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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Feb 04. 2019

8. 트레킹 여행사 이용

자유로움과 편리함 사이의 밸런스

대부분의 여행사가 제시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상품은 트레킹이 9박 10일이다. 국제선 항공편을 따로 예약할 때는 Nepal에서 13일이면 만약의 사태를 감안해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국제선 항공편 이외에는 아무런 사전 예약 없이 모든 일정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완전히 자유롭게 현지에서 결정하면서 움직일 계획이었다.


도착 첫날은 Kathmandu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국내선 항공편이나 버스로 Pokhara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Pokhara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은 하루에 총 30편 정도가 있어서 현지에서 항공권을 사서 가는 데 별 문제없어 보였다. 다만 외국인이 직접 항공사에서 표를 구입하는 것보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구입하면 더 싸게 구할 수 있다. Pokhara로 가는 항공기는 주로 소형 경비행기가 취항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작다 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취소, 연발, 연착이 잦다고 한다. 그러니 날씨에 따른 취소를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항공편이 취소되는 경우에는 버스 편을 이용할 수 있는데, 버스 이동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에 최소한 7시간 이상이 걸린다. 버스에도 여러 가지 등급이 있어서 옛날 시외버스 같은 것에서부터 우등고속 같은 것까지 다양하다. 젊은 나이에 배낭여행이라면 냄새나는 염소랑 같은 버스를 타고 7~8시간 털털 거리며 가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두 시간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픈 이 나이에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우등고속 같은 버스는 버스 안에서 인터넷도 되고, 화장실도 있으며 가는 길에 뷔페식당에서 점심도 준다. 만약 국내선 항공기가 운항을 안 하면 Kathmandu Tamel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버스도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다.


그러니, 국제선 도착과 출발에 각각 하루씩, 그리고 Kathmandu에서 Pokhara를 오고 가는데 각각 하루씩을 쓴다고 생각하면, 트레킹에 쓸 수 있는 시간은 9일밖에 남지 않는다. 잘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여유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네히트를 읽어보면 가이드와 포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가이드는 트레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길잡이로서 트레커와 동행하면서 길을 안내하고, 트레커의 체력과 건강 상태, 그리고 롯지의 상황을 살펴서 그날의 트레킹 목적지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가이드는 네팔 정부에서 발급한 라이선스가 있어야 하는데, 트레킹 가이드 라이선스를 가진 가이드는 오로지 가이드 일만 하며 트레커의 짐은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가이드에게는 하루에 약 $20~30 정도를 지불한다.


가이드는 라이선스 제도가 있지만 포터는 없다. (2018년 11월 Nepal 정부에서 최초로 1500여 명에게 porter guide license를 발급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확인했다. 트레킹 가이드는 고졸 이상의 정규 교육이 요구되는데, 포터 가이드는 대신에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된다고 한다.) 포터는 말 그대로 완전히 짐만 들어주는 사람이다. 포터의 일당은 하루에 $10~20이다. 어떤 포터는 40kg 이상의 짐을 이마에 머리띠로 걸친 망태기에 넣고 슬리퍼 따위의 신발을 신은 채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영상이 많이 있다. 짐만 나르는 포터는 트레커와 동행할 이유가 없으니, 보통은 아침에 짐을 받으면 혼자서 후다닥 먼저 목적지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포터로서 짐만 들고 다녔지만 그 동네 산길을 십수 년간 다녀서 길도 빠삭하게 잘 알고, 롯지의 사정도 밝으니, 경험 많은 포터는 트레커와 의사소통만 좀 되면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용을 절약하려는 우리나라 트레커들이 포터에게 조금 더 일당을 쳐주고 가이드 역할을 하도록 가이드겸포터라는 새로운 직종을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본질은 포터다.


이 가이드겸포터와의 트레커 간에 심심치 않게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여러 날을 함께 해야 할 가이드와 불화가 생기면 즐거워야 할 트레킹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네히트에서는 정식 허가를 받은 여행사를 통해서 트레킹 가이드 라이선스를 가진 가이드를 고용하라고 추천한다.


몇 차례에 걸친 북한산 연습 산행에 따르면, 25l 배낭으로는 겨울 산행에서 비상시를 대비한 장비를 다 담을 수가 없어서 Travel Mate 45l 배낭을 써야 했다. 이 45l 배낭은 빈 배낭만 해도 무게가 1.7kg이다. 여기에 방수 재킷, 아이젠, 스패츠, 덧바지 등의 옷과 이동 중에 먹을 물과 행동식을 넣으면 쉽게 6~7kg을 넘어간다. 당일 산행에 필요한 필수품 외에 숙박지에서 필요한 영하20도용 슬리핑백 같은 것을 더하면 아무리 줄여도 최소한 15kg 이상이다.


