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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Aug 30. 2024

가을이의 네 번째 가출

경로당의 힘

가을이와 큰 문제없이 1년 가까이 지냈다. 서울 아파트에 있을 때는 거의 24시간 기저귀를 채웠기 때문에 예전보다 배변 문제로 인한 나의 스트레스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하지만 잠시만 방심해도 오줌을 싸놓는 통에 여전히 서울 아파트 생활은 나도 가을이에게도 불편했다. 2024년 새해가 되자마자 가을이와 함께 농막으로 내려와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1월 8일 아침이었다. 며칠 전부터 독수리 10여 마리가 우리 산 근처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는데, 이날은 농막에서 불과 3~40m 떨어진 산기슭에 독수리 떼가 내려앉아 놀고 있었다. 날개를 펼치면 크기가 거의 2m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놈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10여 마리가 떼 지어 있으니 매우 위협적이었다. 워낙 덩치가 큰 놈들이어서 5.7kg짜리 가을이 정도는 단숨에 낚아채 갈 수 도 있을 듯해서 오전  내내 가을이를 농막에 가둬놓고 문밖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되었을 무렵 가을이를 데리고 농막에서 2km 정도 떨어진 아버지 산소에 잔디 관리를 하러 사발이를 타고 나갔다. 산소 입구에 도착해서 차 문을 열고 가을이를 땅에 내려놓으니, 오전 내내 밖에 나오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흥분해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달려갔다가 내가 부르니 나에게 달려왔다가는 나를 지나쳐서 또다시 달려갔다.


농막에서는 묶어 놓지 않아도 늘 내가 근처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잘 지냈기 때문에, 곧 돌아올 것으로 믿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잡초를 뽑고, 아카시나무 싹을 자르고, 잡초 발아억제제를 뿌렸다. 30분 정도 일을 마칠 때까지 가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걱정이 되어 가을이를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가을이를 내려놨던 곳에서부터 근처를 돌아다니며 가을이를 부르고 찾았지만 가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여 동안 근처 숲 속을 수색을 했지만 가을이를 찾지 못한 채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무리에서 낙오된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가을이가 나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가 헤어졌던 곳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곳에 입고 있던 점퍼와 장갑을 벗어 놓고 농막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챙겨 먹고 다시 가을이가 달아난 곳으로 와 봤다. 점퍼를 벗어 놓은 곳에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점퍼 위에 가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듬뿍 뿌려놓고 깜깜한 산길을 돌아다니며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었지만 가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쳐서 1시간여 만에 수색을 중단하고 농막으로 돌아왔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일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실제 지표면의 온도는 그 이하로 내려갈 것이었다. 이 밤 안에 가을이를 찾지 못하면 밖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커져만 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산소에 가봤다. 점퍼 위에 뿌려놓은 간식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이 녀석이 나와 헤어진 곳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1년 전 가출했을 때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부러져서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이번에는 차를 타고 2km가량 이동한 후에 가을이를 내려줬기 때문에 제 발로 집을 찾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아침에 하늘을 날 던 독수리의 먹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농막으로 돌아오면서 근처에 전단지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사진을 넣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산소 근처 도로가 전봇대와 사람들 눈에 띌만한 곳에 잔단지를 붙였다. 산소 아래 길 건너편 들에 있는 논밭과 비닐하우스 사이를 돌며 휘슬을 불며 가을이를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가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농막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당근과 포인핸드 앱에 실종신고를 올렸다. 포인핸드에는 강아지 찾는 전단지를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어서 추가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오후 2시경 새 전단지를 들고나가서 이번에는 버스 정류장에도 붙이고, 옥전리와 유전리 두 곳의 경로당을 찾아가 전단지를 전해드리며 혹시 강아지를 보면 연락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경로당에 전단지를 드리고 불과 2시간 정도 지난 오후 4시경 휴대폰이 울렸다. 유전리 경로당의 한 할아버지의 전화였다. 동네 할머니가 조금 전 산에 나무하러 갔더니 전단지에서 본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근처에서 놀고 있더라고 하셨다는 말씀이다. 깜짝 놀라 경로당으로 달려가니 경로당을 지난 산 쪽으로 가다 보면 마을 끝에 집이 하나 있고, 거기를 지나 산으로 올라가면 삼거리에 커다란 참나무가 하나 있으니 그 근처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길이 포장되어 있으니 차로 올라가도 된다고 하셔서, 사발이를 타고 언덕까지 올라갔다.


참나무 앞에 차를 세워놓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길을 오르내리며 가을이를 부르고, 휘슬을 불었지만 가을이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마을 끝 집 어딘가에 숨었을까 싶어서 그 집에 들어가서 마루 밑도 들여다 보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길로 나와서 참나무가 있는 삼거리 쪽으로 올라가려는데, 저 멀리서 꾀죄죄한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을 낮추며 '가을아'하고 부르니 강아지가 나를 향해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그렇게 꼬박 24시간 만에 가을이가 다시 돌아왔다.


가을이를 찾아서 내려오는 길에 경로당에 들러서 찾아주신 감사의 표시로 경로당에 돈을 드리려고 하니 한사코 사양을 하셨다. 그래서 그다음 날 영동 읍내에 떡집에 가서 맛있는 떡을 10만 원어치 사다가 경로당에 전해드렸다. 이래저래 가을이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녀석이다.


간밤에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갔을 터인데 어디서 노숙을 했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얼어 죽지는 않았나 보다. 가을이를 다시 찾은 곳은 전날 가을이가 달아났던 산소에서 직선거리로는 불과 6~700m 떨어진 곳이었지만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간 곳이어서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나 보다. 농막으로 돌아온 가을이는 하루종일 굶었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는 농막 안에 들어와서 늘어지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날 밤 시골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이날도 못 찾았다면 눈 속에 파묻혀 찾기가 더 어려워졌을 듯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이 녀석이 깨우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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