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 예방 차원에서 비아그라까지..
주말에 순기가 감기가 들었는지 설사도 해서 우리 동네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왔단다. 지난주 1/18 금요일 정릉-보국문-대동문-진달래 능선-우이동으로 다녀왔는데 몸에 부담이 되었는지, 순기에게 감기가 옮았나 보다. 나는 어제저녁부터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오며 으슬으슬 춥게 느껴진다. 감기 기운도 문제지만 어차피 안나푸르나를 가려면 고산병 예방을 위해서 비아그라를 처방받아야 하니 병원을 한번 가야 한다.
아침을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한숨을 더 잤다. 깨어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마누라는 어딘가 가고 없다. 혼자 대충 점심을 때우고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에서 개업하고 있는 내과의사는 내 여동생과 대학 동기다. 어머니를 포함해서 우리 4 식구가 모두 그 병원을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우리 집 주치의인 셈이다. 집사람더러 큰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 의사도 이 사람이다.
집사람은 서울대병원에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받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된 것 없이 깨끗했다. 나의 갑상선 조직검사와 마찬가지로.. 아직 마누라와 헤어질 때는 안된 모양이다.
감기약 처방을 받은 후, 다음 달에 히말라야를 가려고 하니 고산병 예방약으로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번 남미에서 비아그라도 먹고 현지에서 산 이뇨제 소로치필도 먹었지만 구토를 했고, 숨이 차서 잠에서 깼으며 등등, 내가 겪은 고산병 증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예방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말도 했다.
의사의 설명으로는 고산지대에 가면 공기가 희박해져서 외부의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에 혈액 속에 있는 물이 혈관 밖으로 빠져나온다고 한다. 다리의 혈관에서 빠져나온 물은 다리를 붇게 만드는데 다리가 붇는 정도는 크게 위험하지 않으나, 폐에 있는 혈관에서 빠져나온 물은 허파꽈리의 표면에 붙어있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폐에 물이 찼다고 하는 폐부종이라고 한다고 한다. 폐부종이 발생하면 허파꽈리 표면의 수막이 가스 교환을 방해하기 때문에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심하면 산소부족으로 사망하게 된단다. 비아그라나 이뇨제는 폐부종을 예방하기 위한 약이지 구토나 어지러움 같은 증상은 산소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고산병과는 별개라고 한다.
지난번에는 비아그라를 오리지널로 처방해 줘서 가격이 큰 부담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 약값만 10만 원이 넘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복제약을 처방해 달라고 얘기해서, 14일 치의 처방을 받았다. 약값이 5만 원대로 확 줄었다. 비아그라는 한알을 1/4로 쪼갠 25mg을 매 12시간마다 먹어야 하며, 고산지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먹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아그라를 먼저 먹고,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이아목스같은 이뇨제를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어지러움이나 두통 같은 증상을 위해 따로 진통제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고 한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와서 처방받은 약 외에 ER타이레놀, 정로환, 트로치, 항히스타민제 등을 추가로 샀다. 항히스타민제는 감기에 걸려 콧물이 많이 나올 때를 대비한 것이고, 트로치는 목이 아플 때, 정로환은 설사할 때, ER타이레놀은 고산지대에서 두통이 왔을 때 먹을 계획이다. 약사는 다이아목스는 국내에 없고, 같은 성분의 이뇨제를 고산에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구해놓은 것이 있다고 하며 다른 약을 줬다. 약봉지가 불룩하다. 이 외에도 나는 모기를 극도로 싫어하니까 바르는 모기기피제도 가지고 간다. 모기기피제를 쓰고도 모기에 물렸을 경우를 대비해서 버물리도 가져간다.
나의 약품 파우치에는 코 스프레이도 들어있다. 생리식염수를 넣고 다니면서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콧속이 불편할 때 콧속을 세척하기도 하고, 비행기 안 같은 건조한 곳에서는 개인용 가습기 같은 역할을 한다. 콧구멍이 남들보다 커서 콧속이 쉽게 건조해지는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다. 어디서 사야 할지 모르는 이런 특이한 물건도 옥션을 뒤지면 다 나온다. 이것도 옥션에서 천 원짜리다. 물건 값보다 배송비가 더 비싸다. 생리식염수를 채운 코 스프레이 말고도, 코가 막혔을 때 쓰는 Nasal Congestion Spray도 가지고 다닌다. 잠잘 때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게 되어 코를 더 심하게 고는 경향이 있다. 코골이는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것도 유용한 아이템이다.
안티푸라민 로션도 가지고 다닌다. 골프여행을 다닐 때 전동카트 없이 걸어 다닌 날은 바르는 소염진통제가 꽤나 효과가 있다. 더운 지방에서는 시원한 효과도 있고, 이번에는 트레킹이어서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필수 아이템이다.
그리고, 빈대 약 비오킬도 가지고 간다. 2016년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날 카사블랑카 기차역 앞에 있는 번듯한 호텔에 묵었다. 1박에 7~8만 원쯤 하는 비교적 좋은 호텔이어서 침구도 깨끗하고 다 좋았는데, 다음 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온몸이 근질거리며 가렵기 시작했다. 중간 경유지 파리 공항에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Bedbug, 빈대가 틀림없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바로 그 빈대. 빈대에게 물린 자리는 드라큘라의 이빨 자국처럼 2개가 쌍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슬리핑백을 포함한 모든 옷가지에 빈대 약을 뿌리고, 빨고, 햇볕에 말렸다. 혹시 다른 식구들에게 옮길까 싶어서 내 방에도 뿌렸다. 빈대에 물린 자리는 그 후로도 3개월 이상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빈대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환촉을 느끼기까지 했다. 빈대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네팔의 롯지도 빈대로부터 안전할 것 같지 않다. 빈대 약도 필수다.
약국을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다이소에도 들렸다. 더플백에 채울 자물쇠와 수저를 담을 투명 파우치를 샀다. 고도 3000m 이상의 롯지에서 숙박할 때 입을 헤비다운을 아직 가져갈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만약 가져가게 되면 부피를 줄여서 포장할 여행용 압축롤 포장봉투도 샀다. 가격은 각각 천 원씩, 합계 3천 원.
이런저런 상비약과 함께 늘어놔보니 약만 해도 한 짐이다. 등산은 중력과의 투쟁이라는데 짐이 자꾸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