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청소년의 뒤늦은 편지
문득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건만 어떤 장면으로 두고두고 기억되는 얼굴들. 그 장면은 대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어린 우리’에 대한 연민으로 버물려 있는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길, 소각장 옆에서 마주친 같은 반 친구 A의 눈. 그 친구는 이른바 ‘노는’ 동급생에게 뺨을 맞고 있었고 이유는 없었다. 있었다면 아마도 A가 말을 더듬는다는 점이었겠지. 나는 가던 길 따라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폭력에 가담한 기억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는 걸 이때 알았다.
A의 뺨을 때리던 ‘노는’ 친구 중에는 출석율이 낮은 B가 있었다. 한 반의 4분의 1 정도가 학교를 나오다 말다 하였으니 그리 특수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벼르던 선생님은 하루 날 잡아 B를 교실 앞쪽으로 불러낸 후 교탁에 출석부를 내리치며 다그쳤다. B는 바락바락 대답했다. 어차피 커서도 횟집에서 일할 거 미리 일하는 건데 뭐가 나쁘냐고. 학교 나온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바닷가 소도시로 이사 왔지만 다시 상경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대학 또한 어느 대학이냐의 문제이지 갈지 말지를 고민한 적 없던 내게 B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횟집에서의 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B가 다른 선택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론 그 어떤 사실도 B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좀더 자라서는 어떤 아이들의 현실이 다른 누구에게는 충격이라는 분절 자체가 아파왔고, 좀더 지나서는 B가 그때 자신의 삶을 선택한 걸까 생계로 밀려난 걸까 알 수 없어졌다. 가끔 4분의 1에 가까울 친구들은 무얼 하고 살까 떠올린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잊히지 않는 얼굴들에게", 솔직히 말해서, 웹진 채널예스, 2019.06.28)
http://ch.yes24.com/Article/View/39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