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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긍정 Jun 27. 2016

대학 입시제도의 변화(하)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출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5) + 에필로그


지난 상편 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교육이 직면한 여러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번 하편 글을 통해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크게 '대학 서열화 구조의 변화', '입시 제도의 변화', '학교 시스템의 변화' 3가지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




| 대학 서열화 구조의 변화


지난 2003년도에 처음 언급되어 지금도 여러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대학통합네트워크'입니다. 기본 골자는 지금의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고 지방 대학을 함께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이며, 이러한 취지 하에 '정부책임형사립대와 국공립대를 결합한 대학통합네트워크안',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 '국립 교양대학안', '권역별 혁신대학 네트워크안' 등 조금씩 변형된 여러 담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 http://nomad-crime.tistory.com/146>


이렇듯 대학이 서열화된 것도 문제이지만, 지금의 서열이 제대로 된 서열이기나 한 것일까요. 과연 실제 대학교육의 질에 따라 이러한 서열체제가 구축되고 유지된 것일까요 아니면 입학생의 성적과 지역적 우위, 사회적 평판 등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의 고착화된 서열에 의존하여 어쩌면 대학들은 교육경쟁이 아닌 선발경쟁에 매달리며 진정한 대학 혁신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기회와 자본이 수도권 쪽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이 오로지 교육과 연구의 질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교수진의 능력, 교육 커리큘럼의 질, 대학 시설, 졸업생의 향후 활동 등의 요소로 대학의 서열이 매겨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입학생의 성적, 대학이 서울 내지는 수도권에 소재하는지의 여부, 대외적 이미지 등의 요소로 대학을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지 서울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학이 바로 좋은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입학 이후 4년 동안의 대학 교육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결국 졸업장만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명문대 다운 교육과 연구를 다른 대학에 비해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고착화된 서열체제 속에서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경쟁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어쩌면 단 1점 차이의 점수로 희비가 엇갈리고 앞으로의 인생까지 영향을 주는 이러한 서열화된 대학체제와 입시제도 속에서 정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고자 '대학통합네트워크안'은 전국에 있는 모든 국공립대를 네트워크화하여 공동선발, 학점교류, 공동학위수여, 교수 순환 등을 수행함으로써 참여 대학의 평준화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대학서열체제를 해제하여 모든 국공립대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립대 역시 재정지원 등의 방침을 통해 정부책임형사립대로의 전환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모든 대학을 평준화시켜 지금의 대학서열체제를 해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가능해진다면 대학의 서열에 매달릴 이유가 없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입시 정책이 개선되며, 중고등학교 교육 역시 이에 따라 '교육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한 사교육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겠죠. (부족한 점을 보완하거나 취미, 예체능 등의 다른 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교육은 존재하겠지만)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라는 것입니다. 예산문제는 제쳐두고서라도 대학평준화를 위해선 결국 소위 상위권 대학들의 참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금의 서열로 이미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상위권 대학들이 여기에 동참할지가 의문입니다. 
또한 이 정책은 모든 대학이 함께 참여하지 않는 이상 그 효과가 나타날 수 없으며 만약 어느 한 대학이라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풍선 효과'로 인해 또 다른 서울대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국공립대 비율이 높았다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애초에 사립대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우리나라 대학 구조 상 대학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평준화로 야기될 수 있는 하향평준화, 즉 수월성 저하에 대한 우려입니다. 신시장주의 교육정책과 경쟁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대학평준화가 되면 우수한 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므로 굳이 대학 입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교육 및 연구의 질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교육경쟁이 아닌 선발경쟁에 치중하고 있는 만큼, 대학평준화를 통해 적어도 지금의 선발경쟁을 교육경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큰 모멘텀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애초에 우수한 학생들만 데려가 이 학생들에 '의존하여' 대학의 수월성을 확보하려는 발상이 과연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일까요. 우수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해 4년간의 우수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이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정한 대학의 역할이자 진정한 수월성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앞으로 직업의 형태와 그 필요성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직업 교육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교양중심 교육'에 초점을 맞춰 어떠한 직업을 갖든 기본적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liberal art college'처럼 교양교육을 강화하고 더 전문적인 내용은 이후 일반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 진학을 통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길은 지금의 대학서열체제를 완화하면서도 대학교육의 경쟁력과 질을 제고하고, 공공성을 확대함으로써 등록금 걱정 없이 누구든지 원하는 학문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지금의 대학들보다는 대학의 형태를 다양화하여 지역 거점별로 각각 특성화된 분야의 대학이나 대학원을 운영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입니다.  

