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옷을 장만하다.
2/20 오늘은 오전 10:40 국내선 항공편으로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날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렸다. 트레킹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캐리어로 넣고 카트만두와 방콕에서 사용할 것들만 배낭에 넣었다.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 1층의 야외 커피숍에서 카페라테를 한잔 즐기며 픽업을 기다렸다.
카트만두의 예약한 호텔에 공항 픽업을 요청해 놓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트만두 공항에서 택시 기사에게 보여 줄 수 있게 카트만두 호텔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네팔어로 메모지에 써 줄 것을 커피숍 여종업원을 불러 부탁했다. 그런데 이 여종업원이 메모지를 받아 들고 쩔쩔매면서 힘들어하는 눈치다. 순간 혹시 글을 모르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네팔의 성인 여성의 문맹률은 무려 43%에 달한다고 한다. 네팔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녹녹지 않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9시 반에 포카라 여행사 라주 사장이 기사와 함께 왔다. 여행 내내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트레킹 중에도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고마웠다. 더구나 나는 여행사와 턴키로 계약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구매했으니 어쩌면 얄미운 얌체 고객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카트만두 호텔은 어디로 예약했느냐 공항 픽업은 준비되어있느냐 확인하더니 라주 사장이 직접 카트만두 호텔에 전화해서 픽업을 확인해 주었다. 안심이다.
포카라 공항 앞에서 라주 사장과 작별하고 공항에 들어가 보딩패스를 받았다. 공항 정체로 출발이 30분 정도 늦겠다고 한다. 게이트 앞에서 아이패드 전자책을 보며 보딩을 기다리는데, 11:15이던 보딩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태울 생각을 안 한다. 한참을 아무런 안내방송이나 표시도 없더니 12:40 보딩 사인이 뜬다. 예정시간을 2시간이나 훌쩍 넘긴 시간이다. 이런 일이 네팔에서는 다반사인 듯하다.
2시간이나 연발한 카트만두행 항공편에 탑승하니 옆 창가 자리에 의자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뚱뚱한 중국 여자가 앉아있다. 내 손에 들린 아이폰을 보더니 대뜸 나에게 중국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손짓을 동원해 자기 배터리 레벨을 가리키며 충전 좀 해달란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을 못하고 내 샤오미 배터리를 물려줬다. 카트만두행 비행기 안에서 마차푸차레를 찾았으나 날씨가 흐려서 잘 안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그렇게 포카라를 떠났다.
문제는 카트만두 공항에서 또 발생했다. 2시간이나 연착했으니 호텔 픽업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화도 쓸 수 없는 상태라서 호텔과 연락할 방법이 없다. 때마침 공항지역 내에서는 90분간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어서, 남아있는 스카이프 충전금액을 이용해서 호텔에 전화를 했다. 호텔 기사가 공항에서 2시간을 기다리다가 방금 호텔로 돌아왔는데, 20분이면 다시 보낼 수 있으니 기다리겠다면 다시 보내겠다고 한다. 호텔 주소를 적은 메모도 있으니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기왕에 2시간을 기다렸다는 기사를 생각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20분이면 온다던 호텔 기사는 국내선 공항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1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야 도착했다.
카트만두의 대기질은 악명 높다. 서울의 미세먼지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준비한 마스크를 끼고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차는 Tamel 거리로 접어들었다. 좁은 골목에 네팔 토산품 가게와 트레킹 장비 가게, 여행사들이 즐비하다. 공항에 픽업 나온 차의 상태로 보아 짐작했지만 호텔은 사진에 비해서 후줄근했다. 대충 여장을 풀고 건너뛴 점심을 대신해서 갓뚜기 버섯해장국과 누룽지를 말아먹고 거리를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다. 이곳 Tamel은 백패커들의 거리로 불린다. 세계 각국에서 밀려온 백패커들로 거리는 북적였고, 향을 피워놓고 불교용품과 오색 깃발이 달린 타초르를 파는 가게가 인상적이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포카라에서 어제 먹으려고 했던 스테이크를 먹으려고 인터넷에서 보아둔 Kathmandu Steak House를 찾아갔다. 카트만두에서 나름 스테이크를 맛있게 한다는 곳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식당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7온스(약 200g)와 11온스(약 300g)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11온스를 시켰다. 가지고 온 고기의 양을 보고 7온스를 시킬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Everest 맥주와 함께 다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네팔 전통의상을 입은 취주악대가 거리를 행진했다. Tamel 거리의 볼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공연인가 보다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랑 신부로 보이는 남녀와 꽃으로 치장된 차가 악대를 뒤따르고 있었다. 요즘이 결혼식 시즌이라 건너편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단다. 화려한 의상의 하객들이 신랑 신부의 뒤를 이어 거리로 나왔다. 그동안 가난에 찌든 쩨쩨 구레 한 옷을 입은 사람들만 보다가 네팔 상류층의 화려한 결혼식 하객들을 보니 네팔 미녀들이 다 모인 듯했다. 우연히 좋은 구경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트레킹 하듯 느릿느릿 호텔을 향해서 걸어오다가 가게 앞에 걸린 네팔 옷이 눈에 들어왔다. 내 친구는 네팔 여행 중에 옷을 샀는데 순면인 데다가 헐렁해서 마치 아무것도 안 입은 듯 그렇게 편하다고 늘 자랑이었다. 심지어 그 옷을 자기 수의로 정했다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내가 포카라에서 눈여겨본 옷은 하얀색에 소매 끝과 옷깃에 색동이 들어간 깔끔하고 단순한 옷이다. 너무 하얀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이 가게에 같은 디자인인데 표백제를 쓰지 않아서 약간 누런 빛의 셔츠가 걸린 것을 보고 값이나 물어봐야겠다고 들어갔다.
셔츠가 850루피. 그 옆에 같은 디자인의 바지도 있는데 650루피 합쳐서 1500루피, 우리 돈으로 15,000원이라고 한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흥정의 재미를 위해서 관심 없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한옆에 있는 네팔 모자를 집어 들고 이거까지 포함해서 1500루피에 달라고 했다. 곤란한 듯한 표정을 잠시 짓는 듯했지만 장사의 기교에 불과했다. 아래위 싱글에 모자까지 완벽한 네팔 옷 한 벌을 장만했다. 옷을 사들고 호텔로 와서 풀세트를 입어 보고 사진을 찍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이제 태국에서의 휴식을 위해 트레킹 장비와 두꺼운 옷은 모두 수하물로 부칠 수 있게 정리하고 가벼운 배낭에 태국에서 쓸 물건만 담아 재정리했다.
내일이면 네팔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