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메모로 나중에 빛을 본 남효온의 기록 습관을 배워라
숙부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 제6대 왕 단종(재위 1452∼1455). 그는 생전에 왕의 지위를 박탈당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고, 죽은 후에도 종(宗)이나 조(祖) 같은 왕의 호칭을 받지 못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권된 것은 한참 뒤인 숙종 때이다. 단종이 사망한 해는 1457년이고, 임금으로 복위하여 단종이라는 묘호를 부여받게 된 해가 1698년이니, 근 2백년이 넘게 단종은 왕이 아닌 왕실의 친족으로만 모셔진 것이다. 숙종이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권하기 이전에도 단종의 복권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사실 과거의 대군을 왕으로 복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권 자체가 자신의 직계 조상인 세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숙종은 이를 단행했다. 숙종 이전에도 단종의 복권에 대한 논의가 여러 번 있었기에 단종의 복권은 시대 흐름의 한 단면이겠지만, 그 외에도 단종의 복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누군가의 기록 때문이었다. 그 기록은 무엇일까?
여기 두 명의 직원이 있다. 한명은 장대리. 그는 총무팀에서 부동산 관리 등 자산관리를 한다. 또 한 명은 김부장. 그는 영업 부서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한다.
그 둘은 자신의 거래처로부터 채권 회수를 제때 하지 못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여 감사팀의 감사를 받게 되었다.
장대리의 경우는 이렇다. 장대리는 부동산 등 회사 자산을 담당하면서 회사의 사옥에 세 들어 사는 임차인이 임대료를 제 때 납부하는지 등을 관리한다. 장대리가 관리하는 임차인 중 한 명은 A지사 사옥에 세 들어 있는데, 그 임차인이 최근 수 개월간 임차료를 체납했다. 팀장은 얼른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임차인을 쫓아내라고 지시했다. 임차인을 강제로 몰아내기 위해서는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므로,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장대리는 법무팀 최과장을 찾아간다.
“최과장님! 총무팀의 장대리인데요, ㅇㅇ건물에 세 들어 있는 임차인을 내보내려 하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장대리로부터 연락을 받은 최과장. 그런데 최근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안녕하세요. 장대리님! 임차인을 강제로 내보내면 문제가 생깁니다. 법에 의해서 해결해야 하는데요,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제가 답변을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다음 주에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려 명도소송과 관련하여 상세한 절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장대리는 최과장의 전화만 기다렸다. 하지만 최과장은 함흥차사다. 참다못한 장대리가 먼저 전화를 하니, 최과장이 지방 출장을 갔다. 지방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을 기다려, 다시 연락을 하니, 최과장의 짜증 섞인 대답이 들어온다.
“장대리님! 제가 출장 다녀온 후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보고서를 다 쓴 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최과장은 약속과 달리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임차인은 이번 달 임차료를 또 내지 않았다. 미수 임차료가 쌓여가자 초조해진 장대리. 다시 전화를 들어 최과장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적반하장이다. 최과장이 화를 낸 것이다.
“아니 장대리님! 임차인을 잘 설득해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서, 자꾸 저한테 전화하세요? 이번에 저랑 함께 일하는 김대리가 퇴사하는 바람에 제가 맡은 소송이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제가 2주 뒤에는 꼭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최과장의 역정에 장대리는 전화를 다시 할 생각을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미수 임차료가 6개월 치로 불었다. 미수 임차료가 증가하자 ㅇㅇ건물의 미수임대료는 보증금을 초과하게 되었고, 회사의 자산관리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경고 메일이 최대리에게 발송되었다.
영업부서의 김부장도 장대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도 밀린 물품대금이 회수되지 않자, 소송을 하기 위해 법무팀 최과장을 찾아갔다. 전화도 하고, 방문도 여러 번 하여, 소송을 하기 위한 사내 절차를 물어봤지만, 까칠한 최과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출장 가야 한다는 핑계로 일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김부장의 채권은 장기 미회수 채권으로 처리되어, 김부장도 회사의 영업 관리 시스템으로부터 경고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정기 감사가 시작되었다. 감사팀은 정기 감사에서 시스템으로부터 경고 메일을 받은 대상자를 선별해서 인터뷰를 하였다. 당연히 장대리와 김부장도 인터뷰 대상이다. 그리고 감사 결과 발표. 결과를 보니 장대리는 징계를 받았지만 김부장은 징계를 받지 않았다. 왜 둘의 감사 결과는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