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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Jun 03. 2020

I can't breathe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요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콘텐츠를 소모한다.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지치고 힘이 든다. 무책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다.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은 시간이 날 때마다 확인하는 관심 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틱톡을 보고 있으면 각 나라의 SNS 좀 하는 선수들이 모여 동영상을 찍으며 노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미국에서 벌어진 한 사건과 항의 시위 현장 동영상들로 틱톡이 뜨거워졌다. 이와 관련한 동영상들을 다른 곳에서 계속 찾아봤다. 관련 기사도 찾아보며 대체 무슨 일인가 알아봤다. 평화로웠던 시위의 동영상들이, 절도와 폭력시위의 동영상들로 변해갔다.


이 사건을 정리하며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미국 경찰 '데릭 마이클 쇼빈'의 과잉진압 희생자 '조지 플로이드'


[사건 요약]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근무하는 경찰 '데릭 마이클 쇼빈'. 그와 동료 3명은 위조지폐 관련 신고를 받고 차로 이동 중이던 '조지 플로이드'가 제보한 인상착의와 비슷하다고 판단하여 그를 현장에서 체포한다.

쇼빈은 체포 과정에서 무릎으로 용의자 플로이드의 목을 누른다. 목이 눌린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 살려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쇼빈은 무시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결국 플로이드는 질식사로 생을 마감한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촬영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논란이 되었고 지금의 사태까지 오게 되었다.



[경찰의 거짓말]

사건 당일에 경찰 대변인은 용의자 플루이드가 차에서 내리는 과정 중 물리적으로 저항했다고 발표한다. 아래는 구글에 'george floyd'로 검색한 결과들이다.


아래는 내가 본 체포 동영상이다.

조지 플로이드가 차에서 내리는 과정을 담은 CCTV


미국 경찰이 말하는 물리적 저항의 기준을 나는 잘 모른다. 용의자를 체포하면서 질식사까지 하게 되어 논란이 된 사건에 '물리적 저항'이라 표현하며 발표했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경찰에게 위협적인 저항을 했구나. 그래도 이게 이유가 될까?라고 생각할 때쯤 이미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이 공개됐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분노 그리고 표현]

분노한 시민들은 즉각 표현했다. 다음 날 5월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항의 시위가 시작되었고 현재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는 최근 일주일 동안 현장을 찍은 동영상들로 항의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 감정과 표현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들이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피해자 플로이드가 외친 I can't breathe와 함께 많이 보였던 Black Lives Matter 구호의 시작이 2012년부터 시작되었음을, 미국 풋볼에서 한 선수가 시작한 한쪽 무릎 꿇기가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 표현이 된 것임을, 그리고 이런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분노의 끝판왕 - 폭력]

하지만 평화적인 항의 시위에서 절도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유명 고가 브랜드 건물을 부수고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백인의 차량을 세우고 물건을 던지며 길을 막았다. 지나친 폭력 시위로 변한 현장에서 한마디 한 백인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했다.

나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했지만 절도와 폭력에서 깊은 혼란에 빠졌다. 사실 난 폭력보다 절도 행위에서 사고가 정지되었다.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폭력이 분노의 끝이라는 점을 구조의 이해로써만 받아들였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절도는 정말 충격이었다. 물론 그들의 분노는 타당한 감정이었다. 동의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분노의 결과가 어째서 약탈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을 지켜보며 응원하던 반응들은 줄어들었다. 비난의 반응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꾸역꾸역 그 반응들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생각에 빠졌다.



[인식의 중요성]

어디까지가 타당한 것이지 아닌지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갖는 정답들이 변하고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떤 목표를 가진 집단은 그 구성원이 벌인 행동, 언행에 대해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차별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차별이다. 내가 선택한 집단이 아닌 태생부터 어떤 집단에 소속이 되어 태어난다. 그중 하나가 인종이다.


인류라는 큰 집단 밑에 인종을 구별하여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등급을 나누었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지금도 그것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현 플로이드 사건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소속(태생적 소속이라 칭해본다)이 내 삶의 걸림돌이 되었을 때, 그 비참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만약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같은 소속의 일부가 벌인 만행이 나를 설명할 때, 인생에 있어 최고의 억울함과 허탈감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현장에 있던 다른 흑인들이 약탈하려는 흑인들을 설득하고 팔짱을 끼며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장면에서는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버스 승차 거부운동을 시작으로 흑인 인권운동의 긍정적 인식을 만들어준 마틴 루터 킹이 이 현장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속상 속상 속상할 뿐이다.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이런 나에게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관련한 글을 쓰도록 만든 쇼빈과 플로이드.


쇼빈은 이미 약 18건이 넘는 민원 및 고소당한 이력이 있는 경찰이다. 플로이드는 범죄 이력이 있는 전과자다. 이전에 어떤 범행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줬는지 모른다.


다만, 플로이드가 옳지 못한 대우와 과잉진압으로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 부분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깝고 개탄스러울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감정에 휘둘려 글을 쓰며 보낸 이 시간이, 역사 공부로만 얇게 팠던 인종 갈등에 대해 마음이 동하여 진심으로 알아보는 시간이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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