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서의 음악에세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글을 쓰게 됐다. 이 소설에는 '감정의 물성'이라는 제품을 파는 회사가 등장한다. 감정의 물성이란 말 그대로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행복, 설렘, 즐거움 같은 감정들을 담은 예쁘장한 돌을 판매하기도 하고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렛을 팔기도 한다.
주인공은 이 회사의 감정의 물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의 연인 보현은 여러가지 감정 중에서도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우울체'를 사 모은다. 주인공은 이러한 보현도, 부정적인 감정을 값을 지불하고 사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
어쨌거나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대체 돈을 주고 우울해지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대표님, 저도 이 현상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모셔널 솔리드의 제품들이 미친듯이 팔려나가는 현상을요...사람들이 돈으로 행복을 사고 싶어 하는 건 이해가 가요. 그게 실제로 효과적인 행복이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있어요...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우울’을 시는 겁니까? 왜 ‘증오’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팔려나가죠? 애초에, 어떻게 그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사고 싶어 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까?"
대표는 대답한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감정은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하지만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실체가 없고 타인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짓누르는 무겁고 우울한 감정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감정을 물성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상상이다. 손 위에 두고 만져질 수 있고, 꺼내 보일 수 있고, 실체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나의 우울체는 음악이다. 나는 우울한 감정에 빠질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하루종일도 듣는 사람이니까. 누군가는 그 감정에 빠지지 말고, 즐거운 노래를 듣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햇빛을 보며 산책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감싸 안고 들여다보고 소중히 여기고 싶다. 음악은 그렇게 나를 위로했으니까. 나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감정의 물성 따위를 발명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서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음악을 감상 해보세요.
김은서
@youdontkillmyvibe
24살,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일은 다 해보는 사람입니다.
크리에이터링크에서는 HTML을 몰라도 누구나 직접 반응형 홈페이지를 무료로 제작 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제작, 홈페이지 만들기
kimeunseo.creator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