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연 Jun 29. 2019

잊히지 않는 얼굴들에게

비청소년의 뒤늦은 편지

문득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건만 어떤 장면으로 두고두고 기억되는 얼굴들. 그 장면은 대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어린 우리’에 대한 연민으로 버물려 있는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길, 소각장 옆에서 마주친 같은 반 친구 A의 눈. 그 친구는 이른바 ‘노는’ 동급생에게 뺨을 맞고 있었고 이유는 없었다. 있었다면 아마도 A가 말을 더듬는다는 점이었겠지. 나는 가던 길 따라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폭력에 가담한 기억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는 걸 이때 알았다.


A의 뺨을 때리던 ‘노는’ 친구 중에는 출석율이 낮은 B가 있었다. 한 반의 4분의 1 정도가 학교를 나오다 말다 하였으니 그리 특수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벼르던 선생님은 하루 날 잡아 B를 교실 앞쪽으로 불러낸 후 교탁에 출석부를 내리치며 다그쳤다. B는 바락바락 대답했다. 어차피 커서도 횟집에서 일할 거 미리 일하는 건데 뭐가 나쁘냐고. 학교 나온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바닷가 소도시로 이사 왔지만 다시 상경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대학 또한 어느 대학이냐의 문제이지 갈지 말지를 고민한 적 없던 내게 B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횟집에서의 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B가 다른 선택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론 그 어떤 사실도 B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좀더 자라서는 어떤 아이들의 현실이 다른 누구에게는 충격이라는 분절 자체가 아파왔고, 좀더 지나서는 B가 그때 자신의 삶을 선택한 걸까 생계로 밀려난 걸까 알 수 없어졌다. 가끔 4분의 1에 가까울 친구들은 무얼 하고 살까 떠올린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잊히지 않는 얼굴들에게", 솔직히 말해서, 웹진 채널예스, 2019.06.28)

http://ch.yes24.com/Article/View/39182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살아있고 싶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