보다 깊고 자세한 사항은 <2016 총선대응 교육정책 연석회의 - 교육정책 제안서, 2016년>, <혁신대학 100플랜, 권역별 혁신대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체제 개편 추진, 2012년>,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축, 2003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입시 제도의 변화


고착화된 대학서열체제를 완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입시 제도의 변화'겠죠. 그동안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친 것이 입시 제도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입시 제도의 변화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큰 틀 안에서 형식적으로만 여러 개선이 있었을 뿐, 교육적 의미를 가진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이뤄진 적이 있을까요.

아무리 내신을 더 많이 반영하고, 수행평가 비중을 늘리고, 논술 전형을 도입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수능을 쉽게 한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사교육이 줄어들고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결국 지금의 지위 경쟁과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고 변경한다고 해도 사교육은 어떻게든 치고 들어올 것이고, 어떻게든 경쟁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서열화된 구조는 점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점수라는 하나의 수치가 그 사람의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정하지도 않음에도 말이죠. (겉보기엔 공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각 가정의 경제력과 정보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움)

교육적인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는 건 일반적으로 객관식 형태의 시험이 아닌 주관식 형태의 시험임에도(물론 객관식 시험도 평가학 연구를 통해 교육적으로 의미를 가진 평가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객관식 시험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서열화된 구조에서는 점수 1점이 큰 영향력을 줄 수도 있는 만큼 
공정성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고 채점의 편의성을 확보하고자 지금껏 객관식 형태의 시험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공부를 유도하는 시험이 아닌 문제 풀기 기술이나 감각을 길러주는 시험임에도 말이죠.  


'객관성에 대한 요구'가 '교육적 타당성'을 압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입시제도 하에서 학생들은 사실상 '대학 선택의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시겠지만, 오늘날 학생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학과와 대학에 지원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점수에 맞는 학과와 대학, 나를 뽑아줄 수 있는 학과와 대학에 지원하고 있을까요. (물론 자신이 원하는 학과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애초에 수능이 원래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있지도 않고(수능으로 모든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가진 일부 역량을 평가하는 여러 제도 중 하나였음에도 이를 표준화 시험으로 여태껏 사용하고 있음), 수능의 창시자가 수능을 문제 삼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수능이란 강력한 시험은 변할 생각이 없습니다.


수능이 왜 문제인지 알고 싶으신 분들께선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출처 : 평가의 다양성 - 박도순 초대 수능평가원장, 컨퍼런스 위기>


심지어 각종 수행평가와 절대평가마저 입시라는 블랙홀에 빠져 결과적으로는 상대평가 형태로 변환되어 평가되고 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요? 서열화 문제, 객관성 및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완화하면서도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입시제도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왜 '평가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걸까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제가 잘 모르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의 '가중치를 둔 추첨제', 자격고사화, '범위형 대입제도'에서 그 희망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중치를 둔 추첨제로 의대에 입학하는 네덜란드. 그래도 잘 돌아갑니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5부 - 교육 >


교육선진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는 다른 어떠한 나라보다 특이한 입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추첨제'입니다. 네덜란드 입시의 경우 대학의 학과마다 요구하는 추가 사항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절대평가로 운영하는 졸업시험에 통과하여 고등학교 졸업시험 합격증만 있으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입학을 원하는 학과의 지원자 수가 모집인원에 비해 많을 때, 즉 의예과나 법학과 같은 인기 학과의 경우, 추첨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게 됩니다. (단, 대학이 직접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 사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 학생의 지원 및 배정 일체를 관리함)

