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한다. 한 번 참아 미움을 자르고 두 번 참아 분노를 자르고 세 번 참아 증오를 잘랐더니 죽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마음에 칼날을 얹어놓고 하나 둘 셋을 세면 분란을 일으키지 않나 보다.
형제간에 다툼이 발생해서 동생이 형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고, 홧김에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이 타 죽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말싸움을 벌이던 주민 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 누군가 중상을 입었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서 화가 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라고 논평하고, 다른 사람은 화를 부르는 사회라고 논평한다.
서로 조금만 참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사람들이 참 참을성이 부족하다며 혀를 찬다. 분명 잘못된 일이긴 하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극한의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그 순간을 참지 못해서 참사가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극한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회사 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호구 소리를 들어서 문제지 참는다는 행위에서 크게 손해 볼 일이 없긴 하다.
웬만큼은 참는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데, 간혹 사람과의 다툼이 발생할 때면 좀 더 참았어야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좀 더 참았어야 했다니. 참고 또 참아서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는 건데 얼마나 참으면 인내심 있는 사람이 되는 건지 되묻고 싶을 때가 있다. 실컷 참고 있다가 별것 아닌 일로 폭발하고 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한 후 다시 참는 행위를 반복한다. 오늘도 무한 반복되는 인내심 사이클 곡선을 타는 중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는데, 저놈의 열매는 언제쯤 나한테 떨어지려나.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하니 무작정 믿어볼 만도 한데 자꾸 의심병이 도진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참고 참아서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그 유명한 책 『시크릿』처럼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건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나마 한 가지 터득한 방법이 있다. 한 번에 화를 폭발시키지 않고 야금야금 분출시키는 것이다. 확실히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타인의 평가가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다. 그런데 부작용도 함께 나타나는 듯하다. 자꾸 혼잣말이 늘어난다. 속에서 부글거리는 불의 기운이 말 틈 사이로 뽀글뽀글 삐져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