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21개 구간, 71.5km
12/22 제1구간 소나무숲길을 우이동을 출발해서 2~3일 간격으로 한 번에 3~4개 구간씩 걷기 시작했다. 1/12 제21구간 우이령길을 끝으로 총 21개 구간, 71.5km를 7일에 걸쳐서 완주했다. 말하자면 북한산 서킷 트레킹을 한 셈이다.
21개 구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간은 12/27 걸었던 제5구간 정릉주차장에서 형제봉 입구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날은 꽤나 추워서 둘레길에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했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구기동으로 내려와서 먹은 매생이 굴국밥도 그날의 기억을 기분 좋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다음으로는 1/5 걸었던 제15구간 의정부 도봉산 자락에 있는 안골길이 나름 아기자기해서 재미있었다. 특히 의정부시청 근처 산 밑의 식당에서 먹은 해물크림 파스타는 그릇 바닥에 남은 소스를 닦아 먹을 빵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역시 먹는 즐거움이 함께 있어줘야 트레킹도 더 인상 깊고 즐겁게 느껴지나 보다. 국민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썼던 그림일기의 내용이 생각난다. 거의 매일 ‘오늘은 ㅇㅇ을 맛있게 먹었다.’가 차지하고 있었다.
제6구간 평창마을길은 북한산의 남쪽 기슭에 조성된 부자 동네를 통과하는 아스팔트 길이었다. 아스팔트 길이어서 걷기에는 좀 불편했지만 북풍을 북한산이 막아주고 남향받이로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지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단독주택들이 많이 있어서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1/5 둘레길을 제13구간에서 제16구간까지 걸을 때는 플래티푸스 수낭의 성능 테스트도 겸했다. 1.5l 정도의 물을 채운 수낭을 배낭에 넣은 채, 수낭에 연결된 관을 배낭 어깨끈에 클립으로 걸어놓고 걸어가면서도 물을 마실 수 있는 구조다. 숨이 가빠지면 자연스레 입안이 마르고 불편했는데, 어깨끈에 매달린 마우스피스를 당겨서 깨물고 빨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편리하기는 했다. 입안도 적시고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물을 계속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물을 계속 마셨더니 거의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찾게 되어 불편했다. 산속에 30분마다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 것은 아니니 길을 살짝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화장실을 하도 자주 가게 돼서 물을 많이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실제 마신 양은 600ml 정도밖에 안됐다. 또한 수낭은 비닐주머니 형태라서 뜨거운 물은 넣을 수가 없다. 2월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 고도 3000m 이상을 올라가면 낮 최고 기온도 영하인데 배낭에 들어있는 수낭의 물이 얼지는 않겠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게 불편할 듯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네이버에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일명 네히트)’라는 카페를 알게 되었다. 5만 명이 넘는 회원이 있고, 하루 방문자만 3천 명 가까운 활발한 카페여서 거의 실시간으로 질문과 답변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또는 에베레스트 근방에서 트레킹 하며 현지 소식을 알리고 있다.
조금 웃기는 질문인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물통 관련 조언을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수낭을 쓰는 게 좋을지 물통을 쓰는 게 좋을지 질문을 올렸더니 몇 시간 만에 답글이 18개나 달렸다.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팔랑귀라서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저 사람 말이 맞는 듯하다.
지금까지 물통만 해도 500ml짜리 입구가 작은 Nalgene 물통 하나, 2l짜리 Platipus 수낭 하나, 그리고 2l 정도 들어가는 보온용 Fashy 물통(유단포 용)까지 3개나 샀고 돈도 7만 6천 원이나 썼는데, 여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500ml짜리 보온병에다가, 추가로 입구가 넓은 1l짜리 Nalgene 물통을 하나 더 사서, 물통 5개를 놓고 어떤 것을 가져갈 것인지 출발 전날까지 테스트를 해 보고 고민을 해야 한다. 결국 마지막 짐 싸는 순간에 결정해야 할 듯하다. 그 결정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북한산 둘레길의 마지막 제21구간 우이령길은 1968년 121 사태 때 북한 특수부대 124 군부대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로 침투했던 루트였기 때문에 40여 년간 민간인 통제구역이다가 2009년부터 예약제로 개방되어 하루 300명만 탐방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통제되고 있었으니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다고 해서 트레킹 하기에 좋을 것이라고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막상 가 보니 차량 통행이 가능한 수준의 넓은 군사도로를 조성해 놓고, 도로 주변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둘레길 홈페이지에는 우이령길 소요시간이 3시간 10분이라고 나와 있었으나, 내가 호흡을 고르며 땀나지 않게 천천히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30분 만에 준비한 점심거리를 꺼내 볼 틈도 없이 길이 끝나버렸다. 이날은 중간에 점심도 먹고, 둘레길 완주의 피날레를 축하하며 하산주라도 한잔 하면서 자축하려고 했는데, 점심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에 끝나버려서 너무 황당했다. 훈련의 결과로 체력이 급상승하여 기록이 단축된 것이라고 자위했다.
유튜브에서 등산스틱 사용법을 검색하다가 '스마트 등산교실'이라는 내용을 발견했다. 스마트 등산교실 제1강에서는 '등산이란 산이 지닌 다양한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나에게는 ‘등산이란 땀을 뻘뻘 흘리며 체력이 완전방전될 때까지 힘들게 산을 오르고, 아주 짧은 순간 눈을 호강시킨 대가로 그 후 며칠간은 근육통에 시달리도록 자신을 혹사하는 것’이었을 뿐, 그다지 즐거움을 얻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스마트 등산교실’이라는 컨텐츠가 등산에 대한 나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강부터 50강까지 있는데, 한 강의가 10분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보기에 적당하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제10강 ‘쉽게 오르는 타이거 스텝’이다. 타이거 스텝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캣워킹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되었다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의식적으로 몸의 중심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막고 일직선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마치 고양잇과 동물들이 사냥감에 접근할 때의 걸음걸이처럼 왼발 오른발을 엇갈려 디디면서 걸어 올라가라는 얘기다. 보통의 걸음걸이처럼 똑바로 발을 뻗으며 올라가면 왼발을 디딜 때는 몸의 무게중심이 약간 왼쪽으로 이동하고, 오른발을 디딜 때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게 돼서 불필요한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어 더 빨리 지친다는 것이다.
몸의 중심을 좌우로 흔들면서 이동하는 것보다 똑바로 직선을 유지하면서 이동한다면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작을 것이라는 것은 기계공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를 했다. 하지만 항상 이 몸이 문제다. 실제 아파트 16층을 걸어 올라갈 때 타이거 스텝을 연습해 봤는데, 몸의 중심을 일직선으로 유지하기는커녕 발을 엇갈려 디디려다가 스텝이 꼬여서 몸이 더 흔들거렸다.
16층 정도 올라가는 것은 고도 상승이 40m 수준이어서 계단을 올라갈 때 어떻게 걷든지 에너지 소모량의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해발고도를 1500m 수준에서 4000m 수준으로 내 몸을 들어 올려야 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는 작은 몸동작 하나하나를 무한반복 수준으로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몸놀림 하나에 따라 전체적인 에너지 소모량은 크게 차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기억할 수 있게 몸치는 계속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