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대표 - 북저널리즘 인터뷰
1. 이번 북저널리즘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리메즈 엔터 대표의 대답이다. 그는 현행 연습생 육성 시스템이 대체로 '젊음의 낭비'로 이어진다고 규정했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기획사 연습생은 대체로 미성년자이고, 외부와 단절된 채 강도 높은 관리와 훈련을 견딘다. 그럼에도 데뷔는 보장할 수 없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생존자에게 데뷔를 약속했지만 무산된 경우도 있다. 그게 심지어 대형 기획사인 YG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더 잔인한 건 냉정하게 정규분포로 따졌을 때 '될놈될 안될안' 일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자, 그러니까 이런 낭비 하지 말고 아티스트 육성도 '스타트업의 방법론'으로 좋아할 만한 팬들이 있는지 빨리 피드백 받아서 옥석 가리기, 일종의 그로스 해킹을 하자는 거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스포티파이가 자신들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 음악을 좋아할 만한 사람들에게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신인 아티스트를 키운 케이스(http://weeklybiz.chosun.com/…/html_dir/2018/11/29/201811290…)가 있다. 5년, 10년 죽치고 앉아 춤 노래 연습하는 것보다 나은 게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고, 그것보다 나은 게 차라리 이런 식의 테스트가 낫다는 발상이다. "경쟁은 연습생 시스템 안이든 밖이든 어디에나 있다. 100명에게 음악을 들려줬을 때 90명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단 10명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 그런 대중적인 피드백을 듣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에서 그래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고, 이런 측면에서는 분명 앞서 나가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하지만 의구심... 일말의 찝찝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컨대 그가 인터뷰에서 '마케팅'에 대해 말하는 대목은 조금 허전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리메즈는 SNS 마케팅으로 출발해 약 300여 팀의 가수 마케팅을 대행했고, '데이터를 수집해서 정량화한 건 아니지만' 노하우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노하우 중 하나가 "전주를 없애고 노래의 정체성을 바로 말해 주는 것"이라니. 음, 이게 숀, 장덕철을 1등 찍은 비결이라니. 이 정도 인사이트는 꼭 업계인이 아니라도 어렵지 않게 집어낼 수 있는 수준이고, 꼭 들어맞는 만능 열쇠 같은 비법도 아니니까. 시원스러운 대답은 못 된다. 유튜브, 넷플릭스(?), 텍스트 얘기도 썩 와닿지 않는다. 그들의 핵심 역량을 벗어나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문제의 핵심은 저런 디테일이 아니라 리메즈가 여전히 "이게 왜 1위?"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리메즈는 이런 의혹에 대해 일관되게 '팬덤'과 '일반 대중'이라는 이분법적 레토릭을 사용하는데, 예컨대 차트에서 역주행이든 정주행이든 리메즈 표 노래가 잘나가는 현상을 이렇게 해석한다. "팬덤은 소수의 문화다. (...) 1990년대의 아이콘은 서태지였지만 당시 신승훈, 김건모의 음반 판매량이 더 높았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 준다." 팬덤이 죽어라 음원사이트 안에서 스밍 돌려봤자 음원사이트 바깥에서 만들어낸 '대중픽'은 못 이긴다는 거고 리메즈는 그 '대중픽'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의혹의 눈초리는 그 대중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정작 그 부분은 여전히 SNS라는 단어로 퉁쳐진 채 블랙박스 속에 감춰져 있다. 변죽만 울리다 보니 '아니... SNS에서 떴다는데 난 SNS에서 그 양반들을 본 적이 없다니까요...' 같은 반응들이 그래서 자꾸만 튀어 나오게 된다.
3. 차트'조작'이 없었다는 주장을 인정한다면 아니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실 리메즈 현상의 본질은 일종의 SEO(search-engine optimization, 검색엔진최적화) 산업의 일부가 노골적으로 표면화한 것 정도?에 불과하다. 핵심은 '최적화'다. 만약 리메즈가 차트와는 무관하게 진짜 차트 바깥 SNS 상에서의 '대중픽'으로 성공했던거라면 차트가 사라져야 그들에겐 오히려 이득인 건데 그 '공공의 적'인 차트 없애자는 얘기는 안한다. 왜냐면 사실 리메즈는 누구보다도 차트랑 한 몸이니깐.
네이버, 구글 같은 서치엔진의 영향력이 막대하기에 SEO가 발전하는 걸 막을 수 없듯이 멜론 같은 음원사이트의 영향력이 막대하기에 곡을 차트 상단에 올리기 위한 최적화 마케팅이 발전하는 걸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공유되던 '공정성(오늘날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의 룰을 다소 훼손하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지금까지 팬덤 내에서 스밍 최적화 공식을 만들어 팬카페에서 공유해왔던 걸 조금 세련되고 효율화 된 버전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걸 못됐다고 지적하기엔 머쓱하다.
그러나 자꾸 진짜 문제에서 비껴 서서 두루뭉술한 말들로 눙치는 리메즈 대표는 아무리 비즈니스맨이라지만 조금 못된 것이 아닐까... 똑같이 어뷰징으로 승부보고 있으면서 팬들의 어뷰징으로 차트가 엉망이 된 와중에도 대중은 '진정성'을 알아봤고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식의 서사는 아무래도 낯뜨거운 것이다. 이쯤 되니 Top100 차트는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낼만도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없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개인화 된 추천 알고리즘이 정답이냐 하면 그게 오히려 더 께름칙하다. 아,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