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았다. 의식은 서서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코끝에서 시작된 느낌은 내 해마 한구석에 잠자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는 이내 낯익은 시간 속에 서 있었다.
눈앞에 플로리다 서쪽해변이 펼쳐졌다. 햇살은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다. 맹렬한 눈부심으로 모두가 가자미눈이 되었다. 백사장 야자수 사이로 파스텔 톤의 아르데코 양식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청명한 하늘은 끝없이 푸르렀고, 저 멀리 멕시코만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였다. 길가에 늘어선 컨버터블 자동차들의 행렬은 오래된 필름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배낭을 메고 호기심 가득한 스물일곱 살의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주말의 해변은 축제 열기로 가득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인 거리의 소음, 비치로드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음향, 거리 공연자의 기타 선율,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섞여 이곳 네이플스만의 사운드를 만들었다. 난 브라질 출신의 어학원 친구 호베르토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어설픈 영어를 나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곱디고운 슈가샌드가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손을 뻗어 만져본 야자수 나무의 질감은 거칠었고, 밀려오는 물살이 피부에 처음 닿을 때 은닉된 나의 자아가 형형하게 날뛰었다. 해 질 무렵, 우리는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에어컨이 뿜어내는 차가운 공기가 후덥지근한 거리와 대조를 이뤘다. 처음 먹어 본 필리치즈 샌드위치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갓 구운 빵 사이에 육즙 가득한 소고기가 잘게 찢어져 있고 그 위에 듬뿍 흘러내리는 필라델피아 치즈의 조화.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플로리다의 맛이 났다.
밤이 깊어가면서 거리는 더욱 화려해졌다. 네온사인이 빛나는 클럽들, 밤바다를 배경으로 춤추는 사람들, 거리 곳곳에서 들리는 라틴 음악. 플로리다의 밤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밤늦도록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도시의 숨결을 느꼈다.
그때였다. 기름진 듯 어딘가 익숙한 냄새.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점점 강해지더니 순식간에 모든 감각을 압도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눈앞의 풍경이 흐릿해졌다. “뭐 해? 카트 끌고 오지 않고!” 아내가 채근한다. 우리는 오늘 추석 장을 보려고 같이 코스트코에 왔다. 나는 곧 깨달았다. 오감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단초는 매장 안을 가득 채운 로티세리 치킨 냄새였다는 것을.
후각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감각인가. 냄새 하나가 24년을 뛰어넘어 이토록 생생한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그렇게 오감을 아우르는 완벽한 기억의 세계를 창조해 내다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던 호베르토가 말했다. “우린 엄청 운 좋은 녀석들이야. 끝내주는 풍경 속에서 이렇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니…. 만약 우리 일생에 이곳에 다시 한번 올 수 있다면 그 건 정말 천운일 거야” 난 속으로 답했다. ‘내년에 다시 오면 되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말할 일인가?…’ 호기롭던 말이 무색하게도 난 그 곳에서의 일년간의 생활을 끝낸 2001년 8월 이후 미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