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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May 16. 2023

진관동 습지 지킴이 '물자리'

지저분 정신 - 지저분 저항단을 소개합니다.

지저분 정신(ㅈㅈㅈ)의 ‘지저분 저항’은 지저분의 영역을 넓히는 직접적 실천을 행하는 파트입니다.


이번 지저분 저항에서는 서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자연습지 중 한 곳을 20년 가까이 모니터링하며 지켜오신 지저분 저항단을 소개합니다.


진관동 습지 지킴이 ‘물자리’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자원활동가모임)

습지 모니터링 중인 '물자리'. 왼쪽부터 박은경 씨, 손보경 국시모 간사, 김유성 씨, 한연숙 씨.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 진관동 습지는 서울에 남은 몇 안 되는 자연습지이다. 원래는 논농사를 짓던 곳으로, 경작을 중지한 이후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로 습지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이에 갈대, 부들 같은 습지식물, 잠자리 같은 수서곤충, 도롱뇽, 개구리 같은 양서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중요한 서식지가 되었다. 특히 진관동 습지는 창릉천과 북한산을 잇는 곳에 위치하여 물새와 산새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습지로 평가받으며 2002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서울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진관동 습지의 상당 부분이 사유지인 점 등의 이유로 점점 육지화되어가고 있다.


진관동 습지 내. 새들이 목욕하고 가는 곳이다.


'물자리' 소개


물자리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약칭 국시모)의 자원활동가모임이다. 2005년 국시모에서 실시한 진관동 습지 모니터링을 위한 자원활동가 교육에 참가한 이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엔 10명으로 시작했으나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가다 보니 지금은 김유성 씨, 박은경 씨, 한연숙 씨 이렇게 세 사람이 남았다. 국시모 간사 손보경 씨, 시간이 날 때마다 참가하는 신원임 씨도 함께 하고 있다.


물자리 활동의 시작은 지적 호기심이었다. 생물들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이전에 봤던 생물을 해가 바뀌고 또 보아도 새로웠다. 습지가 넓지 않은 공간인데도 올 때마다 모양이 달랐다. 주인공도 달랐다. 어느 순간엔 생물 하나하나가 아닌 습지 안에 어우러져 있는 생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은경 씨는 이런 모습을 담은 책 『습지 그림일기』(산지니, 2018)을 내기도 했다.


한편 습지에서 습지답지 못한 모습이 보일 땐 안타까운 마음도 컸다. 그걸 바로잡고자 물자리는 자연스럽게 습지지킴이가 되었다. 이들을 지저분 저항단으로 선정한 이유이다. 이들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잘리고, 제거되고, 파괴되는 자연의 편에 서서 자연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손대지 말라고 외치는 장본인들이다.


습지 생태 변화를 글과 그림으로 담은 박은경 씨의 관찰일기 『습지 그림일기』


물자리의 지저분 저항


공원이 될 뻔한 진관동 습지

2020년 9월, 코로나가 한창 심각했을 당시 물자리가 모니터링을 잠깐 중단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은평구청에서 일자리창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녹화사업으로 인해 습지가 훼손당했다. 물자리는 40여 일만에 방문한 습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은평구청의 무번별한 진관동 습지 녹화사업으로 인해 훼손되었던 2020년 당시 습지 경관


나뭇가지는 모두 다 '깨끗하게' 베어졌고, 습지 내 생명의 공간인 물길에는 베어낸 나뭇가지로 메워져 있었다. 습지는 아주 평평하고 깨끗하게 변해버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더 가관이었다. 베어낸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화장실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나무에 못을 박아 부채를 걸어둔 것도 보였다. 습지 안쪽 물고랑 쪽에 모여 핀 달뿌리풀 쪽은 질퍽한 땅이었는데, 당시 일하시던 분들이 주변 나무를 베려고 하니 방해가 되었는지 흙을 돋아 물길을 따로 파버린 흔적도 발견되었다. 달뿌리풀도 잘려나갔다. 나뭇가지가 잘려나가게 되면서 바닥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땅이 말라버려 고마리 같은 습지 식물이 한동안 안보이기도 했다. 습지 동물의 먹이와 보금자리까지 훼손되었다. 그야말로 지저분 정신에 완전히 위배되는 사건이었다.


당시 물자리는 은평구청에 직접 찾아가 정식으로 항의했고, 국시모 단체 차원에서 서울시 녹지과, 북한산관리공단에 상황을 알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 문제제기를 통해 은평구청의 녹화사업은 중단되었고 그 후로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베어진 나뭇가지로 메워진 물웅덩이를 맨손으로 막 파헤쳤어요. 그랬더니 물웅덩이가 나타나더라고요. 걷어냈을 때 썩은 냄새가 확 나면서 개구리 두 마리가 보였던 것이 기억나요." (한연숙)


2022년 6월 진관동 습지의 맹꽁이알. 출처: 한연숙 페이스북


훼손된 버드나무, 야생동물 포획틀, 골프공

습지 주변에 위치한 택배회사에서 버드나무를 자른 일도 있었다. 꽃가루가 날린다는 이유였다. 이것을 계기로 택배회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한 번은 누군가가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서 만든 야생동물 포획틀과 철사로 만든 올무를 진관동 습지에 설치한 것도 발견했다. 물자리는 이를 국립공원공단에 알렸고, 제거 작업이 이뤄졌다. 진관동 습지에는 아직도 골프공 일부가 남아있는데, 한때는 골프공이 많이 날아왔다. 이사 간 택배 회사 직원들이 습지 쪽으로 공을 날리며 골프 연습을 한 것이었다. 골프공 사건 이후 은평구청에서 주위에 플래카드를 걸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는 골프를 하거나 그곳을 훼손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습지에 남아있는 골프공