다만, 내신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은 가장 우선적으로 학교별 전형을 통해 직접선발되며 
나머지 입학정원에 대해 최소 성취기준을 통과한 지원자의 경우 졸업시험 성적에 '가중치를 반영한 추첨'선발을 실시하게 됩니다. 성적에 따라 추첨될 확률에 조금씩 차등을 두는 것이죠설사 추첨에 떨어졌더라도 다른 대학을 다니다 다시 졸업시험 성적으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가중치를 둔 추첨전형제도. <출처 : EBS 다큐프라임,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5부 - 교육 >


점수가 높든 낮든 학생 누구에게나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네덜란드의 대학에서 입학은 비교적 쉽습니다. 네덜란드의 각 대학 및 학과에서 필요한 역량으로 단순히 좋은 성적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여러 경험과 인격, 무엇보다 본인의 하고 싶은 의지를 모두 고려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추첨제로 운영하고 있음에도 큰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네덜란드의 대학들은 
선발이 아닌 교육에 초점을 두며 발전하고 있으며 입학이 쉬운 대신 졸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적입니다. 대학이 거의 평준화되어 있고, 최고의 점수를 받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의 선발 의지와 상관없이 입학하는데도 말이죠.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부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추첨제'라는 제도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큰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가는 것 자체가 성적 순대로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은 학과를 지원하고, 지원자가 넘칠 경우에는 추첨제를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서열화 문제가 굉장히 완화될 것이고, 기본적인 성적만 충족한다면 그 이상으로 입시 성적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대학 입장에서도 입시 성적을 기준으로 우수한 학생들만 골라가 선발하는 것이 아니기에
 선발경쟁이 아닌 교육경쟁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한편으로는, 입시시험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서열화된 구조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채점에 대한 객관성, 공정성 문제였는데, 만약 절대평가로 운영하는 자격시험 정도의 수준에, 대학에서 점수 순이 아닌 추첨제로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1, 2점 점수 차에 지나치게 집착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추첨을 하기 전 인성을 중시하는 평가 등 어느 정도 자유로운 형태의 평가를 통해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이후 추첨제를 통해 더 우수한 재원을 선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어떻습니까?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학생들임에도 불과 점수 몇 점 차이 때문에 대학의 당락이 가려지고, 각종 논술, 입학사정관제 등의 입시제도 역시 사실상 주관적인 요소의 개입으로 인해 공정성 문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다 서열화된 형태의 대학입시제도, 살벌한 상대평가에서 기인한 것이죠

하지만 애초에 
선발이 목적인 시험이 아닌 자격고사 형태의 시험에, 대학 입학 역시 자격만 갖추면 원하는 학과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시험 점수 몇 점 더 올리기 위한 점수 경쟁이 발생할지 않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자격 기준에만 도달하면 되므로 객관식 시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적으로 더 의미 있는 진짜 평가가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지금의 수능이나 대입시험과 같이 '대학 입학'에 초점을 맞춘,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현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들로 구성된 시험 형태가 아닌 '고등학교 졸업'에 초점을 맞춰 기본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이수했는가를, 즉 좋은 대학을 입학할 자격이 아니라 기본 역량을 갖추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격을 검증하는 정도로 지금의 시험을 '자격시험화'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주관식 형태의 서술형 시험 등으로 개선하고요. 

그러면 변별력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대학에서 어떻게 학생을 선발해야 하느냐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네덜란드와 같은 
직접선발 + 추첨선발 입니다. 내신만 반영하든지, 또는 자격시험만 반영하든지, 아님 이 둘을 결합한 형태로 성적을 산출한 뒤(물론 성적 역시 단순 점수가 아닌 등급제 형태로) 성적이 아주 뛰어난 몇몇 학생들은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자격만 된다면 어느 대학, 어느 학과든 지원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죠. 지원자가 입학 정원을 넘었을 땐 추첨제로 선발하고요. 

