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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호 Mar 25. 2016

보여주기를 못하면 이순신처럼 고생할 수 있다.

쇼잉의 중요성(2)

1597년 일본은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한다. 이른바 정유재란을 일으킨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바닷길이 막혀 고전한 일본은 꾀를 내어 조선 수군을 유인하고자 했다. 적선이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은 조선 조정은 이순신에게 출정을 명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을 간파했다. 그래서 조정의 명령을 무시하고 출전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이순신의 활약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선조는 대노하면서 이순신을 잡아들이라고 명한다. 이순신이라는 명장을 잃은 조선 수군은 이후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며, 12척의 배만 남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일 이때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명을 듣는 척이라도 하면서 보여주기(쇼잉)용 출전을 하였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훗날 12척만 남게 되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지 않았을까? 아래 사례를 함 보자. 




 A과장은 눈앞이 캄캄하다. 얼마 전 상사가 시킨 일 때문이다. 그 일을 하자니 안 될 것이 뻔하고, 안하자니 상사의 질책과 함께 연말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다. 어쩌다 A과장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 것일까?

 사연인즉 이렇다. 회사에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회사의 신성장 사업 발굴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도 있고, 회사의 조직 편제를 다시 짜거나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도 있다. 대형 프로젝트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여러 부서가 참석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관심을 갖지만, 소규모 프로젝트는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한 개 부서가 단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규모 프로젝트 중 일부는 해당 부서 연말 평가용이다. 즉 회사의 업무 개선이나 매출 증대를 위해서라기보다 부서의 존속을 위해 하는 보여주기(쇼잉)용 프로젝트다. 

 A과장은 연초에 소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라는 업무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부서의 연말 평가용이기 때문에 담당 팀장은 A과장에게 보고서만 잘 작성하라고 했다. A과장은 상사의 명령에 충실하여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 덕에 A과장이 속한 부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담당 팀장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보고서를 경영진에게 보고했으니, 보고서 안대로 할 일을 계획하고 실행을 하게.” 

 갑자기 A과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한 프로젝트는 부서 평가용인데! 보고만 하면 끝나는 것 아니었나?  

 실제로 A과장이 보고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려면 다른 부서의 협조가 필수다. 그렇지만 다른 부서는 그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부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과장이 프로젝트 수행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하여도 다른 부서의 비협조로 진행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가슴이 먹먹해진 A과장, 그래도 그는 기지를 발휘했다. 부서의 보여주기(쇼잉)용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처럼 바로 자신만의 보여주기(쇼잉)를 팀장에게 하는 것이다. 


 우선 A과장은 지금이 12월 초라는 점을 착안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인사이동이 있다. 팀장이 바뀔지도 모른다. 설령 팀장이 안 바뀌더라도 새해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러면 작년에 하던 일은 시나브로 관심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팀장이 하라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만일 팀장의 명을 거역하면 선조가 이순신한테서 받은 감정을 그대로 느낄지 모른다. 선조의 진노를 산 이순신 장군이 투옥된 것처럼 팀장의 진노를 사게 된 A과장의 연말 평가는 바닥을 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A과장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척만 하기로 했다.

그 방법의 하나는 팀장에게 매주 진행 사항을 보고하는 것이다. 아래는 A과장이 실제로 보고한 내용이다.


 첫째 주 : 유관 부서와 프로젝트 진행 관련한 회의날짜를 지정함

 둘째 주 : 유관 부서 직원과 회의 진행. 당팀 프로젝트 개요 소개

 셋째 주 : 유관 부서 회신을 기다리는 중

 넷째 주 :  유관 부서의 부정적인 회신에 대해 회의 재개를 요청함


 이렇게 한 달이 지나니 해가 바뀌었다. 조직이 개편되고 인사발령도 나왔다. 사람들은 새로운 자리에 누가 왔는지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고, 내년에는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이야기를 한다. 팀장도 기존 A과장이 보고한 프로젝트는 언제 있었냐는 듯이 관심이 싹 사라졌다. 오로지 새로 오신 임원의 관심사 파악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하여 A과장은 위기를 벗어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순신 장군의 경우를 보자. 당시 상황을 보면 당신은 조선 수군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조선 백성 전체를 구원한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 장군께서 선조의 명을 받들어 보여주기(쇼잉)용 출정을 한 후 계속 후퇴만 했으면 어땠을까? 배 1,2척이 침몰하는 불상사는 있었겠지만, 훗날의 칠천량 전투의 패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장군께서는 단 1명의 병사와 1척의 배도 소중히 생각하시어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선조의 노여움을 사, 결과적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큰 불행을 몰고 왔다. 

보여주기(쇼잉)용 출정만이라도 했으면 많은 백성을 살렸을지도 모를 일인데…….




 직장 일을 하다보면 쇼잉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은 성격상 절대 그런 일을 못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좋게 보면 대쪽 같은 성격이고 안 좋게 보면 융통성이 없거나 고지식한 경우다. 하지만 아무리 대쪽 같던 성격도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다 보면 실적을 과대포장하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여우나 능구렁이 같은 기질이 표출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처럼 보여주기(쇼잉)를 너무 못하면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반면 먼저 본 김유신 장군의 사례처럼 보여주기(쇼잉)를 적절히 사용하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이룰 수도 있다.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순신 장군처럼 중요한 인재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보여주기(쇼잉)도 적절히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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