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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Apr 10. 2022

제주에 가면 다른 사람이 되나요?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를 들으며

3일차


버스에서 만난 제주 여행 테마곡


뚜벅이는 버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제주도가 워낙 넓기도 하고, 가게나 관광지가 멀찍히 떨어져있어서 어디를 가던지 대략 한시간은 걸린다. 경기도민인 나는 지하철에서 멍 때리며 가는 거에 단련이 되어 있긴 하다. 한 시간 안쪽이면 가깝네, 한 시간이면 적당하네, 한 시간 반이면 조금 오래 걸리는 정도. 하지만 서울 친구들은 한 시간 걸린다고하면 "오래 걸린다"고 말할 때 깜짝 놀라곤 했다. 이렇게 지역마다 시간 차이가 나는구나. 그렇다면 제주도민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제주도민 뚜벅이들은 이 버스에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낼지가 궁금해졌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시간마저도 아까워 책을 읽기 위해 가져왔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기란 꽤 고역이었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문장도 덩달아 흔들려 내 머릿속까지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어폰을 끼고서 노래를 듣는 거.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노래도 없다. 나의 경우 유튜브에서 "~할 때 플레이리스트"라며, 상황에 따라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플리를 듣는 편이다. 딱히 음악 취향이랄 게 없었던 나에게 이 시간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날도 유튜브 뮤직 랜덤 재생이나 틀어두고서 똑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유튜브 뮤직은 새로운 걸 추천하기보다, 내가 들었던 노래 위주로 추천한다는 점에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때였다. 듣지 못했던 전주가 흘러 나오는데,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라는 가사가 나직하게 들리는 거였다.


제주버스를 타러가다가 만난 풍경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환호와 박수 소리를 들을 때 떠나야 할 것 같지 왜
지금 떠나서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간직해
다들 꿈이란 건 이루지 못한 채 꾸고만 사는데
It's Ok 괜찮아 난 맛이라도 봤잖아
다시 현실로 돌아가 그래 취직하고 잘 살아
잘 잊혀지고 있잖아
그런데 자꾸 왜 난 또 가사를 끄적이는 걸까

-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베이식


이번 쇼미더머니 10에서 나온 노래였다. 이번 쇼미더머니10은 보지는 않았지만, 노래는 음악 랭킹 순위권에 다달이 들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국힙원탑 이찬혁(?)부터 시작해 인생의 회전목마, 리무진까지. 그리고 이번에는 베이식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가 나에게로 왔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는, 래퍼들이 직접 가사를 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래퍼들 자신의 인생이 가사 속에 온전히 담겨있다. 이만큼이나 솔직한 가사가 있을까. 베이식의 이번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꿈을 찾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꿈을 놓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이미 꿈을 얼추 이뤘으니까 난 괜찮다고 다독이지만, 자꾸만 그때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끓어오른다. 취직하고 잘 살고 있음에도 꿈과 도저히 이별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이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자신들에게 그런 '꿈'이 있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포기'를 하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제주에 간다고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더라


제주도에 한 달 동안 내려왔다. 몇몇 사람들이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어떻게 결심하게 되었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웃으면서 넘겼다. 글을 쓰러요. 작년의 내 일기에는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사람에게 데일 즈음이었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고, 자꾸만 침대에 눕게 될 때마다 나는 제주도를 생각했다. 제주도에 가면 지금과는 다를 거라고. 분명히 매일 글을 쓰고, 꿈을 위해서 노력하고, 좀 더 희망찰 거라고. 그런 낭만을 안고 제주에 왔다.


하지만 나는 소설 한 편채 쓰지 못했다. 단 한 줄도, 쓰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다른 핑계를 대면서 일년 간 글을 쓰지 않았다. 뒤처져 있음을 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글을 안 썼다. 그러니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때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던 옛날의 명예를 기억하면서, 나는 제주도에 와서도 여행이라는 핑계를 대며 끊임없이 피하고 있던 거였다. 바다를 보며 괜한 우울과 감성에 젖는 걸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제주는 나에게 변명이나 다름 없었다.


여행을 다니는 건 쉽다.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가고, 새로운 걸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열정이 되어주니. 하지만 일상에서는 그 열정이 될만한 게 여즉 없었다. 아직은 꿈을 이루는 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게,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게 어렵다. 그저 여행에 내 몸을 맡길 때이다. 버스에 몸을 맡기고, 책은 덮어둔 채로 음악을 듣는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가 1시간 동안 반복재생 된다. 나는 아직 꿈을 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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