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밤과 밝은 밤의 차이
제주에 왔음에도 밤하늘을 올려다 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로등도 몇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지는 제주의 밤이기에,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서둘러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숙소가 동쪽에 위치했기에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대신, 분홍과 보라빛을 띄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다가 커튼을 쳤다. 오션뷰 숙소에 테라스까지 딸려 있는 숙소를 잡았는데도 밖으로 나가 본 건 몇 번 그치지 않는다. 창문을 열어 테라스에 나갈 의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따끈한 보일러를 틀고 이불에 누움과 동시에 먼지처럼 흩어진다. 어떻게든 손으로 쓸어모아야 겨우 모이는 의지였기에 온기와 이불, 마감과 설거지 등의 쉴새없이 늘어나는 핑계들을 붙잡고서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보일러 하나는 따끈했다.
그러다 오늘, 처음으로 제주의 밤을 만났다. 일주일만의 맑은 날씨 덕분이었다. 숙소로 들어오는데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추운 날에 왜 굳이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나 싶어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머리 위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서성임 덕분이었다.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붙잡는 맑은 밤이었다.
맑다와 밝다의 차이점은 타인 혹은 바깥의 개입에 있다. 서울은 밝은 밤을 지니고 있다. 바깥의 가로등과, 빌딩의 형광등으로부터 일궈낸 밝음이다. 반면 제주의 맑은 밤은 하늘 스스로 먹구름을 걷어내고서 나온 성질이다. 별의 반짝임을 방해하는 빛들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이 밝아보인다는 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왔으며, 정신이 맑다는 건 온전히 자신이 느껴야 하는 영역이다. 방이 밝은 건 스탠드나 다른 조명들의 밝음으로부터 온 것이고, 시냇물이 맑은 건 그 어떤 방해물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밝은 걸 찾기는 쉬우나, 맑기는 어렵다. 불을 켜면 밝게 되나, 하늘이 맑으려면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소풍 전 날처럼 중요한 날에 제발 하늘이 맑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만드는 것들이 '맑음'이다. 그래서일까. 별이 보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고 싶어진다.
테라스에서 별 사진을 찍으려고 애썼다. 휴대폰 카메라에서 '프로' 모드로 들어간다. (참고로 나의 휴대폰은 갤럭시 S21+이다.) 셔터스피드를 30초 이상으로 설정하고, 조리개를 최대로 높인다. 카메라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되기에 손으로 잡지 말고 삼각대를 설치해야 한다. 30초 정도 기다리면 야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미세하게 빛나는 별들이 사진 안에 담겨 있었다. 보다 신기했던 건 어둠에도 색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하늘인데도 색감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있었다. 카메라를 잘 아는 사람들은 설정이나 렌즈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어둠에도 색채가 있구나.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동경한다. 자연이 숨겨둔 비밀이다. 비밀이 많을 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비단 사람뿐이 아닌가보다. 명탐정 코난에도 비밀과 관련된 명대사가 나온다. "A SECRET MAKES A WOMAN WOMAN" 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워낙에 속내가 뻔히 잘 보이는 편이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별을 보고서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는 찬바람 때문만은 아닐 거였다. 끊임없이 성장과 변화를 갈구하는 열등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변하지 않는 걸 찾을 수 있기를. 맑은 밤이 오지 않더라도 너머에 반짝이는 볓들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기를. 이만큼이나 별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 정도는 내 소원을 들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