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의 세 번째 가출
날이 많이 서늘해진 2022년 11월의 금요일 아침이었다. 그동안 화분에서 키우던 캐나다 설탕단풍나무의 묘목 3그루를 농막 거실 창에서 잘 보이는 맞은편 산기슭에 심었다. 비탈진 산기슭을 파고 3년생 묘목을 옮겨 심는 동안 가을이는 내가 일하는 옆에서 작업로에 엎드려 구경을 했다.
나무를 심고 농막에 돌아와서 점심을 차려 먹고 나니 나른한 것이 졸음이 쏟아져왔다. 가을이는 농막 밖에서 놀고 있길래 잠시나마 자유롭게 놀라고 밖에 둔 채로 잠깐만 눈을 붙이기로 하고 자리에 누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불현듯 눈을 떠 보니 시간이 2시간이나 흘러 오후 3시였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가을이가 보이지 않았다.
농막 주변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가을이를 불렀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농막에서 가을이 혼자 놀러 나가면 짧게는 1~20분, 길게는 1~2시간 후에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돌아오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5시가 넘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가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날이 어두워져서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사발이를 타고 큰길로 수색을 나갔다. 도로를 오르내리면 가을이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디를 찾아봐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가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방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사발이를 타고 나가서 길을 따라 지난 8월 가을이가 갔던 길을 둘러봤지만 가을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놓은 채 밤새 뜬 눈으로 가을이를 기다렸지만 가을이는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길 건너 인삼밭을 하시는 김사장님이 오늘 인삼 수확하는 날이니 건너와서 인삼 캐는 걸 도와달라고 전화를 주셨다. 가을이가 집을 나간 상황에서 심난했지만 그냥 농막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나을 듯해서 건너가서 일을 도왔다. 6년을 정성스럽게 키운 인삼은 일일이 손으로 캐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땅을 뒤집으면 그 뒤로 사람들이 쫓아가며 뒤집힌 땅에서 인삼을 주어 담는 방식으로 수확하는 것이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질 무렵 인삼 수확 작업이 끝나고 김사장님은 인삼 한 자루를 담아주셨다. 농막으로 돌아와서 이 많은 인삼을 어떻게 하나 쳐다보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영동 동물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유기견 신고를 받고 매곡면사무소에 가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등에 심어진 칩을 통해서 나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연락을 한다며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영동으로 달려가 동물병원에 도착해 보니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가을이가 왼쪽 앞다리가 부러진 채 세발로 서서 부러진 다리를 덜렁거리면서도 꼬리치고 나를 반긴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에 눈물이 났다. 가을이에게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생각했던 것을 후회했다.
의사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가을이를 대전의 큰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토요일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도 대전의 24시간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 나와서 기다리다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느라 부러진 다리를 붙들고 잡아당겼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리에서 버려질까 봐 참는 것인지 가을이는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왼쪽 앞다리만 단순골절 형태로 부러진 것으로 보여 철심 2개로 다리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한 후에 뼈가 잘 붙고 나면 철심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장기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혹시라도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 발생하면 수술할 필요도 없이 죽기 때문에 일단 오늘 밤 지켜보고 내일 오전까지 살아있으면 오후에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의료보험이 없는 가을이의 치료비용은 나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금액이었다. 솔직이 그전에는 강아지에게 큰돈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다리가 부러져 덜렁거리면서도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가을이를 보았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됐다.
다음날 오후 가을이의 수술을 진행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수술이 잘 끝났다는 연락과 함께 철심이 박힌 가을이의 엑스레이 사진도 보내주셨다.
1주일가량의 입원치료 기간을 거쳐 퇴원한 가을이는 다행히 빠르게 회복하며 한 달 만에 다시 ’비숑 타임‘을 시전했고, 이듬해 3월에 무사히 철심 제거 수술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속리산 카페에서 데리고 올 때는 그냥 맨입으로 데리고 왔는데, 농막에 오고 난 이후 가을이는 수백만 원짜리 품종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