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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Nov 30. 2022

이탈리아에도 알프스가 있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시원한 여름을 만나다 1

이탈리아 돌로미티, 시원한 여름을 만나다



베로나 역에서 늦은 오후에 탄 기차는 영화 <콜바넴> 때문에 여러 번 찾아보고 익혔던 익숙한 지역을 벗어나 북쪽으로 향했다. 기차가 북쪽으로 갈수록 한국에선 쉬이 볼 수 없는 큰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며 그 아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가 함께 있는 밭들이 계속 펼쳐졌다. 그냥 한 부분만 밭이 아니리 좌우로 끊이지 않게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밭이 있었다.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이렇게 가까이 자라는 것 보니 와인을 마실 때 왜 올리브가 어울리는지 알 것 같았고(같은 기후 같은 흙 상태에서 자라니까..?) 또 이탈리아산 와인과 올리브가 많은지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농사지으면 정말 세계인을 먹일 양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풍경이 끝없이 나오는 베로나~오르티세이 기차 구간


이탈리아의 북부지역을 생각하면 밀라노나 베네치아 정도의 도시가 생각났었지만, 진짜 이탈리아의 북쪽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로미티(Dolomiti)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아래 산맥 지역으로, 하이킹하시는 분들은 보통 베네치아에서 출발하여 돌로미티의 동쪽 큰 도시 코르티 나담페초(Cortina d'Ampezzo)에서 시작하여 서쪽 큰 도시인 오르티세이(Urtijëi), 볼차노(Bolzano) 등에서 끝내는 것 같았다. 그 반대의 경우로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전 스위스 인터라켄과 체르마트를 다녀온 적이 있어 돌로미티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일정상 빠듯했지만 , 이탈리아 북부를 더 자세히 즐기고 싶어 하루 일정을 더 추가했다. K-직장인은 이렇게 돌아다닐 기회가 흔치 않아 시간이 될 때 다녀야 한다.


기차는 세 시간 정도를 달려 돌로미티의 오르티세이 역에 도착했다. 이후 토스카나 일정에서 렌터카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 베로나 역에서부터 렌트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산악지형을 혼자 운전하며 제대로 구경도 못할 것 같아 주변의 유명하고 멋진 스폿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오르티세이에서 도보와 케이블카로 구경할 수 있는 곳만 가보기로 했다. 돌로미티 맛보기랄까. 여행을 가면 갈수록 ‘어느 장소에 가봤다’라는 도장깨기 같은 여행보단  본 것에서 무엇을 느끼고 즐기고 왔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오르티세이에서 만날 수 있는 돌로미티의 모습. 케이블카와 육로로 연결이 잘 되어있다.


여느 알프스 지역과 비슷하게 돌로미티도 겨울 시즌이 되면 스키를 타러 온 사람들로 붐비며 여름에는 하이킹 관광객으로 붐빈다고 한다. 내가 갔던 때는 하이킹으로 관광객이 많아지는 7, 8월 직전이라 비수기였던 것 같다. 기록적인 폭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돌로미티 지역은 서늘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시르미오네에서 더위에 지쳐있었는데 초가을 같은 날씨에 며칠 내내 더위에 시달렸던 몸이 잠시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이탈리아 여행 4일 차, 대중교통이 얼마나 제시간에 오지 않는지를 잘 알게 된 나는 오르티세이 역에서 오르티세이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택시를 타고 마을로 향했다. 돈은 좀 나가겠지만, 우선 시간이 더 귀중한 여행자였으며 여름철이라 해가 9시에 지긴 했어도 산 지역이라 금방 어스름 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택시는 경주 석굴암 올라가는 길, 제주도 한라산 탐방길 가는 길보다 더 긴 거리의 산길을 달렸지만, 택시기사는 수동기어로도 무리 없이 운전하여 올라갔다. (뒤에 앉아서 보면서 감탄했다.)


