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스트레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서는 개를 길렀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차돌이'. 그 이름도 내가 지었었다. 학교 갔다 와서 녀석이랑 장난치고 놀았던 생각은 나지만, 내가 밥 주고 똥 치운 기억은 전혀 없다. 나는 내가 개를 키워봤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강아지와 교감하며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달콤한 상상은 가을이를 데려온 직후부터 여지없이 깨졌다.
우리 산은 소백산맥에서 속리산과 민주지산을 연결하는 산줄기 중 경상, 충청, 전라 3도의 경계 지역에 있는 야트막한 이름 없는 산이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해발 470m이고, 농막은 그 산자락 해발 250m쯤에 있으며, 농막에서 폭 2.5m의 비포장 산길로 200m를 내려가면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반경 1km 이내에는 집도 몇 집 없다.
농막은 가을이와 내가 살기에 완벽에 가까운 곳이다. 나는 농막을 '작은 천국'이라고 불렀다. 그 천국에 애물단지가 하나 있다. 사실 가을이는 건강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큰 소리로 짖는 일도 흔치 않으며, 이것저것 물어뜯지도 않는 반려견으로서 완벽한 아이다. 그놈의 배변 훈련 문제만 없다면..
솔직이 개를 키운다는 것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두 번의 가출 사건 이후 가을이는 꼼짝없이 줄에 묶여있는 신세가 되었다. 하루 두 차례 아침과 저녁 꼬박꼬박 시간 맞춰 밥을 주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게다가 이 분이 한 성깔 하시는 분이어서 기쁘면 기뻐서, 짜증 나면 짜증 나서 밥그릇, 물그릇을 발로 밟아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배변 문제였다. 줄에 묶여 있으니 행동반경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쳐도 좀 심했다. 똥오줌을 아무 데나 눴다. 심지어 자기 밥그릇이나 물그릇에 옆에 똥오줌을 싸기도 하고, 잠자고 나온 켄넬에 다리 들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력은 왕성해서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굵은 똥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농막에서는 흙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성가실 뿐 참을만한 일이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추석을 쇠러 서울 집으로 가야 할 텐데 가을이를 농막에 묶어놓고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서울에 데리고 가기 전 읍내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몇 가지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수치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고 2주 후 검사에서는 그마저도 모두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고 의사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다.
서울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애견미용실로 데려가서 ‘빡숑’ - 비숑의 털을 빡빡으로 밀어 버렸다는 - 을 만들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미용 중에 가을이 몸에서 커다란 진드기를 발견하셨고, 그 후로 그 미용실에서는 가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집에 데리고 와서 핀셋으로 몸에 붙은 진드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 잡으며 숫자를 세다가 300을 넘기고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한참을 더 잡다가 결국 가까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등에 바르는 약을 주셨다. 지금도 진드기 약을 매달 바른다. 2월이라서 추우니까 없겠지 생각하고 한 달 걸렀더니 3월에 밤톨만 한 진드기가 붙은 것을 본 후에는 매 4주마다 바른다.
농막에서는 배변 문제가 그저 성가신 정도였지만 서울 아파트에서는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였다.
초보 견주인 나는 가을이의 배변 시간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배변 신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선호하는 위치가 어디 인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배변 패드를 서너 장 깔았는데, 배변 패드를 피해서 마룻바닥에 쌌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베란다 바닥 전체에 배변 패드를 깔아보기도 했지만, 패드는 바닥에 깔았는데 오줌은 다리를 들고 벽에 싸버렸다.
똥은 비교적 처리가 간단했지만 오줌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한 번은 내가 보고 있는데 소파에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그만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말았다. “야!”라고 소리치며 달려가서 오줌 싸는 녀석의 엉덩이를 때렸다. 놀란 가을이는 싸던 오줌을 멈추지도 못하고 오줌을 사방으로 싸면서 도망갔다. 이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똥오줌을 못싸다가, 나가 외출하면 똥오줌을 싸는 통에 집사람의 책망을 들어야 했다.
실외 배변으로 훈련을 시켜보려고, 한 번에 30분씩 하루 8~9번을 산책시켜 보기도 했다. 산책할 때는 냄새만 맡고 돌아다녔고, 한 자리에 서서 배변을 기다리면 ‘앉아’를 했다. 그러다가 지쳐서 집에 들어오면 잠깐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마루 한가운데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집사람이 첫 아이를 낳고 한동안 엄청 힘들어했다. 이 무기력한 어린 생명체의 생사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어서, 자신에게는 잠시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엄청난 책임감에 짓눌렸던 것 같다. 그런 산후우울증이 나에게도 왔다.
가을이와 함께 한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을이의 배변 훈련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