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설]
삼십년을 피해다니다 마침내 마주한 취미, 오디오.
돈 까먹기 제격인 악마의 취미라지만, 나는 까먹을 돈이 많지 않다.
1.
하루키나 류이치 사카모토의 스피커와 앰프 구성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오디오 박람회나 음향기기 전문점에서 청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패션의 완성은 몸, 오디오의 완성은 공간이다.
내 집은 넓지 않다. 평소 꿈꾸던 궁극의 시스템은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거쳐가는 구성으로 갖출 수밖에.
2.
맥킨토시는 RS250으로 냄새는 맡아봤으니 처분. 이를 시발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이어간다.
내 사운드 취향을 파악하여 시행착오를 줄여야 오디오 덕질로 가난을 겪지 않는다. 유명세로 내 취향을 오인하던 위험한 시절을 잘 통과했다.
3.
나는 탄노이나 하베스나 파인오디오를 좋아하는 줄(할 줄) 알았다.
알고보니 아니었다.
그 다음엔 내가 실제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해주는 철학의 스피커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옛날 동독 시절부터 ‘실제 사운드’로 명성을 쌓아온 가이타인(Geithain) 스피커를 찾아야 하나 같은 생뚱맞은 고민을 했다. 역시 아니었다.
나는 클래식하고 따뜻한 소리도, 실제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는 소리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장되고 왜곡된 테크닉을 좋아했다. 기계적 성능으로 압도해 해상도가 쨍한 소리를 원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음식으로 치자면 MSG.
4.
그러다 보니 ‘오디오적 쾌감’을 추구하는 스피커 브랜드를 찾아다녔다. 엘락, 모니터오디오 등등 기웃거리다 결국 그 흔한 포칼로 기울어져 갔다.
5.
그러다 우연히 인공감미료 사운드의 끝판왕, 패러다임-페르소나 시리즈를 만났다. 유닛을 베릴륨으로 처발처발하여 이 구역의 해상도 미친년은 나야를 외치는 듯했다.
6.
마통으로 영혼을 끌어, 미친년 막내를 들였다.
스피커가 미친년이면 앰프도 어느 정도는 미친놈이어야 한다. 앰프로 마냥 저가의 D클래스를 물릴 순 없다. 마통으로 관통하고 영혼을 질질 끌어 앰프는 naim 으로 했다. 소스-프리-파워 각각 구성하고 뭐 그러는건 이제 마통을 불태워도 나오지 않을 터. 네트워크-소스-DAC-프리-파워 한군데 뭉쳐놓은 인티앰프로 물린다.
7.
최백호의 <바다 끝>
무한반복으로 듣는다.
8.
그래도 여전히 류이치 사카모토가 고집했던 가이타인은 미련이 남는다. 들어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탄노이는 건너뛰더라도.
9.
공허(空虛)는 텅 비어있음이라는데.
공허한 마음은 왜 가볍지 아니한가.
텅 빈 나는 왜 가라앉는가.
큰숨 머금어도 부상(浮上)하지 아니하고
한숨 내뱉어도 게워내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