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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Dec 02. 2018

meet, again

절대 잊히지 않는 사랑도 있다

이른 아침의 모닝 카페. 갓 내린 커피 향과 펫 맨시니의 왓츠 잇 올 어바웃이 천천히 흐르는 그곳. 


"5년 만이네."     

"...그래."     

"잘 지냈어?"     

"...그럭저럭."     

 

가끔씩 모닝커피를 마시러 가는 그곳에서, 여자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의 손을 쳐다보고 있다. 가느다랗고 여윈 손에 반지 같은 건 없다. 그게 뭐라고, 순간 여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랬구나. 나도 그럭저럭 살아왔어."     


그럭저럭 살아왔다니. 남자의 대답에서 행복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가엾은 사람, 왜 행복하지 못했던 거야. 당신이라도 행복했어야지. 

 

"...당신은, 늘 잘 살잖아."     

"그래, 맞아.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어. 뭐 딱히 못 살 인생이 있겠어? 이렇게... 살고 있고 또 이렇게... 살아가겠지."     


남자의 정돈되지 못한 말들이 주르륵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린다. 여자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진다. 그를 알아왔던 긴 시간 동안, 남자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깨끗하게 빨아 구김 하나 없이 다림질한 흰 셔츠 같던 그였다. 그런데 그 날, 여자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빛바랜 니트 스웨터처럼 보인다. 


"..."

"아, 미안. 그냥... 너 보니까 너무 반가워서. 내가 좀 말이 많지? 오늘."     

"당신..."     

"아무튼 진짜 너무 반갑다! 이렇게 보니까 얼마나 좋아, 가끔 소식도 좀 전하고 그렇게 살자 이제."     


그는, 잘 살아야 했다. 그런 줄 알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을 박살내고 떠난 사람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미워하는 마음이 더 지독해지고 결국엔 증오가 되어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사랑의 마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침내 오래된 사랑을 끝내고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 잘 산거 아니었어."

"..."

"바보야... 잘 살았어야지... 그랬어야지... 왜 이렇게..."


언젠가 한 번쯤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여자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단 한 번의 순간과 어느 날 갑자기 마주했을 때, 그때는 생각하고 다짐했던 대로,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아무렇지 않게, 너 따위가 내 인생에서 떠난 간 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고 그래서 오히려 고맙다고. 그렇게 웃으며 말해 주려 했었다. 몇 백번을, 몇 천 번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그런데, 눈물이 터지고 만다 바보처럼. 그 남자는 늘 그랬다. 여자가 애써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단번에 열어버리고 마치 제 집처럼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털썩 누워버리는 뻔뻔한 이방인. 그로 인해 휑하니 비었던 마음이 비로소 행복으로 꽉 찰 수 있는 바보 같은 여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5년,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여자는 계속 바보로 살 것이다. 그 남자 앞에선.         


"커피 더 마실래?" 

"..."    


남자가 따뜻한 목소리로 물으며 여자를 쳐다본다. 그뿐이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커피 더 마실래,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봄날 같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에 여자의 마음 가득했던 추위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따뜻한 시냇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5년, 다섯 번의 겨울을 나면서 더욱 견고하고 날카롭게 쌓았던 남자에 대한 불신과, 증오와, 그리고 자신을 향했던 자책의 견고한 얼음 산이 녹아내리는 데는 채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너를 내 인생에서 내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     

"..."     

"미안해. 너한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 시간, 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이렇게 버티고 살아 있는 거니까. 누군가의 기억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게 거짓말 같지만, 가능하더라."  

"..."     

"5년 만에 만난 사이치곤 너무 말이 많지? 하하. 미안."     

"..."     


'더 스웰 시즌'의 <In these arms>가 흐르는 모닝 카페. 구석진 자리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조금은 서먹해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래된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조용하지만 친숙한 분위기는 이른 아침의 차가웠던 모닝카페를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두 잔의 커피. 이미 식어버린 블랙 컬러 액체를 사이에 두고 시간은 흐른다. 소리 없는 울음으로 가늘게 떨리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아주는 남자의 손. 따뜻하고 정갈한 그 손위로 여자의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남자는 가만히 여자의 눈물을 닦아준다.      


You were restless, I was somewhere less secure...      

쉴 곳 없는 당신, 난 당신의 쉼터였다네...      


월요일 아침의 모닝 카페. 사랑은 때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실체를 알게 되는 안타까운 깨달음일까.  그래도, 그래서 나쁘지 않은 mee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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