 연락두절되는 일도 없기에 

이제 다 되었다 싶었나 보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은 채 

퇴근 후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의지도 가지지 않은 채로 

티브이만 보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너는, 나랑 하고 싶은 게 없어?"


내가 말했다. 

"나는 티브이보고 싶은데. 같이 티브이 보자."


"티브이가 같이 뭘 하는 거야?, 도대체가."

"왜? 티브이 같이 보는 것도 같이 하는 거지. 나는 티브이가 좋은데."

"하... 아니다. 그냥 계속 봐."

"...."


"난 티브이 보는 게 취미야. 너도 취미를 가져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무책임한 내 발언을 끝으로

한동안, 퇴근 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벌써 7년 전 일이라, 

내가,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백번 생각해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 말은, 내 행동은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아내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을 것 같다. 


이것뿐이겠는가.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 


적당히 가공하고도 

남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음습하고, 부끄러운 내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때론 

나도 상처를 받는다. 


그게 사람이고,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도 잘 알지만, 


길을 가다 문득,

또는 자기 전에 문득,

그리고 내가 상처를 줬던 그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을 관통하여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게 하필.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냥 내 존재를 삭제하고 싶을 때가 간혹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어떻게 돼 먹었길래 그렇게 생각 없이 말했을까.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분명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 입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까. 


그중에 단 하나도 

상처가 되는 말이 없을까. 


그건 도저히 자신이 없다. 


평생을 벙어리로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번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망가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키기에는 

많은 시간이,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럽지만, 그리고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도,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어렵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변명이라도 좋으니

상대의 상처에 지속적으로 약을 바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입에서 

"이젠 끝이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늦기 전에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아내의 입에서 

"이제 끝이야"라는 말을 

두 번이나 듣고도 

아직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참. 용하다.


미성숙한 자아로 

단지, 

외로웠기 때문에 결혼한 나를 


어린아이처럼 떼만 쓸 줄 아는 

어리고, 장난기만 가득 찬 나를 


배우자로 맞아 

아직도 인내하며 살고 있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마다, 

간혹 그때의 일이 생각나 

차마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웃으며 두 팔 벌려 아내를 안으려 할 때에도 

아내가 싫어하는 건 아닌지 

눈치를 볼 때가 많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 상처들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철판을 깔고 

사랑한다고 말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그 무게가 너무나 무겁고 절절한 것이기에 


내가 사랑할 자격이 

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가끔은 

정말로 타임머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못난 말을 하는 내 입을 

어떻게든 막아버릴 테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왠지 찬장이 

-쿵 -쿵 되며

흔들리는 듯하다. ㅋ




작가의 이전글 근육 또는 건강 (건강 또는 근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