이렇게 
자격시험 + 추첨제를 통해 우리 역시 입학은 쉽게 하되(심지어 독일, 캐나다 등은 대학 평준화에, 학과 입학 정원에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음), 졸업을 어렵게 함으로써 정말 대학에 공부할 의지가 있는 학생들만 졸업시키게 하고, 대학 역시 선발경쟁이 아닌 교육경쟁을 통해 스스로 살아남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이 무책임하게 좋은 학생을 너무나 쉽게 선발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성적에 거의 상관없이 무작위로 들어온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교육경쟁을 통해 자기 대학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잘 다듬은 것이 바로 '
범위형 대입제도'입니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가 제안한 것으로 대학이 제시하는 수준의 수학능력 이상을 갖춘 지원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선발을 하는 대입 제도입니다. 실제 연구를 통해 
대학이 제시한 수학 능력 범위에 들 정도면 추첨을 통해 선발을 해도 졸업 후 삶에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를 우리 상황에 맞게 좀 더 다듬은 내용이 있는데, 
모집 인원의 10~30% 정도는 우선 합격시키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 1단계(대학 모집 단위별로 수능, 내신 기준을 제시하고 이 기준에 부합하면 모두 합격), 2단계(면접 등을 통해 시험으로 알 수 없었던 인성, 기타 부분에서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고 부적격자만 제외), 3단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또한 새로운 대입전형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고찰이 담긴 글인 <대입전형(수능) 미래방향 4가지, 사회적 합의로 정하자, 이찬승(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단 링크 참고)





| 학교 시스템의 변화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해제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입시제도를 만든 것은 결국 궁극적으로 지금의 교육을, 특히 학교에서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교육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함입니다. 

지금껏 학벌 중심의 사회 구조와 이에 따른 대학의 서열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입시제도로 인해 학교와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학부모, 학생, 교사 등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대학입시가 워낙 살벌하다 보니 이와 연결된 아래의 모든 단계들이, 거기서 이루어지는 모든 평가들이 다 살벌합니다. 만약, 정말로 대학서열체제가 완화되고 입시 역시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그런 비합리한 시험이 사라진다면 학교의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애초에 대체 '시험의 목적'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요. 

반대로, 서열화된 대학체제와 획일적 입시제도의 폐해를 핑계삼아 학교 교육을 이대로 내버려둬도 되는것일까요? 물론, 어려운 교육 현실 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학생들을 위한 좋은 교육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계시는 교사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이 들기에, 교사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에, 또는 애초에 변할 생각이 없거나 안정적인 직장만을 원해 온 몇몇 교사들로 인해 번번이 새로운 시도가 좌절되며 무기력한 실패의 경험만 쌓아가기도 합니다.  

교사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학교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학교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하고, 수업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며, 교사가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교육과 관련된 모든 관계자의 자세와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특히, 위에 계신 누군가들이 말이죠. 

<한국 교육의 내신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기정> 글에서는 동일한 평가로 인해 발생하는 수업내용의 동일성, 수업교재의 동일성, 평가의 동일성이 한국 교육의 내신 제도에 미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문제점 1. 획일화된 수업
다른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려 해도 학생들 입장에선 이런 방식의 수업이 당장 눈앞에 있는 학교 시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해하고 반기지 않음. 선생님 입장에서도 다른 선생님들과 동일한 평가 방식 하에 동일한 형태의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에, 미리 학년 초에 자신과 동일한 수업을 맡은 선생님들을 모두 설득해야 함.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결국 세월이 흐르면 기존의 관행적 수업에 안주하게 됨. 

문제점 2. 저차원적 수업
획일화라 해도 높은 차원의 획일화가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학교 수업의 획일화는 반드시 낮은 차원으로 진행됨. 서로 수업의 차원이 다르면 누군가가 양보해 한쪽에 맞춰야 하는데 고차원적 수업을 하는 교사가 저차원적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맞출 수밖에 없으며, 평가의 동일성에 얽매여 어떤 특정 반에만 이익이 되거나 불이익에 되게 할 수 없기에 결국 낮은 차원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음. 서로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가르치고 시험에 낼 수밖에 없음. 

문제점 3. 노예 시험, 객관식 시험
전체 학생을 엄밀하게 줄 세우는 시험에서 논술과 같은 서술형 문제를 채점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 매우 큰 부담임. 학생과 학부모의 수많은 이의 제기와 항의를 배겨낼 도리가 없음. 지금의 서술형 문제마저 형식만 서술형이지 사실은 객관식 문제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 채점의 곤란함 때문. 지금의 객관식 시험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공부하는 기술이요, 시험 보는 기술임. 마치 주인이 준 것을 충실히 기억하는 기술이요, 주인이 묻는 것에 충실히 답변하는 기술임. 실수는 처벌로 이어짐. 여기에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식과 사유가 자리할 여지는 조금도 없음. 

