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 없는 것들을 내어놓는 사람들, 특히 '정말로 멋진 작품'을 손에 쥐기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태도나 몸짓 하나에서부터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 종종 그런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는 편인데, 그 중력이 강하면 강할 수록 현재의 내가 현실적으로 그들을 따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따지지 않게 되곤 한다. 최근에는 황소윤, 림 킴, 더콰이엇으로 부터 받은 것들이 조금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의 미래든, 자기 자신의 미래든, 씬의 미래든 아직 닿지 않은 시간을 설계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계라는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오직 자기 자신의 감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2. 다큐멘터리 영상 초반부 김예림의 말이 흥미로워 옮겨본다. "얼마전에 어떤 분이 어떤 영화를 봤는데 너무 이상하다는거예요. 그래서 '왜요?' 이랬는데 '클리셰가 하나도 없어'. 어, 그러면 되게 재밌는거 아닌가? 그랬는데,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클리셰를 원하기도 하잖아요? 뭐 음악 자체로 따지는게 아니라. 저의 행보로 봤을 때 클리셰가 전혀 없는 활동이잖아요. 컴백이고.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조금 궁금한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KdNyOn2F51s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해석의 틀을 가지고 현상들을 풀이하고, 틀로 잡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다. '림 킴'은 나긋하거나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날카롭고 공격적인 질감의 사운드와 'SAL-KI'로 단련된 투사에 가깝다. '투개월의 김예림' 혹은 '윤종신의 김예림'과는 전혀 이질적인 캐릭터를 마주한 대중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곳곳에서 팽팽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이토록 빨리 '림 킴'에 대한 옹호논리가 만들어졌을까 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예림 개인의 차원에서 본다면 '림 킴'은 분명 단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변화다. 클리셰 탈피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사실은 클리셰를 떠나 킬빌의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이라는 또 다른 클리셰에 도착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예림의 'SAL-KI'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형을 본다. 익숙한 것의 새로운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SAL-KI'는 전면에 남성(윤종신)에 대한 복수 서사를 내세우면서도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살기가 아닌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위해 칼을 갈고 도전하는" 페미니즘의 임파워링 개념으로 뒤를 받친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를 힙합이라는 남성적이라고 여겨져 온 그릇(다분히 우연적이겠지만 심지어 '림 킴'이라는 이름도 미국의 여성 래퍼 '릴 킴'과 발음이 유사하다)에 담아낸다. 따지고 보면 '킬빌'의 여성 킬러 복수극이나, 페미니즘의 임파워링이나, 힙합이라는 부품 중 그 어느 것도 새로울 게 없는 오히려 이제는 너무 대중적인 개념들이다. 하지만 허구의 대상이 아니라 윤종신이라는 실체를 겨눈 김예림이라는 여성의 임파워링 힙합("방금 전 배웅했어 21세기 Tough old 아무도 이해못해 내 여자만 이해하지", 황소윤 - 'FNTSY'), 그 중에서도 바밍타이거의 노 아이덴티티를 통해 구현한 음악은 새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벼려진 김예림의 결기는 기성의 것들을 꿰뚫어버릴 수 있을까. 일단 첫 코는 잘 꿰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3. 황소윤의 코멘터리 앨범과 림 킴의 SAL-KI 로그멘터리, 더콰이엇 & 팔로알토의 국힙상담소는 시의적절한 콘텐츠다. 이 콘텐츠들은 일종의 금기위반이면서 동시대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이제는 거의 도그마가 되어버린 그 생각들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저스디스는 불만이 많았다. 아무도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하다못해 가사 속에 숨겨놓은 장치조차 알아주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다. 그는 천재노창이 되고 싶었던걸까. '억지로웃지않ㄹ위치ㄹ'처럼, '행'처럼 팬들에 의해 하드코어한 주석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블랙넛은 빈지노가 아니고 저스디스는 천재노창이 아니며 한국에는 'Genius' 같은 사이트가 없다. 감상자의 다양한 해석을 기다리는 것도 창작이 줄 수 있는 재미겠지만 솔직히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다. 원 콘텐츠 외에도 섞고 합쳐서 가지고 놀 거리들을 같이 던져줘야 한다. SM엔터테인먼트가 그랬고, 황소윤이 그랬고, 림 킴이 그랬고, 국힙상담소의 게스트들이 그렇게 하듯 말이다. 사실 저스디스도 자신의 가사에 대해 깊이 설명하는 콘텐츠에 출연한 적이 있긴 하다. 크게 회자가 되지 않아서 문제였지.
