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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호 Mar 25. 2016

남의 것을 취하는 기술(탈해왕)

호공의 집을 빼앗은 탈해왕으로부터 취함의 미학을 배워라

회사의 CEO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업 성공을 위하여 각종 위험(Risk)을 점검한다. 직무 별로 전략, 회계, 세무, 법무, 노무, 언론, 그 외 대정부와의 관계에서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을 사전 점검한 후 대응방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사업 성공을 위하여 CEO는 관련 부서에 의견을 내놓으라고 지시하고, 지시 받은 부서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여러 직무가 한데 모여 한 개 팀이 되지만, 규모가 큰 기업은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어 한 개 팀이 하나의 직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팀이 여러 개 있는 회사의 경우, CEO가 개별 부서로부터 일일이 보고를 받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한 개 부서가 여러 부서의 의견을 취합해서 정리한 후 보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A회사는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기획팀이 유관부서로부터 각종 위험에 대한 의견을 모은 후 정리하여 보고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OO사업을 추진한다고 하였다. CEO는 기획팀에 예상되는 각종 위험을 정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기획팀장은 유관 부서로부터 의견을 모아 정리하는 일을 김부장에게 맡겼다. 유관 부서에는 법무팀도 있었다. A부장은 법무팀을 제외한 유관 부서에게 CEO 지시 사항을 전파하면서, 팀장에게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팀장님! 굳이 법무팀 의견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이 건에 대하여는 제가 법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김부장이 법무 관련 쟁점(Issue) 사항을 보고서에 포함시킬 수 있나?”

 “물론입니다.” 김부장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봐!”

 사실 김부장은 재무 전문가로 법무 업무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김부장은 사업이 추진될 거라는 정보를 사전에 들었고, 그 즉시 입사 동기인 법무팀의 이부장에게 법무 쟁점(Issue) 및 해결 방안을 물어봤다. 이부장은 김부장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했고, 김부장은 이부장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자신의 지식인 양 보고서에 일목요연하게 기재하였다.

 그 보고서를 본 기획 담당 상무는 재무통인 김부장이 법무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김부장! 정말로 이 보고서의 내용이 본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야? 이 내용이 정말로 맞는지 법무팀장에게 한 번 확인해봐야겠네. 만일 법무팀장이 맞는다고 하면, 김부장은 재무와 법무 지식을 두루 갖춘 진정한 실력자네. 장차 회사의 CEO 감이야.”

 기획 담당 상무는 그 자리에서 법무팀장을 불러 보고서 내용의 오류 여부를 확인했다. 보고서 내용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 기획 담당 상무는 그 자리에서 김부장을 극구 칭찬했다.

 위 사례는 김부장이 동기인 이부장의 지식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다. 더 나아가 탈취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신라의 탈해왕이 남의 집을 탈취한 것처럼.




신라 제4대왕 석탈해(재위 : 57~80)는 신라 1대왕 박혁거세(재위 : 재위 BC 57∼AD 4), 김알지와 함께 신라 건국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석탈해는 바다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신라로 왔을 때는 토착세력인 박 씨 세력이 있어서 왕이 되기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토착세력 밑에서도 세력을 키워 신라의 제4대 왕이 된다. 신라 초기에는 박씨, 석씨, 김 씨가 번갈아가면서 왕을 했는데, 그 중 석씨는 탈해를 포함하여 총 8명의 왕을 배출한다.

 이렇게 토착세력도 아닌 탈해가 왕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탈해가 박 씨 세력으로부터 눈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탈해는 어떻게 박 씨 세력의 신임을 받았을까?


 삼국유사 기이권제일(紀異券第一) 탈해왕 편에는 탈해의 기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탈해가 성 안에 살 만한 땅을 찾는데, 초승달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있음을 바라보고 그 지세가 오래 살 만한 자리인지라 곧 내려가 알아보았더니 이는 호공의 집이었다. 그는 곧 꾀를 내서 남몰래 그 집 옆에 숫돌과 숯을 묻고는 이튿날 아침에 그 집 문 앞에 와서 따져 묻기를 “이 집은 우리 할아버지적의 집이다.” 하니, 호공은 “그렇지 않다.”하여 서로 시비를 따지다가 결판을 못 내고 이에 관가에 고발하였다.

 관리가 말하기를 “무슨 증거가 있기에 이것을 너희 집이라고 하느냐?”하니 그 아이가 대답하기를 “우리 집은 본래 대장장이인데 잠시 이웃 지방으로 나간 동안에 다른 사람이 빼앗아 여기 살았습니다. 땅을 파서 사실인지 확인해 주소서.” 하여 그 말대로 파 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곧 빼앗아 살았다.


 이렇게 탈해는 힘들이지 않고 호공의 집을 얻었다. 당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라 제2대 남해왕(재위 : 4~24)은 탈해의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사위로 삼는다. 신라 토착세력이 아니면서, 토착세력의 사위가 된 석탈해는 이후 신라 왕자리까지 오르는 입지 전적의 인물이 된다. 




 탈해왕이 남의 집을 몰래 뺏은 것처럼, 김부장도 엄밀히 말하면 남의 지식을 몰래 자기 것으로 취한 것이다. 탈해왕이 남해왕의 사위가 된 것과 김부장이 기획 담당 상무로부터 주목을 받은 점도 서로 비슷하다. 물론 김부장이 보고서에 기록한 법무 관련 의견의 저작권은 사실 이부장에게 있다.
  * 저작권 : 문학,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에 대하여 창작자가 얻는 권리

하지만 회사 직원의 의견을 저작권으로 등록하는 사례는 없기 때문에 김부장이 타인의 의견을 허락 없이 보고서에 기재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탈해왕이 살았던 신라 초기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부동산 등기부등본이 없었을 것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회사에는 김부장의 경우처럼 남의 지식을 몰래 자기 것인 양 취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개인의 넘어서 팀 간의 경우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2000년 전에도 존재했던 일인데 현대라고 없어지겠는가?

 다만 이런 일은 어쩌다 한 번 있어야지 수시로 그러면 언젠가는 공공의 적이 된다. 탈해왕도 전쟁이 아닌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남의 집을 뺏은 적은 딱 한 번이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수시로 남의 집을 빼앗았다면 탈해과 과연 왕자리에 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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