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현호 Mar 25. 2016

역린을 건드리지 마라

상사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조광조처럼 죽을 수 있다

1519년 한 무리의 군사들이 대신의 집을 에워쌌다. 그 대신은 당시 사림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도학정치 실현을 추구하던 조광조다. 당시 그는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약 반포, 현량과 실시 등 각종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이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은 거셌다. 하지만 중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 그가 한 순간에 왕의 신임을 잃었다. 도대체 조광조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김과장은 평소 영업 실적이 뛰어나 팀장으로부터 늘 칭찬을 달고 산다. 동료 직원들의 선망과 시샘의 대상이 되는 직원이다. 그의 업무는 B2C(일반 소비자 대상)에 집중된 상품을 B2B(법인 대상)로도 판매하는 일이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법인 거래처를 발굴한다. 핵심 인물을 찾은 후 성실한 자세와 진솔한 대화로 거래처를 감동시킨다. 그 결과는 계약 체결, 이에 따른 소속팀의 목표 달성이다. 물론 팀장의 신뢰와 만족도 함께 따라온다.

 하루는 팀장이 김과장에게 현재 계약 협상이 진행 중인 거래처 목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김과장은 자신이 현재 접촉 중인 거래처 목록을 정리하여 보고했다. 팀장은 목록을 훑어본 후, 

 “김과장, △△제약회사에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A과장으로 구매팀 소속입니다.” 

 “잘 되었네. 그 회사 구매팀장이 내 고등학교 동창이야. 내가 그럴 줄 알고 아까 전화해서 내일 그 친구와 만나기로 했어. 내일 나와 함께 △△제약회사를 방문하자고.”

 “안됩니다. 팀장님! 제가 내일은 ○○철강 회사를 가야 합니다. 그 회사는 직원이 5천명이 넘는 우량 거래처입니다. 이곳을 놓치면 팀 실적 달성이 어렵습니다. 반면△△제약회사는 직원이 200명밖에 안됩니다. △△제약회사가 우리 상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이정도 규모의 회사는 언제든지 계약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철강회사 규모의 회사는 흔치 않습니다. 때마침 ○○철강회사에서 방문하라고 했으니, 내일 반드시 방문해야 합니다.”

 평소에 예뻐하던 팀원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들은 팀장은 기가 찼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허! 이놈 봐라. 실적이 좋다고 내가 오냐오냐 하니까, 나와 같이 거래처 방문하는 것을  거부해? 이제 보니 내 머리 꼭대기에 있네. 이러다간 나중에 나를 무시하겠는걸!’

 팀장의 속내는 불편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좋은 말로 달래었다.

 “김과장! 그래도 내가 내일 시간도 있고 상무님한테 내가 열심히 영업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니까, ○○철강회사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고 나와 같이 △△제약회사에 가자.” 

 하지만 김과장은 단호하다.

 “안됩니다. 팀장님! 팀장님께서 ○○철강회사와 계약이 체결 안 된다면 올 한해 팀 실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이는 팀장님께서도 원하시는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김과장! △△제약회사는 나 혼자 갈 테니까, 김과장은 ○○철강회사를 방문해라.”

 팀장은 어쩔 수 없이 △△제약회사에 혼자 가게 되었다. 텅 빈 조수석을 보며 혼자 운전하던 팀장은 허전함을 넘어서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오냐, 이놈 내가 언젠가는 손을 한 번 보리라.’

 연말이 되었다. 김과장은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자신의 목표치를 달성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중간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팀장은 지난 번 △△제약회사에 동행을 하지 않는 김과장에 대해 내심 불쾌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감정이 평가에 고스라히 반영된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아무리 좋은 실적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실적과 평가는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윗사람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는 많았다. 특히 봉건 왕조 시대에 왕의 역린을 건드린다면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조광조다. 




 조광조는 중종이 사림파의 반대편이던 훈구파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등용한 신하다.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낸 공신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반정 공신들과 이들이 소속된 훈구파 대신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러다가 박원종, 성희안 등 반정의 주역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자, 중종은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기 위해 조광조를 등용한다. 중종은 조광조를 지극히 신뢰하고 그의 의견 대부분을 따랐다. 학업태도에 대해서 주의를 주면 주의 사항도 거의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조광조는 도가 지나쳤다. 그가 주장한 개혁은 급진적인 것이 많아서 기존 훈구파 대신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대해 중종도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더 나아가 반정 공신들의 훈작을 박탈하고자 주장한 것이다. 당시 반정 공신들 중에는 실제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가짜 공신이 있었다. 조광조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무리수였다. 중종 입장에서 가짜 공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중종의 정통성이 부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중종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조광조는 바로 중종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사림파와 반대편에 섰던 반정 공신 등 훈구파 대신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조광조의 주장대로 중종이 위훈 삭제 명단이 발표된 날로부터 3일 뒤 중종은 조광조와 그를 따르는 사림파 신하들을 체포하고 귀양 보낸다. 특히 조광조에게는 자신을 변론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사약을 내린다. 이것이 4대 사화 중 하나인 기묘사화다.

 조광조 죽음의 이면에는 훈구파 대신들의 치밀한 음모가 있었다. 그렇더라도 조광조가 중종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복권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의 김과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팀장은 친구 앞에서 자신이 이 정도 지위에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기에 김과장이 이러한 상황을 눈치 챘다면 만사 제치고 팀장과 동행했어야 했다. 자신이 방문할 거래처에는 불가피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문을 연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파악 못한 김과장은 철강회사 방문을 강행했다. 그 결과는 영업 실적과 무관한 저평가다. 이는 팀장의 역린을 건드린 당연한 결과다.




 인도 속담에 ‘참외가 칼 위에 떨어지든 칼 위에 참외가 떨어지든 찔리는 쪽은 참외다.’ 라는 말이 있다. 신하가 왕이라는 칼 앞에서 나약한 참외이듯이 직장인도 상사라는 칼 앞에서는 나약한 참외다. 상사가 평가권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칼의 역린을 건드린 참외는 찔릴 수밖에 없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는 한 평안한 직장 생활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업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