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개미나 잠자리 등 곤충을 포함해서 몸 구조가 단순한 하등 동물을 벌레라고 부른다. 숲이나 집에서 몸체가 작고 기어 다니면 벌레로 분류해도 된다. 벌레를 키우거나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레의 외형은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수많은 다리로 움직이는 벌레를 보면 가끔 내 몸을 타고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해서, 일단 벌레를 발견하면 그 크기와 상관없이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피하게 된다.
‘버러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벌레를 뜻하는 ‘버러지’는 사람의 처지를 더 낮게 비유할 때 주로 사용한다. ‘벌레 같은 놈’이라는 말보다 ‘버러지 같은 놈’, ‘버러지보다 못한 놈’ 같이 욕설인 듯 욕설 아닌 욕설같이 사용되니 말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 벌레 또는 버러지. 벌레는 나름 열심히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중인데 인간은 스스로도 참 별것 아니면서 벌레를 열등한 존재로 분류해 버린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거나 혐오스러운 대상을 비유할 때 ‘벌레’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요즘엔 벌레 ‘충’을 붙여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혐오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돈벌레, 일벌레, 연습벌레, 책벌레, 공붓벌레, 급식충, 맘충... 좋은 의도를 붙여 사용했더라도 좋은 어감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얼마 전 ‘귀벌레(Earworm Syndrome)’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책에서 발견되는 진짜 벌레를 책벌레라고 부르듯이 귀에 기생해서 사는 벌레인 줄 알았는데, 중독성 강한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도는 현상이란다. 가끔 그런 노래들이 있긴 하다. 중독성 강한 후렴구 때문에 한 번 들으면 귀에서 떠나지 않고 윙윙 맴도는 그런 노래들.
노래가 아닌 누군가의 말이 귀에서 맴돌 때도 있다. 누가 말하는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환청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벌레들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머물 때가 있다. 귀벌레를 없애려면 껌을 씹거나 물을 마시라고 하던데, 이런 현상이 귀를 괴롭힐 때면 껌이나 물로는 되지 않았다. 말벌레라고 해야 하나. 나도 참... 별것에 벌레를 붙이네.
귀벌레는 리듬이라도 있지, 말벌레는 밋밋한 텍스트만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무시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자 말을 내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DJ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얼마 전 다퉜던 지인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엄마의 전화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말벌레의 주체는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갔다가 마음에서 다시 귀로 전달되는 내가 나한테 반복적으로 하는 말.
말벌레를 없애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했다. 묵직하게 머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말벌레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른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전과 다른 말벌레가 튀어나오긴 하지만. 꽤 오랫동안 말벌레 잡기를 못했는데 오늘 한 건 해결했다. 오래 묵혀두었던 고민과 스트레스를 해결했더니 한결 머리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