15kg이면 내 몸무게에 25%다. 스마트 등산교실에서 제시한 계산법에 따르면 등산 중의 1kg은 평지에서 보다 7배 정도의 부하를 더 가한다고 한다. 맨몸으로 가도 힘든 길을 자기 몸무게의 1/4 이상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체력 좋은 젊은이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포터는 필수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워낙 국제적으로 유명해서 연간 1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네히트 카페의 ‘동행 구함 게시판’을 보면 내가 가려는 날짜에 트레킹 하는 한국사람들도 상당히 있어서, 가이드가 없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쳐져서 가다가 갑자기 눈이 많이 오면 길이 눈에 덮여서 혼자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눈사태를 만나 조난을 당해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돌아오려면 가이드도 필수다. 나 같은 나홀로 트레커에게 가이드겸포터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여행사를 통해서 자격이 있는 가이드를 고용하려면 Pokhara 현지에서 여러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묻고 가이드와 인터뷰도 해 봐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트레킹에 쓸 9일에서 또 하루를 빼야 할지도 모른다. Nepal에 도착해서 가능한 한 빨리 트레킹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골라서 미리 예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트레킹 이후는 워낙 변수가 많아서 예약은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


여행사 3곳이 후보로 올랐다. 첫째, 구글링으로 리뷰 점수가 높은 Pokhara 현지 여행사를 검색해서 찾은 Outshine Adventure. 둘째, 인도식당 니로사의 나사장이 소개한 Anup Gurung 씨의 San Adventure. 셋째, 네히트에서 알게 된 국내 여행사 종로5가 (주)포카라.


현지 여행사 Outshine Adventure가 제일 먼저 탈락했다. 이 곳의 장점은 비용의 출발선이 가장 싸다는 점이었다. 나 한 사람을 위해서 Private Tour로 가이드 1명과 별도의 포터 1명을 포함하고 Pokhara 호텔에서 출발해서 9박 10일의 트레킹을 마치고 Pokhara 호텔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전일정 숙박비와 식사비, TIMS와 permit, 다운재킷과 슬리핑 백 대여를 포함해서 $845이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나는 추가로 Kathmandu에서 Pokhara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이며, Kathmandu나 Pokhara에서의 호텔, 공항에서의 픽업, 그리고 최대한 지프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지프를 이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Outshine Adventure의 표준 트레킹 코스의 일부를 차량 이동으로 수정하는 등등의 일을 내가 별도로 요청해야 한다. 이런 의사소통을 email로 주고받으면서 할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났다.


나사장이 소개한 Anup Gurung 씨는 나사장이 한국에 취업하러 오기 전에 Anup 씨에게 한국어를 배웠던 한국어학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황정민, 정우가 출연한 영화 ‘히말라야’를 찍을 때 가이드를 해서 영화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있었다. Anup 씨에게 나의 생각과 대강의 일정을 카톡으로 보내고 제안을 요청했다. 며칠 뒤에 견적서와 함께 일정 계획이 적힌 엑셀 파일을 카톡으로 받았다. Outshine Adventure와 비교하기에는 내용이 달랐고, Anup 씨는 총액만 적어서 보내왔기 때문에 1대 1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일정과 내용을 대강 비교해 보면 비용면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우선 국내선 항공료, 픽업 비용, 지프 비용 등 몇 가지 추가적인 사항을 카톡으로 확인했다. 그러다가 트레킹 코스에 대해서 생각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일정의 수정을 요청하면서, 비용을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보내주면 내가 이런저런 변경을 할 때 비용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검토하기에 편리할 것 같으니 상세 내역을 엑셀 파일로 달라고 요청했다. 1주일쯤 답이 없어서 내가 독촉을 했더니 예약해 놓은 가이드에게 다른 일이 생겨서 내 일정을 진행해 줄 수 없게 되었으니 다른 여행사와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Anup 씨에게 제안을 요청할 때 비용을 비교할 목적으로 같은 내용을 (주)포카라에도 보내고 동시에 제안을 요청했었다. (주)포카라에서는 Anup 씨보다 먼저 일정과 비용을 보내왔다. “빨리빨리”정신으로 무장된 한국업체가 분명하다. 내가 세부 항목별 금액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국내선 항공료, 호텔비, 픽업 드롭, 지프 등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보내왔다. 항목별 금액을 Anup 씨의 제안과 비교해 보면 (주)포카라가 지프 비용만 조금 차이가 났고 나머지는 대동소이하다.


내 사무실이 동숭동에 있기 때문에 종로 5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트레킹 장비에 대한 조언도 들을 겸 찾아가 보았다. (주)포카라의 사장은 암벽 위를 거미처럼 기어 다닐 것 같이 탄탄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마침 안나푸르나를 간다는 젊은 여자 2명과 주고받는 얘기를 들어보니 은고(은근 고수)의 냄새가 났다. 거기서 윤 대표의 추천을 받아 등산용 속옷과 등산용 울 양말이랑 1l짜리 Nalgene물통을 샀다. 물통만 4개째 산거다.


(주)포카라가 판매하는 서비스를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혜초여행사 같은 단체 패키지에 끼어서 편리함을 위해 여행의 자유로움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나 같은 나홀로 트레커를 위한 서비스를 상품화한 것이다. 서너 명 이하의 인원이 움직일 때 필요한 교통편이나 호텔, 픽업 서비스, 가이드, 포터, 침낭 대여 같은 것을 선택적으로 구입할 수 있어서, 자유여행과 패키지 사이의 틈새시장을 파고든 형태이다. 개별 상품의 가격차이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고, 거기에 경험 많은 산악 전문가의 컨설팅은 덤이다. 내가 원하던 서비스다.


결국 도착 첫날 Pokhara의 숙소는 booking.com을 통해서 예약하고, 국내선 항공권, 공항 픽업과 드롭, TIMS와 permit, 가이드겸포터, 동계용 침낭 대여를 (주)포카라에서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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