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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Oct 03. 2018

'굳이 그 날 그 곳에 가서 봐야 할'

전윤경 - SLEEP NO MORE, 지금껏 이런 공연은 없었다

1.

고객 경험, 사용자 경험, 독자 경험. 여튼 소비자의 '경험' 관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대세로 자리잡은지도 꽤나 오래됐다. 그 중에서도 대중문화 산업만큼 이런 소비자 경험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분야도 없을 것 같고. 그런데 왜 이렇게 '경험'이 중요시 되기 시작한걸까? 


물론 그 배경으로 '디지털화'를 쉽게 지목할 수 있다. 음악, 영화, 공연 등의 문화 콘텐츠들은 디지털화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언제 어디서든 소비할 수 있다면, 꼭 굳이 그곳(음악 감상실, 영화관, 공연장)에서 소비할 필요도 없어진다. 단지 콘텐츠를 시청한다는 행위의 가치도, 가격도 폭락한다.


그러자 생산자들은 평소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현장 콘텐츠의 차별점들을 하나씩 뜯어보고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소비자가 방을 나와서 영화관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의 현장감, 관람 이후에 귀갓길에 동반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터넷에서 관람평을 검색하는 등의 행위들 말이다. 이 콘텐츠는 내게 어떤 경험을 주길래 '굳이 그날 그곳에 가서' 그것을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디지털 시대 현장을 활용하는 콘텐츠의 고민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2.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도 경험이 부각되는 최근의 맥락에 놓여 있다. 슬립노모어는 객석과 무대가 나뉘어 있는 그런 식의 연극이 아니다. 핵심은 '관객의 현장 참여'에 있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활용하고, 100개가 넘는 수 많은 방에서 동시에 공연의 파편들이 상연된다. 관객은 이동하는 무대 및 연기자와 상호작용하며 시시각각 돌출되는 선택지를 따라 표류하면서도 나름의 추리를 통해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분절된 경험들을 관객이 새로 배열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해야 했던 기존의 영상 콘텐츠와는 분명 다르다.


이런 관객 참여적 콘텐츠는 콘텐츠 산업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얼마전 놀라운 퀄리티의 그래픽과 충격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유튜브 상에서 인기를 끌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인공지능의 시점에서 인간 세상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장면은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이 흘러가고 몇몇 분기점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를 플레이어가 선택한다.


이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도 단순히 스토리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형태는 게임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의 수동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에 게임적 요소가 부여된 콘텐츠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블랙 미러' 또한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나열하자면 정말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겠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단순히 참여만으로 뭔가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슬립노모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도 '그래서 이 공연의 목적은 뭐지?' 라는 부분에서 고개가 갸웃해졌다. 내 생각에 '공연의 선형성'과 '수동적인 관객'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타파해야 할 우상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트레이드 오프 관계다. 공연이 선형적이고 관객이 수동적일 수록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더욱 손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선형성과 수동성을 붕괴시키고 나서 그 대신 무엇을 얻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것이 '맥베스'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파편화 한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는 불완전한 체험에 그치는 거라면... 내용보다 외피의 참신함이 너무 부각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 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관객의 주체적인 해석과 다양한 경험'이라는 표현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3.

그래도 '슬립노모어'라는 소재 자체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아방가르드로 출발했지만 인기를 끌면서 더 이상 아방가르드가 아니게 되어버린 하나의 '현상'에 가깝다는 점에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건드린 콘텐츠는 이렇게 강력하다는 걸 증명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부가적으로 제시된 펀치드렁크의 다양한 협업 사례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현장성 넘치는 경험에 대한 대중의 선호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비즈니스적으로도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슬립노모어 브랜드를 넘어 펀치드렁크가 더 많은 기획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점도 쉽게 예측해볼 수 있었다.


4.

결국 내게 남은 질문은 이렇다. 왜 우리 대중들은 현실 속을 살아가면서도 더 많은 현실감을 찾아 헤메게 된걸까? 그러면서도 자꾸 현실 속에 더 많은 가상, 비현실을 뒤섞으려 하는가? 이건 어쩌면 "이거 실화냐?"라는 말 속에 숨어 있듯이, 우리 모두 느끼고 있는 현실감에 대한 갈증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적 가상, 가상적 현실. 이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은 없다. '현실감'이라는 단어를 다시 사유해야 할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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