https://www.youtube.com/watch?v=M469UYuZfcI
아티스트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말해야 하는 시대다. 더 많이 말해야 하는 이유는 감상자들이 더 잘 즐기기 위해서다. 예컨대 14명으로 이루어진 케이팝 작곡팀 모노트리의 작업 후기 영상에 달린 댓글 반응은 흥미롭다. "저게 지우 목소리고 저게 희진이 목소리라니 작업 비화 너무 좋아이달의 소녀특집 해주세요 진짜로... 열 시간 풀방 라이브⁉️ 같은 거 곡 작업 다 모노트리가 했잖아요" "아 진짜 너무 좋아요 모노트리팀 우주최고천재팀 ㅜㅜ ㅜㅜ ㅜㅜ 어쩌면 이렇게 트랙들 다 따로 들어볼수있는 기회가 흔치않잖아요 ㅜㅜ 그것도 작곡가분들을 통해서, 어떻게 작업을 했고 멤버들이 녹음할때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들어볼수있어서 진짜 최고의 컨텐츠에요 ㅠㅠ 감사합니다 ㅠㅠ 버터플라이는 들을때마다 정말 가슴이 벅차는 곡이에요 ㅜㅜ 사랑합니다 ㅜㅜ" 이들은 분명 어제보다 오늘, 이달의 소녀의 Butterfly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Z4Mnn4o9A
아티스트가 작업 비화라든가 곡 해석의 단서에 대해 스스로 발설하는 것은 청자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행위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닐 확률이 더 높다. 펜토는 자신의 곡 'Funeral'에서 이렇게 썼다. "니가 존나 빨던 랩퍼들 / 지금 다 어디갔어 나는 알지. 웹하드. / 끽해야. 한달쯤 되는 유통기한 / 그 뒤론 그냥 4 메가짜리 파일." 대중음악평론가 박준우씨는 신곡을 들을 때 이름과 썸네일 위주로 골라듣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해가 가는 행동이다. 그렇게 골라듣지 않으면 신곡에 순수하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하루에 24시간을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히 콘텐츠 홍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는 건 타협에의 강요가 아니라 단지 생존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하다. 유속이 빨라지면 수영하는 사람은 팔과 다리를 더 빠르고 세게 저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창작자만 떠내려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청자 역시 함께 콘텐츠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캐치한 멜로디와 섬세하게 조율된 사운드, 깊이 있는 가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 이유를 표현할만한 물리적 여유가 부족하다. 소비에서 느낀 쾌감의 여운이 가실 새도 없이 그 공백을 또 다른 소비의 기회가 치고 들어온다. 멜론과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날마다 새로운 콘텐츠들을 실어다주지만 나는 그것들을 곁눈질로서만 간신히 알아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청자의 해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 앞서 말했듯 그저 도그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구구절절함이 구리다고 여기는 반골의 태도 또한 존중한다. 하지만 작품에 쏟은 자신의 진정성이 잊혀지고 외로워질 수 밖에 없는 반대급부 또한 인정해야 그 말은 앞 뒤가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김심야는 아무래도 영리한 것 같다. 김심야는 XXX의 [LANGUAGE]와 [SECOND LANGUAGE], 김심야와 손대현의 [Moonshine]으로 서사적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weiv의 정구원씨가 적절히 지적했듯("물론 이들은 익숙한 것을 뒤틀고, 그것도 ‘잘’ 뒤틉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렴풋이나마 ‘익숙한 것’, 즉 국힙에서의 과시라는 게임에 출구가 없다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뒤틀기’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이 잘 만든 작품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심지어 XXX 본인들마저도 알고 있을 때) 이들은 어떤 출구전략을 택해야 할까요?") 이들에게는 '출구전략'으로서의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심야는 국힙상담소에 출연해 메타에게서 씬의 대부 자리를 계승한 더콰이엇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그러한 전환을 승인받고, 동시에 팬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약간의 정보를 흘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2NytlG3DE-U
하지만 알리바이를 준비해놓는 건 언제나 그의 방식이었다. 김심야에 대해서는 예전에 "김심야는 [Moonshine]의 ‘Outro’라는 트랙에서 “내가 설 곳이 줄고 징그러운 낸다면 그만한 명분을 가지고 올게”라는 가사, 혹은 [SECOND LANGUAGE]를 두고 ‘멜론 1위’를 노리는 앨범으로 소개 하는 등 출구를 만들어 놓는다. (...) 그는 쇼미더머니 보다 더 뒤편의 ‘취업난’ 이라는 단어까지도 물러설 준비가 되어 있다. 즉, 김심야는 자신의 실패를 미리 예정지어 놓음으로서 캐릭터의 파산을 방지하고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평했던 적이 있다. 이러한 조심스럽고 용의주도한 접근 방식은 사업적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영리하고 안전한 방식이지만 그 댓가로 과감함이라든가 충격이라든가 하는 가치들이 희생될 수 밖에 없다. 인간으로서의 그가 행복해지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음악가로서의 그의 캐릭터가 역동성을 상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