문제점 4. 단 하나의 수업과정
지금의 내신제도로 인해 교사들은 학생들을 배려하기가 어려움.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학습 속도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단 한 가지 형태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음. 학생에게 수업을 맞추는 게 아니라 수업에 학생들이 맞춰야 하는 문제. 

문제점 5. 비교육적 평가제도
냉혹한 상대평가로 인해 지금의 내신제도는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의 제로섬 게임. 학교 시험에 교육의 가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음. 살벌한 입시의 논리를 따를 뿐.

문제점 6. 패배자를 필요로 하는 제도
입시의 본질은 합격이 아닌 탈락에 있음. 지금의 학교 시험이 완전히 이와 같음. 현재의 내신제도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학생을 낙오자로 만들며, 제도 자체가 그것을 강제함.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를 낮추면 학교 전체에 만점자가 너무 많아져 1등급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으니 문제이고, 높이면 상당수 학생들이 수업을 어려워하고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지금의 제도에서는 모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는 반드시 낙오하여 패배자가 되고 시험의 들러리가 됨.

문제점 7. 사교육에 취약한 제도

대학별 논술고사는 학교 수업을 통해서 준비할 수가 없고, 수능 시험은 그나마 학교 수업을 통해 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경쟁 구도 내에서 남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선 결국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음. 학교 시험은 학교에서 수업한 내용이 상당 부분 그대로 출제가 됨에도 사교육 유발효과가 상당함. 학원 강사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학교 시험은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기가 상당히 쉬운 시험이기 때문. 지금의 학교 교육 패러다임 안에선 학교가 학원을 넘어서기 어려움.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입니다. 

도대체 언제쯤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누군가를 부러워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물론, 우리나라 교육 역시 '경쟁교육'의 참모델로서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함. 부디 제대로 그 현실을 파악하고 벤치마킹 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당연히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 이상과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부단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단, 결국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 구성원은 교사이기에 Top-down 방식이 아닌 교사 중심의 Bottom-up 방식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중심으로 학교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살펴보았습니다. 

1. '교육'이 없는 학교에서 '교육'이 있는 학교로


교사의 의견, 학생의 의견은 충실히 반영되지 않은 채, 매번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중앙집권적 교육 개혁들. 이러한 교육 개혁들은 '빼기' 없이 오로지 '더하기'만 하며 모든 구성원들의 피로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서 과연 학교에 진정한 '교육(한자어 '교육'의 의미가 아닌 라틴어 '에두카레', 즉 '끌어낸다'는 의미의 교육)'이 있을까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각종 행정 업무 속에서 과연 수업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할까요? 이 모든 걸 교사 개인의 책임과 의무로 떠넘기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 같습니다. 

결국, 지금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행정업무 감소화'이자 '교사연구공동체'의 활성화인 것 같습니다. 최근 '혁신학교' 등에서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두고 교사는 '교육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행정업무 자체의 일을 줄이거나 그게 안된다면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정규직 형태로 채용함으로써 반드시 교육에 충실할 수 있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사연구공동체 등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대하여 교사들끼리도 서로 수업 연구, 힘들었던 감정들, 더 나아가 학교,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배움의 공동체나 거꾸로교실네트워크 등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점차 넓혀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단위학교 규모와 교실 당 학생 수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그 수치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학령인구가 줄은 원인이 클까요, 아니면 교실 당 학생 수를 정상화하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컸던 걸까요. 여전히 낙후된 환경 속에서, 여전히 교실 당 학생 수가 많은 환경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개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할까요?