물자리에서 이곳을 모니터링하지 않았다면 은평구청, 북한산관리공단, 서울시 그 누구도 몰랐을 일이다. 그러니 관련 조치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느샌가 진관동 습지를 지키는 감시자가 되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줄고, 우리가 하는 이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일종의 권태기도 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느샌가 이곳을 지키기 위한 감시 역할도 하고 있더라고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을 때 화도 나지만 우리의 역할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어요." (박은경)


습지의 변화를 지켜보다


물자리가 처음 습지 모니터링을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보다 물이 훨씬 많았다. 발이 빠져서 습지 안쪽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2011년에 발간된 진관동 생태경관보전지역 생물 모니터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확인된 식물상은 339 분류군, 곤충상(2005-2011) 나비류는 39종, 잠자리류 32종, 노린재류 29종, 딱정벌레류 39종, 메뚜기류 25종, 양서류는 9종, 야생조류는 85종이 확인되었다.

"옛날에는 뒷다리 나오고 꼬리 덜 짧아진 애들이 물웅덩이 주위로 엄청 뛰어다녔어요. 한국산개구리나 뭐. 우리가 지나다니다 밟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또 이곳은 북한산 바로 아래 위치해 있는데 바로 옆 창릉천과도 연결이 되거든요. 그러니 하천에 있는 물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습지가 창릉천과 북한산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산새와 물새가 교집합적으로 있는 공간이 되었죠." (박은경)


그러나 진관동 습지는 훼손으로 인해 육지화되어가고 있다. 습지 상류에 주말농장이 생겼다. 습지를 흙으로 메우고 땅 밑에 하수관을 심었다. 그러니 물이 땅을 적시며 흐르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렸다. 해당 지역엔 큰 물웅덩이도 있었다. 그런데 안전사고 예방을 명목으로 모두 메워졌다. 그 후 주말농장 구역에 서식하던 맹꽁이, 산개구리, 도롱뇽 등이 보전지역 쪽으로 옮겨왔다. 그전엔 주말농장 쪽에서 나던 맹꽁이나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보전지역 습지구역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서식지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주말농장뿐만 아니라 주변 농장주나 땅주인들이 복토를 하면서 육지화는 가속화되었다.


습지 곳곳에 자리 잡은 붉나무는 육지화의 신호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지가 습지로 남을 수 있도록!


진관동 습지 보전대책의 핵심은 사유지 매입이다. 2021년 환경부(국립공원공단)가 습지 내 일부 부지를 매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습지는 소유주가 총 5명인 사유지이다.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물자리는 사유지 관리자, 소유주도 만나 그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땅 소유주님 입장도 이해가 가요. 어느 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땅이 갑자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이 되어서 내 땅에 대한 권리 행사가 어렵게 되었다면 화가 날 수 있죠. 한편 그분들은 오랫동안 이 땅을 소유해 온 분들로서 관리도 해오신 분들이라 여기가 논이었고 여기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고 이 역사를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공단과 소유주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협상을 진행하고 이 지역의 스토리도 잘 살리면 좋겠어요." (김유성)

물자리는 활동 초기였다면 땅 소유주 얘기는 듣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슈들이 크게 들리고 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야 습지에 사는 생명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습지가 북한산과 창릉천에 끼어있듯 이들도 습지와 시민들 그리고 관공소 사이에 끼게 되었다.


물자리의 한연숙 씨는 주말농장이 생기고 보전지역 안으로 들어온 개구리들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진관동 습지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더 늘어났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이 육지화되었지만 습지는 습지구나 하는 경이로움도 여전히 느낀다 말했다.

"장마철에 맹꽁이 모니터링하러 가끔 와요. 물길 막고서 집을 짓다 보니까 주변 다른 곳은 사고가 많이 나고 무너지고 엉망진창이 돼요. 그런데 이 습지는 잔잔하더라고요. 그렇게 비가 많이 와도요. 주변에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도 있지만 망가진 모습이 아니라 고요해요. 습지 특유의 홍수조절능력을 눈으로 확인하는 거죠.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자리니까, 물을 머금으니까요." (한연숙)
"비가 안 와서 걱정이 되었는데 가보면, 생각보다 그렇지 마르지 않은 거예요. 혹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찰랑하겠다, 해서 가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거예요. 습지의 땅은 확실히 다르구나 느끼죠." (박은경)


곤충이 지어놓은 집
4월에 만난 청둥오리 한쌍


지저분 저항단 '물자리'의 마지막 한마디


"자기와 가장 가까운 주변 자연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자연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유성)


"작은 공간이라도 그곳에 어떤 다양한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이 지구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종들도 살고 있다는 걸 의식하게 하는 거죠. 눈에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그러다 보니 인간만 생각하게 되고 파괴만 하고, 편리만 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연숙)


"요즘은 삶의 방식이 빠르고 트렌드가 있잖아요. 그런데 자연은 계절에 따라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정해져 있는 질서에 의해 돌아갑니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공부하며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과 맞닿을 수밖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나무를 만나야만 자연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 속에서 또 내 안에서 자연과 같은 모습들을 만나갈 수가 있더라고요. 내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게 되면 다른 것도 귀하게 여기게 되잖아요. 한 존재로서의 나에게 훌륭한 가치를 매기면 다른 것에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은경)


이상으로 지저분 저항단 소개를 마칩니다.

습지가 습지답게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물자리의 지저분 저항을 응원합니다.



인터뷰어|  

박지연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인터뷰이|  

김유성, 박은경, 한연숙 물자리 자원활동가(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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