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 타지 못한 엄마
중학교 2학년. 가족이 모두 누워서 잠을 기다리는 시간. 이 시간이 평온할 것인가 짜증 날 것인가는 엄마에게 걸려온 아빠와의 통화에서 알 수 있었다. 엄마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술에 취하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
아빠가 술에 취했지만
그나마 대화가 가능할 때
위 두 가지 표정을 제외한 그 외의 표정들을 봤을 땐,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이날은 아빠의 손에 치킨이나 과자 따위는 없다고 확신했다. 오직 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의 몸뚱이와 폭언만을 지니고 있었다.
잠이 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이 들기까지 문을 두드리거나 문 앞에서 소리 지르는 아빠의 상태, 대응하는 엄마의 자세를 상상하며 긴장하고 있으면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항상 반복되는 짜증이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취한 발걸음 소리를 듣고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엄마의 소리에 나는 눈을 감은 채 잠이 깼다. 그리고 현관문 특유의 주황색 전등 빛은 감은 내 눈을 통과하여 잠은 든 척을 하는 나를 긴장시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의 첫 대사라던가 말투에서 그냥 계속 잠을 자도 되는지, 재빨리 일어나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난 아빠와 엄마의 대립을 막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찾아서 실행하곤 했다. 15살은 능숙하다고 할 만큼 그냥 어떤 상태인지만 알면 되는 나이였다.
거하게 취한 상태에서 격앙된 어조나 욕설로 시작하는 현관문 출입을 예로 들면,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현관문으로 다가가면서 다녀오셨냐는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를 보며 안 자고 있었냐는 물음을 시작으로, 아빠의 심술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맞춰졌다. 5분 정도 자식 사랑을 입으로 실천하시거나, 앞뒤가 다른 무논리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엄마와의 몇 마디 전투로 끝이 났다.
그 외의 낮은 레벨의 다른 상황들은 아빠의 소리에 내가 깼다는 인기척을 연기하거나, 사전의 엄마와 이런저런 합의된 연출로 넘기곤 했다.
가끔, 내가 좀 지쳐있을 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SES 누나들의 음악을 들으며 엄마에게 모든 걸 위임하기도 했다. 물론 아빠의 입장 패턴이 엄마의 적당한 대처로 무마될만한 상황이라 판단될 때만, 지친 감정을 다스리며 사춘기를 겪는 척하는 아들이 되었다.
우리 엄마의 인생을 간접 경험했던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운도 따라줘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아직도 의문인 건 그렇게 아빠를 싫어하고 원망했던 엄마의 입에서 아빠만큼 착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엄마의 시대를 살아온 다른 엄마들도 대부분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 시대의 유행했던 교육방식일까. 엄마의 본능으로서 아빠의 이미지를 포장해주려는 것일까.
문뜩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시대를 참 잘 타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