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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27. 2020

거의 다 왔어

여행 이야기

마이산을 올라갈 때였다. 강화도의 마니산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는데, 마이산은 전북 진안에 있는 산이다.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굳이 말의 귀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마이산은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으로 나눠지는데, 멀리서 보면 토끼 귀라고 해도 어울리는 모습이다. 물론 멀리서 봤을 때이다. 예전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의 역할이 중요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나 싶기도 하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마이산을 오르려면 탑사를 거쳐야 한다. 탑사 주변은 마이산에서 굴러 떨어진 수많은 돌멩이들이 쌓여 만들어진 탑들이 즐비하다. 돌멩이를 하나씩 얹을 때마다 소원도 하나씩 올렸다고 생각하니, 잘못 부딪쳐서 넘어뜨리면 안 될 듯하다. 강풍이나 폭우에도 돌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 돌멩이를 올리나 보다. 이 산을 오르는 동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이 산을 내려가서 이루고 싶은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말이다.  

     

600m가 넘는 산이니 오르는 데 힘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탑사를 둘러싼 돌탑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자갈밭 천지다.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은 그나마 걷기가 편하다. 이곳처럼 작은 돌멩이들로 길이 만들어진 곳은 잘못 삐끗하면 발목을 접질릴지도 모른다. 자갈로 이루어진 길은 바닥이 고정되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상 부근에서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진정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두 봉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봉우리를 넘고 다른 봉우리를 넘을지 말지는 경계지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보통은 한 봉우리를 넘고 나서 다음 봉우리를 넘으려고 한다. 그러다 힘에 부치면 갈등하게 된다. 이때쯤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고, 정상까지 가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얼마나 걸어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올라갈까 내려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던진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가면 정상입니다.』    

 

비단 마이산뿐만 아니라 어느 산을 가더라도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사람은 턱밑까지 다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말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거의 다 왔단다. 조금만 가면 정상을 밟을 수 있으니 얼마나 희망적인가. 누군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면 대개는 ‘5분? 10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산을 오래 다닌 사람은 이런 말이 희망 고문이라는 것을 안다. 5분이나 10분이 걸린다는 것은 상대적인 시간이고, 거의 다 왔다는 것도 심리적인 거리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주는 말을 건네고, 희망을 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이런 희망의 말을 믿고 힘을 내서 다시 걷는다. 마이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상이 가깝지 않다는 것도, 정상까지 10분이 더 걸린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희망 고문을 받아들인다. 그냥 믿어본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게 인생이라더니.     

  

거의 다 왔다는 정상까지 가는 데는 30분이 넘게 걸렸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춤을 췄지만 그래도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시원했다. 희망 고문을 받아들인 대가로는 나쁘지 않네. 힘든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을 받아들일지 희망 고문을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무엇을 받아들이든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고문이 될지언정 희망의 말을 해줄 때가 좋을 때도 있다. 약효가 금방 떨어지니 너무 자주 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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