물론, 예산 문제 등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기에 쉽사리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교육적'이라는 단어보다 중요시되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마치 폭탄 돌리기 마냥 현실적인 이유를 매번 들며 교육 변화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만큼은 지금의 중앙집권적 자치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교육 선진국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위 학교 교사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받고 반영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어느 교사가 변화에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교사 중심의 수업연구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학교 간의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연계까지 활성화된다면 교육은 더 이상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함께 동참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위학교 규모를 줄이고, 교실 당 학생 수를 최소한 평균 정도에는 맞춰야 더욱 의미 있는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학교의 서열화' 문제입니다. 여기서의 학교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말합니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기조 아래  '수월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어느새 우리나라엔 우후죽순 많은 특목고들이 생겨났습니다. 국제고, 외국어고, 과학고, 자사고 등 사실상 우리나라 중고등학교는 엄밀히 말하면 '평준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결국 돈 많고, 정보력 많고,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야만 더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고, 정보력도 없고, 어렸을 땐 비록 조금 소홀했지만 뒤늦게 깨닫고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에게 과연 우리나라 학교는 어떠한 기회를 주고 있을까요?

왜 모두의 수월성을 추구하려는 생각과 시도는 하지 않고, 정말 잘난 친구들만 선별하여 소수만을 위한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왜 핀란드처럼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아이의 재능'이건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매기는 것이
학생 개인이나 사회 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더 이상 경쟁을 통해 소수 아이의 재능만 살리려 하지 말고 부디 평준화된 학교 체제 내에서 잘하는 친구, 상대적으로 덜 잘하는 친구들이 모두 함께 같은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개개인의 생각이 존중받는, 학생이 생각하는 다양한 길이 존중받는 학교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마 그럼 '수월성'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거냐, 하향평준화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지금의 교육은 수월성을 잘 살리고 있나요? 잘 살리고 있다면 어떤 의미의 수월성을 살리고 있나요? 잘 하는 학생들끼리 따로 분류하여 교육을 하는 것보다 다양한 학생들끼리 그룹 단위로 묶여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수월성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길이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무학년 학점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자신의 능력과 흥미와 관계없이 오로지 '연령' 하나만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무시한 채 획일적 교육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교처럼 중고등학교 역시 학년을 정해놓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실력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선택수업 들을 학점제 형태로 스스로 선택한다면 연령이 아닌 자신의 흥미와 실력이란 기준에 맞게 자신만의 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선택수업'들이 실질적으로 개설되고 운영 가능할 때만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할 것입니다. 자신의 진로에 특화된 커리큘럼이나 트랙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말이죠. 

추가로 주위 여러 고등학교들을 클러스터 단위로 묶어 일종의 '
캠퍼스형 고등학교'를 구축하여(일종의 학교 네트워크인 셈) 서로의 장점과 전문성, 다른 학교에 개설된 다양한 선택 과목, 시설 등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부족한 점을 다른 학교를 통해 보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교육에 '학생'의 의견은 반영이 되어 있을까요?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 어른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다는 식으로 이리저리 교육에 손을 대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학생들의 의견을 언제까지 묵살해야 할까요. 교육을 받는 주체는 학생인데 말이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18세 참정권부여입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선진국이 18세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의견을 쉽사리 무시할 수 없죠.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18세 참정권이 부여되어 교육의 주체인 학생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희망합니다. 물론,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아도 학생들의 의견이 존중받고 반영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 끊임없는 '사교육' 문제의 해체


사교육을 방지하고자 내놓은 각종 대책들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조장하며 끊임없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각종 사교육. 도대체 왜 사교육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 지위 경쟁 사회로 인한 고질적인 서열화 문제와 공교육의 질 및 경쟁력 문제가 서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열을 매겨 평가하는 시스템, 그리고 이 서열이 사회에서의 지위 경쟁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면 교육과 관련된 어떠한 대책들이 쏟아져도 사교육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사교육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식 사교육,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사교육이 나쁜 것이지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일시적인 사교육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예체능, 취미 등의 사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 좋은 건 돈이 많든 적든 이러한 교육을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오히려 배울 점도 있죠. 개인의 교육 선택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소수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며, 각종 행정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오직 강의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사교육에서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질적인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위 경쟁 구조를 변화시키거나 공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둘 모두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덴마크의 
'웅돔 스쿨
'에 주목했습니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나는 꿈꾸고 싶다 4부 - 진로교육 교실 안에 답이 있다>


덴마크의 경우 이중, 삼중, 그 이상의 진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어떠한 학생도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웅돔 스쿨'이라는 곳에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곳은 뭘 하는 곳일까요?

