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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Jul 12. 2024

이번에는 외출

가을이의 두 번째 가출

옛 주인을 다시 찾아가겠다고 가출했던 강아지를 운 좋게 붙잡아 와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기차역으로 가서 딸아이를 데리고 농막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딸아이와 가을이가 첫 대면을 했다.


가족들과 강아지의 이름을 뭐로 지을지 가족 단톡방에서 상의를 했었다. 집사람은 이 녀석이 꼬질꼬질한 게 트레이드 마크이니 '꼬지'를 추천했다. 우리 딸은 옛 주인이 부르던 이름 '봄봄'이가 여름의 끝에 왔으니 '가을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딸아이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자기가 밀던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강아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을이는 '가을이'가 되었다.


딸아이는 재택근무 중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농막에서 회사 일을 했고, 나는 가을이를 데리고 며칠 전 강풍에 쓰러져 작업로를 막고 있는 아름드리 잣나무를 잘라서 치우고, 트레이에 씨를 뿌려서 모종으로 키운 김장배추를 당근 수확한 자리에 심는 등 밭일을 했다. 밭일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게 들리는데 내 텃밭은 가로 1.5m 세로 2m의 딱 1평이다. 그것도 넓어서 반은 당근을 심고 나머지 반에 바질을 심었다.


다음날 아침 읍내에 나가서 가을이의 산책용 자동줄과 꼬임방지 회전고리가 장착된 최첨단(?) 코팅와이어를 사가지고 왔다. 이 줄은 항상 펴진 상태로 유지됐고, 2개의 와이어 사이에 회전고리가 달려있어서 가을이가 제자리를 빙빙 돌아도 다리에 꼬이지 않았다.


메밀 소바를 만들어 딸과 함께 점심을 먹고, 제법 잎이 무성하게 자란 바질을 수확해서 딸아이는 바질 페스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농막 안에서는 딸아이가 캐슈너트를 볶는다 바질을 다진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나는 좁은 농막을 나와서 가을이와 놀았다. 가을이는 나에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간식도 받아먹고 제법 살갑게 굴었다. 나는 2차 바질 페스토 작업을 위해서 바질을 좀 더 따놓으려고 가을이를 데리고 텃밭으로 내려갔다.


바질 밭

바질 따는 동안 옆에 있으라고 비닐하우스 기둥에 산책줄이 늘어나지 않게 하고 가을이를 묶었다. 바질을 따려고 하는데 가을이가 그새 빙빙 돌다가 산책줄이 발에 감겼다. 조금 전까지 농막 앞에서 함께 놀았으니 이제 서로에게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것으로 같았다. 그래서 발에 감긴 산책줄을 풀어주며 내가 바질 따는 동안 옆에서 놀라고 산책줄을 풀어줬다.


줄에서 풀린 가을이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가을이를 쓰다듬어 주려고 한 발짝 접근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슬슬 뒷걸음질로 내 손을 피했다. 그리고는 바로 산 아래쪽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허걱~ 저 녀석이 또 큰길로 나가려고 하네!'


나는 가을이가 뛰어간 방향으로 따라 뛰었다. 바로 어제 가출한 녀석을 간신히 잡아서 데리고 들어왔는데, 이 녀석이 또 큰길로 가고 있었다. 헐떡거리며 전력질주를 했지만 녀석의 달리기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한발 늦게 큰길이 보이는 곳까지 와서 내려다보니, 이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큰길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똥을 싸는 여유를 보였다. 부리나케 가을이를 향해 뛰어갔지만, 똥 싸기를 마무리한 가을이는 이미 어제 갔던 평밭 마을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나의 달리기 속도로는 녀석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발이를 타고 쫓아가려고 다시 농막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농막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딸에게 '가을이를 잠깐 풀어줬는데 이 녀석이 또 달아났어!'라고 외치고는 사발이를 몰고 가을이가 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평밭 마을 입구까지 갔지만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똥 싸고 있는 놈을 보고 농막으로 가서 사발이를 타고 다시 나오는데 어림잡아 20분 정도가 걸렸을 것이고, 20분이면 여기보다는 멀리 갔을 것 같았다.


평밭 마을을 지나 어제 가을이를 잡았던 곳까지 왔지만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더 멀리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차를 몰고 1km를 더 가봤지만 여기에서도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빨리 달렸다면 더 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더 앞으로 갔다. 거의 3~4km 떨어진 언덕길 꼭대기에 있는 보생원 입구까지 가봤지만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 보다 멀리 갔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차를 돌려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오는 흰색 트럭이 보였다.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어 길 한가운데에 차를 세운 채 맞은편 트럭에 탄 부부에게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혹시 오시면서 길가에서 하얀 강아지를 보셨는지 여쭤봤지만 못 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길 진입로 지점까지 돌아왔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옥전리 길가 집에도 가 봤지만 어디에도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길가 풀 속에 있어서 보지 못했나 싶어서 갔던 길을 수차례 왕복하며 살펴봤지만 어디에서도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2시간 넘게 찾아봤지만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짜로 잃어버렸구나'하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쑥 빠졌다. 그만 수색을 중단하고 농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돌리려고 핸들을 끝까지 꺾었다. 이때 차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지 모르지만 차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차를 돌려 산길 진입로 언덕을 올라가려는데 비포장 구간에 들어오자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언덕을 올라가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사발이를 큰 길가에 세워둔 채 농막으로 걸어 올라갔다. 며칠 후 정비를 해 보니 사발이 앞 차축이 부러져서 4륜구동 기능이 망가진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농막으로 돌아온 나는 완전 멘붕 상태였다. 바로 어제 매듭이 풀어져서 도망간 녀석을 간신히 찾아서 데려와 놓고 이번에는 바보같이 내 손으로 풀어줬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일단 포인핸드 앱에 가을이의 실종신고를 올렸다.


이번에는 찾을 가능성이 없으니 카페 여연의 사장님께 실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아지가 도망갔는데 바로 쫓아갔지만 멀리 갔는지 찾지 못했다, 혹시 옛 주인을 찾아 화북에 나타나면 연락 달라'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전화를 걸려고 카페 사장님 명함을 찾아봤지만 명함이 어디로 가고 없었다.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서 카페 전화번호를 찾아 카페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농막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서 농막 안에서는 휴대폰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날따라 카페 일이 바쁜 지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통화가 잘 되는 밖으로 나가려고 농막 문을 열어보니 가을이가 발판 위에 올라와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을이를 붙들고 소리쳤다.


"야, 인마! 어디 갔다 왔어!"


긴 외출에서 돌아온 직후의 가을이

정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었다. 하지만 이 녀석과 나는 질긴 인연의 끈으로 엮여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돌아다니다 왔는지 모르지만 2시간도 넘게 밖을 싸돌아다니다가 제 발로 찾아왔다는 것은 이제 나를 자기의 보호자로, 이 농막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가을이의 두 번째 가출은 해프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후로도 가을이는 끊임없이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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