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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May 21. 2024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바로 그 순간

세월의 풍상이 새겨진 아버지의 얼굴에 평생 그리움의 자락이 스쳤다. 

묵직한 침묵 너머 서울로 떠나는 아들, 손자에게 아쉬움을 표하는 반쯤 들어 올린 손이 어색하고 수줍다. 


아버지 어깨가 에베레스트만큼 높아 보였던 시절, 그는 흔한 옛사람처럼 집에선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들 일상에 관심을 갖거나 잔소리를 늘어놓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다. 이따금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하면서 집 앞 슈퍼마켓에서 사온 롯데제과 종합선물세트. 자고 있던 나와 동생을 깨워 과자꾸러미를 안겨주고는 당신도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내 머리가 조금 더 커져 더 이상 선물세트 속에 무슨 과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하지 않던 시절부터 그와 나 사이의 침묵은 점점 더 길어졌다. 학교 다녀오겠다는 등교 인사가 하루 대화의 전부였다. 그렇게 살가움과 무관심의 중간 어디쯤에 그어진 모호한 경계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졌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든 침묵 속에도 아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과 주의깊은 관심이 배어 있었음을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자식 키우는 힘겨움을 실감했다. 자식을 잘 기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잔소리를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다 같을 것이다. 다만 그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의 애꿎은 마음에는 그저 아비가 준 서운함만 각인되있을뿐.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 장성한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했다. 내 아버지가 손을 흔들던 '진실의 순간', 나는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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