바로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종의 '
무료 학원'입니다. 

덴마크에선 우리나라의 중학교 2학년 이후부터 학생들이
 다양한 예체능 수업과 취미 활동을 중심으로 제공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인 '웅돔 스쿨'을 다닐 수 있습니다. 뮤지컬에 흥미가 있으면 뮤지컬을 배워볼 수 있는 웅돔 스쿨로, 노래에 흥미가 있으면 또 이에 맞는 웅돔 스쿨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언제든 누구나 어디서나 무료로 말이죠. 참고로 웅돔 스쿨은 학교에서 반경 10km 이내에 개설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좀 더 하고 싶은 것들, 조금 부족한 부분들을 추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무료로,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시스템 말이죠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학원들을 사설이 아닌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형태로 흡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학원 선생님들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환경 속에 들어오고 싶은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학원의 장점을 그대로 흡수하면서도 동시에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긴 쉽지는 않겠지만요. 

더 자세한 사항은 제가 이전에 쓴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출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2)-꿈꿀 수 있는 교육>을 참고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3. 평가 방식의 문제. '현실적'인 평가에서 '교육적'인 평가로의 전환


우리나라의 평가는 대입 시험에서부터 일반 학교 내신까지 하나같이 대부분의 평가 방식이 획일적, 객관식 형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주관식 형태의 수행평가 등도 있지만 이 평가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상대평가 형태로 변환되어 서열화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획일적 평가 방식은 결국 획일적 교육을 야기하고 있으며 그 폐해는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만약 획일적, 객관식 형태의 시험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공정하게 학생들의 서열을 매길 수 있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문장이겠죠. 
애초에 '서열을 매기는 방식의 평가'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고부담의 시험이 아닌 저부담의 시험을 여러 번 보는 것은 학생들의 공부에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시험과 같은 평가는 있어도, 등수를 매기는 형태의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애초에 점수라는 하나의 수치로 서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기나 할까요. 그 점수 안에 학생들의 모든 실력이 객관화될 수 있을까요.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걸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젠 이러한 틀, 즉 획일화된 입시시험에, 획일화된 내신 평가가 아닌 교사별로 자유로운 평가가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추첨제' 방식을 통해 1, 2점 차이의 아무 의미 없는 점수 경쟁을 완화해야 하고 동시에 학교에서의 평가 역시 교사의 평가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서열을 매기기 위한 목적의 평가가 아니므로 객관성,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일어날 이유가 없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사 역시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가능할 것이며, 비록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지만 서열을 매기지 않기에 교육적으로 더 의미있는 평가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물론 평가 방식은 투명해야 할 것이며, 이는 곧 교사의 평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를 가장 잘 운영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덴마크'이며(또 덴마크네요^^), 덴마크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평가 방식 중 하나가 바로 '
학습 계획서(Student Plan)' 입니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나는 꿈꾸고 싶다 4부 - 진로교육 교실 안에 답이 있다>


