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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May 02. 2022

차라리 조수석에서 잠이나 자라지

조수석의 매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운전은 할 수 있지만 조수석은 무서워요


조수석에서 바라본 신호등


차라리 운전을 못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수석에 앉을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우역곡절로 딴 운전면허는 장롱 속에 처박힌지 오래이다. 지갑과 함께 분실한 이후로 다시 발급받지도 않았다. 오롯이 자격증을 위한 시험이라니, K-수험생 같은 마인드가 여전히 남아있나보다.


이제까지 뒷좌석에만 앉던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겨우 조수석에 몇 번 앉을 기회가 생겼다. 가족들끼리 차를 탈 때는 아빠와 엄마가 각각 운전대와 조수석에 앉았으니까. 나와 언니는 뒷좌석에서 휴대폰을 하거나, 때로는 기대어 잠을 자기도 했다. 가끔씩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감탄을 했다. 뒷좌석에서 지나가는 차들은 느렸다. 옆차선에서 일정하게 속도를 내는 차들은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뒷좌석의 풍경은 멈춰있었다. 반면에 조수석은 차의 속도를 온전히 보아야 하는 자리였다.


제주도에서는 차를 운전해야 제주를 200% 즐길 수 있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뚜벅이 생활을 하며 불편한 점을 많이 겪었다. 제주의 배차 간격은 30분이면 감사한 편이고, 몇몇 버스는 매번 카카오맵을 볼 때마다 "배차정보없음"이 떠서 발을 동동 굴려야만 했다. 그래서 초록색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고 카카오맵에 뜨면 이를 믿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여 그나마 자주 오는 버스들을 미리 확인해야했다. 파란색 버스가 그나마 양호하다. 버스를 무사히 환승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빌딩처럼 모여있지 않고, 특히나 감성 카페의 경우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버스에 내려서도 20분은 걸어가야 한다. 덕분에 다리가 퉁퉁 부은 채로 돌아오게 된다.


스쳐지나가는 풍경들


조수석 매너 = 잠자기?


남자친구 덕분에 며칠 렌트카를 빌려 돌아다녔다. 조수석에서는 확 트인 시야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도로의 상황도 한 눈에 보인다는 것. 차라리 운전을 배우지 않았다면 모를까, 얼핏 배운 게 있으니 모든 차들이 끼어들 것만 같아서 홀로 덜덜 떤다. 알아서들 잘 갈텐데. 오히려 내가 유난인거지. 앞차가 깜박이를 켜도 심장이 쿵, 그냥 옆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깜박이를 켤 거 같아서 쿵, 앞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을 거 같아서 쿵. 심지어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조차도 중앙선 따라 잘 가고 있는데 역주행 할 거 같은 마음에 또 쿵쿵 거린다. 뚫려있는 도로를 지나가다가 조금이라도 차들이 보이면 눈을 꼭 감고 만다.


조수석 매너는 몇 번이고 조수석을 타도 도저히 모르겠다. 지루하지 않도록 말을 거는 게 좋은지, 아니면 집중할 수 있게 얌전히 내 할 일을 하는 게 좋은지. 네비를 잘 보면서 말을 해주어야 할까, 도로 상황을 같이 면밀하게 살피고 옆에 차가 온다는 걸 말해주어야 할까. 나의 운전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잠을 자라고 했다. 심장이 쪼그라들어 손잡이라도 잡으면, 내가 긴장한 게 다 티가 난다고 한다. 조수석에서 긴장하면 운전자도 긴장한다.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해야 한다. 그래, 차라리 잠이나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구름을 볼 여유 정도는 있지


운전은 아직도 무서워요


운전이 무서운 이유는 사고가 나서보다는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면 그나마 다행이지, 자동차, 혹은 보행자, 심지어 야생동물까지. 도로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상처를 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떨면서 가게 된다. 제주도 도로를 지나가면서 서울에서는 손에 꼽아서 보았던 로드킬을 하루에 한 번 꼴로 보았다. 참새, 비둘기, 고양이까지. 야생동물이 지나가면 차를 멈추지 말고 그대로 치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오히려 급하게 멈추려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랬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운전으로 인해 일어난다.


유튜브에서 '생태통로'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60일간 고속도로에 세워진 생태통로에 CCTV를 설치해두고, 정말 동물들이 지나가는지를 본 것이다. 너구리, 고라니, 고양이, 사슴, 멧돼지 등 여러 동물이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영상에서는 이 생태통로를 '반창고'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찢어진 상처 위에 반창고를 붙인 격이라고.


정말로 야생동물이 지나갈까? 60일동안 관찰해봄, 새덕후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유튜브 링크


물론 운전할 때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 불법주정차들이 많은 곳에 가면 인도가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하게 된다. 차도 옆으로 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역시 초보 운전자에게는 최종보스나 다름없다. 조금 옆으로 비켜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가 중앙선을 넘을까봐, 혹여나 사이드미러가 사람을 칠까봐 안절부절하게 된다.




제주도의 도로는 서울보다 차가 없고, 도로도 뚫려있어서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특히 해안가도로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곳이다. 시원하게 달리고 싶다면 제주도 도로만한 게 없다. 하지만 초보운전자들의 렌트카, 깜박이를 넣지 않는 택시, 귀가 아플 정도로 엔진 소리를 내며 무섭게 추월하는 차들 덕분에 무법지대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제주도는 금세 어두워지고, 도로에 가로등도 몇 없기 때문에 야간운전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 (심지어 야간일 때 더 달리는 차들이 많다) 차가 있어도 일찍 집에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


참고로 남은 일정 98퍼센트 정도는 뚜벅이 일정으로 다녔다.


버스 시간표를 잘 외워두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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