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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Mar 23. 2023

미국을 어찌할꼬!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 도토리 #41.

오랜만에 미국에 와보니 그 옛날 유학 시절 추억이 새롭다. 미국 생활 15년 중에서 마지막 2~3년은 중부에 있는 미시건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냈지만 석사와 박사를 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는 대표적인 동부 대학들이다. 물론 동부라고 다 같은 동부는 아니지만.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보다 2년 먼저 학위를 하고 교수 자리를 찾던 미국 친구의 발언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어떤 대학에 자리가 났는데 자기는 서부에 가서 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매사추세츠 주보다 펜실베이니아 주가 상대적으로 서부에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맨해튼이 건너다보이는 뉴저지 주에 머물고 있는데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예전에 비해 참 많이 변했다.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절 처음 이곳에 와서 건너다보던 40여년 전 모습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2001년 9/11 사태 이후 새 건물들이 참 많이 세워졌다. 진정 파괴가 창조를 이끄는가? 비행기 충돌로 인해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쌍둥이 빌딩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9/11 기념비와 박물관이 세워지며 주변으로 큰 빌딩들이 많이 들어섰다. 그런데 허드슨강(Hudson River) 건너 뉴욕 도심은 놀라운 변신을 거듭했지만 돌아서서 정작 사람 사는 곳을 둘러보면 미국은 참 변하지 않는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예전 친구들을 만나봐도 여전히 같은 동네 같은 집에 산다. 그저 사람만 폭삭 늙었을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게 또 있다. 미국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예전이나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워낙 땅이 넓어 아직 어지럽힐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미국 사람들은 우리만큼 분리수거에 적극적이지 않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에 아무 거나 때려 넣어 집 앞에 세워 둔 거대한 쓰레기통 안에 구겨 넣는다. 미국도 결코 쓰레기 처리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1980년대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 유명한 쓰레기 뗏목 사건을 기억한다. 이제는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지만 뉴저지 주 쓰레기였던 것 같다. 쓰레기를 매립할 곳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뗏목을 만들고 그 위에 쌓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걸 끌고 주변 다른 주를 방문하며 웃돈까지 얹어 떠넘기려 했으나 그 어떤 주도 응하지 않아 몇 달 동안 악취를 풍기며 미국 동부 해안선을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그린피스(Greenpeace) 대원들이 승선해 “다음에는 재활용을 시도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그 옛날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사뭇 겸손한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킨다.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되고 1969년 미국 정부에 환경보호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가 설립되며 미국이 제법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나라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미국의 환경 흑역사는 쉽사리 덮이지 않는다. 1910년 미국의 사업가 윌리엄 러브가 파산한 뒤 방치한 거대한 웅덩이에 1942년 후커 케미컬(Hooker Chemical)이 뉴욕 주 정부의 승인을 얻어 산업폐기물 매립지로 사용하며 벌어진 그 유명한 러브 커낼(Love Canal) 사건은 폐기물 관리 소홀로 빚어진 대표적 환경 참사다. 1942년부터 1950년까지 무려 2만2000여 톤의 온갖 유해물질을 버려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을 위해 추진했던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폐기물도 포함된 걸로 드러났다. 운하 바닥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철제 드럼통에 폐기물을 넣어 봉인한 다음 매립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누출되어 생태계를 오염시키며 학교와 주택가로 분출되었다. 환경 보호에 대한 무지가 부른 엄청난 재앙이었다.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에게 200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는 미국에서 일어난 또 다른 끔찍한 환경 오염 사태를 고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힝클리(Hinkley)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천연가스 냉각 시스템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6가 크롬(hexavalent chromium)이 함유된 냉각수를 그대로 인근 연못에 방출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온갖 장기에 암을 얻어 사망한 대표적인 지하수 오염 사건이었다. 


 미국의 환경 파괴는 남의 나라에게도 피해를 입혀왔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3년 후인 1965년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적군을 노출시킬 목적으로 흔히 ‘고엽제(defoliant)’라 부르는 제초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10년 동안 미군은 무려 7,200만 리터의 고엽제를 뿌려 전투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거뒀지만 이 고엽제의 주요 성분인 다이옥신(dioxin) 때문에 베트남 주민은 물론 참전했던 미국, 호주, 한국 군인들은 각종 정신 질환과 더불어 높은 암 발병률과 기형아 출생률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미국이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 협약에서 대놓고 탈퇴하거나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볼썽사나운 일이다. 


 이런 미국 사회에서 나는 이번에 약간의 희망을 보았다. 다른 주도 동참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뉴저지 주에서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 봉투를 제공하지 않는다. 손수 장바구니를 가져오지 않으면 대형 쇼핑백을 따로 구입해야만 한다. 몇 차례 깜빡하고 빈손으로 갔다가 매번 쇼핑백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일이 벌어지자 나 역시 곧바로 장바구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미국에서는 한때 길을 걸으며 개똥을 밟지 않으려 두리번두리번 살펴야 했다. 반려인들에게 배변 봉투를 지참하라고 독려하기보다 뉴저지 주에서는 아예 길 곳곳에 배변 봉투를 꺼내 쓸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이제 드디어 미국도 환경 보호에 서서히 눈을 뜨는 것 같아 반가웠다. 이 두 예는 우리도 당장 도입해도 좋을 듯싶어 여기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하나는 돈을 쓰게 만들어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낸 세금을 아주 조금 사용해 환경 보호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이다.  


    


뉴저지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장바구니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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