덴마크에선 학생들을 평가할 때 점수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위와 같은 학습 계획서를 통해 선생님은 각 과목별로 점수가 아닌 '학습 관찰 내용'을 작성하며 잘 하고 있는 것과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을 알려줍니다. 부모님은 학습 계획서를 온라인으로 언제든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자녀의 학습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수치로 표시된 성적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세한 사항들을 언제든 볼 수 있는 것이죠. 학교, 학생, 부모가 함께 아이의 성장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일기를 통해 학생 개개인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한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이 이러한 형태의 평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서열화를 위한 하나의 수치인 '점수'가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위와 같은 형태의 평가가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이렇게 평가하면 나중에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서열화된 수치를 가지고 학생들을 쉽게 뽑아갈 것인가요. 대학 역시 학생 선발에 대한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대학이 먼저 자기 대학에 맞는 인재를 찾아다니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 및 학과의 입학에 필요한 자세한 가이드라인과 정보를 모두 제공해야 합니다. 별도의 사교육을 받지 않고, 대학에서 제공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입학할 수 있도록 말이죠.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표준 평가가 적합하지 않은 학생들의 학업 진도를 확인하기 위해 개발한 '
러닝 레코드(Learning Record)'라는 평가 제도는 레브 비고츠키의 이론에 기반을 둔 '모국어 기반 기록집'이라는 체계를 통해 교사들이 관찰한 바를 8쪽 분량의 문서로 기록함으로써 학생들의 실질적 학습 수준을 성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낙오아동방지법이 단일 표준의 평가를 고수하도록 학교제도에 압력을 가하면서 러닝 레코드 방식이 좌초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는 
'프레시 그레이드(Fresh Grade)'라는 온라인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는데, 각 학생의 학업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학부모와 학생이 다 함께 학생별 상황을 훑어볼 수 있도록 정리한다고 합니다. 거의 매일 학생의 학습진도 보고서를 내놓은 방식이죠. 또한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개인별 진전 목표와 기준을 정해놓고 나서 그 목표와 기준을 통해 성취도를 가늠합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큰 난관 중 하나가 바로 대학 측에서 이 새로운 평가제도에 기초한 성적증명서를 전통적 성적 기반의 성적증명서와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에 대한 것인데, 
이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숫자 기반의 점수 없이도 포트폴리오를 검토할 여유가 되는 소규모의 대학들을 중심으로 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여러 노력들이 진행 중
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수치화된 점수가 아니어도, 표준화시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보편적으로 공감된 일련의 표준을 통해 다수 학생의 학습 진도를 평가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 에필로그


지난 상편 글부터 하편 글까지 과연 어떻게 하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진정한 교육의 길로 갈 수 있을지를 알아보았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대안은 과연 없는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쩌면 대학입시제도가 변한다고 해서, 대학 서열화 문제가 정말 없어진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위 경쟁 구조가 계속되는 한 또 다른 형태의 서열화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의 교육을 거쳐, 우리의 교육을 통해 성장한 누군가일 것이기에, 사회 구조가 변하기에 앞서 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누군가를 우리 교육이 만들어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글을 통해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출발'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항상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모두가 지금의 경쟁 중심의 교육에 너무나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를 모두가 겪고 있는데 도대체 왜 우리 교육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안을 연구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 말이죠.  

이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지난 몇 년간 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근무해보고, 교육과 관련된 여러 책, 다큐멘터리, 논문, 칼럼, 토론 등을 끊임없이 살펴보며 제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해왔습니다. 

여전히 변화의 길을 위한 명확한 지도는 마련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도를 그리고 수정해가며 언젠가는 더 나은 교육이 있는 진정한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바뀌어야 하며, 교육을 통해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내용은 무엇이며, 꿈꿀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인지, 수업의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공간의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 입시제도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살펴본 제 글들이 이러한 변화의 이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들을 작성하며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현장에서, 글로써, 연구로써 다양한 형태로 부단히 노력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되었고 이분들로부터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노력이 부디 헛되지 않게 국가 차원에서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관계자들의 의견에 반드시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이분들의 간절한 마음과 생각이 아무쪼록 잘 모아지고, 많은 분들에게 잘 전달되어 우리도 정말 아이가 행복한 학교, 모두가 행복한 교육이 만들어질 소망합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 되어 앞으로도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참고자료
- <2016 총선대응 교육정책 연석회의 - 교육정책 제안서, 2016년>
<혁신대학 100플랜, 권역별 혁신대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체제 개편 추진, 2012년>
-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축, 2003년>
- <평가의 다양성, 박도순 초대 수능평가원장, 컨퍼런스 위기>
-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5부 - 교육, EBS 다큐프라임>
- <평가가 달라지면 교육이 바뀔까, EBS 교육대토론>
- <대입제도 개선방안 연구, 교육부, 2013년>
-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 켄 로빈슨, 21세기북스>
<대입전형(수능) 미래방향 4가지, 사회적 합의로 정하자,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 <대입 문제 완화를 위한 제안:범위형 대입제도,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서울신문> 
- <한국 교육의 내신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기정, ㅍㅍㅅㅅ>
- <나는 꿈꾸고 싶다 4부 - 진로교육 교실 안에 답이 있다, EBS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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