내가 묵은 호텔은 호텔 헬(Hotel Hell)이란 곳이었다. 이름이 다소 무섭지만, 우리가 아는 그 뜻이 아닌 적어도 hill과 비슷한 의미의 이탈리아어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르티세이 마을 가까이 산이 있기도 해서 그런지, 대부분 숙소들이 산 뷰로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 헬 역시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뷰였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도착한 오르티세이. 서늘한 온도에 더웠던 몸이 식혀지는 듯했다.
1박에 15만원 좀 못줬었던 것 같은데, 이런 뷰와 컨디션의 방을 스위스에서 구하려면 1박에 적어도 40만원 이상을 줘야할 것이다.

숙소에서 뷰를 감상하다 해가 더 지기 전에 저녁 먹을 겸, 오르티세이 마을 구경할 겸 나섰다. 택시 타고 정신없이 온 이유도 저녁식사 마감 전에 오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이탈리아의 레스토랑 대부분은 빨리 닫아도 저녁 10시, 늦으면 12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아서 해가 저녁 9시에 지는 이 계절에 해가 질 때까지 구경을 할 수 있었다.(물론 물건 파는 가게들은 6시면 얄짤 없이 닫았다. 관광지여도 워라벨은 지켜진다.)


4일 동안 이탈리아 돌아다니며 아시아인을 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 오니 몇몇이 보였다. 아마도 해외에서 체류 중에 여행 온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날 조식 시간에 같은 호텔에서 묵은 한국인 두 커플을 보기도 했었다. 구글 지도에서 적당히 평점 좋은 아시안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현지에 가면 정말 많은 식당이 있기 때문에 굳이 검색 맛집만 찾을 필욘 없다. 구글 지도를 열고 먹고 싶은 메뉴로 검색하면 그 메뉴를 파는 식당이 나온다. 세계인이 준 별점과 후기들을 보며 가면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언어가 달라도 맛있는 거 아는 사람 입맛은 똑같기 때문이다. 몸이 추워지니 자연스레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서 똠 양 꿈을 시켜먹었다. 레스토랑 역시 산뷰라 이탈리아의 여름 음료 아페롤 스프릿츠에 해산물 모둠 프라이를 시켜 어스름해지는 뷰를 즐겼다.

식당가는 길에 적당히 오르티세이 구경. 다양한 염장햄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남으면 한국에도 못갖고 오니 못샀다.
혼여객은 늘 메뉴를 다양하게 못먹게 되는데, 먹고 싶은 거 맛보고 싶어서 남은 음식을 싸갈 수 있게 접이식 실리콘 그릇을 가지고 다녔다. 남긴 걸로 또 한끼를 떼울 수 있다.
놀이동산 건물들을 보는 듯한 아기자기한 오르티세이. 아이슬란드의 아퀼레이 시내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의 오르티세이. 이곳이 알프스다!


이탈리아의 여름은 해가 늦게지지만, 해가 또 일찍 뜨기도 했다. 저녁 9시쯤 지고 아침 5시 반 정도가 일출 시간이었다. 전날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역시 한국인은 나트륨국이 들어가야 힘이 난다.) 오래간만에 덥지 않은 서늘한 기온에서 잠이 들어서 그런지 짧은 시간도 푹 자고 햇빛에 자연스레 눈을 떴다. 덕분에 테라스에 나가 여유롭게 돌로미티의 아침 공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아침식사를 거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호텔 조식들도 특별하다 싶을 정도의 메뉴들을 마련하지 않고 여러 종류의 빵, 차가운 햄, 요구르트, 디저트 정도가 기본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좀 더 비싼 숙소로 가면 스크램블 에그 같이 따뜻한 음식이 곁을어진 정도랄까.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숙소 등급과 상관없이 커피 국답게 커피 머신과 내려먹을 수 있는 커피 종류가 상당히 다양했다. 호텔 헬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는데 빵과 디저트 종류가 다양했다. 단 디저트 들은 단 맛의 성향이 내가 좋아하는 류가 아니라서 입에 맞았지만, 오르티세이의 산들을 보며 아침을 먹는 건 꽤나 황홀한 기분이었다. 센스 있게 1층 식당 테라스 쪽에도 조식 자리를 마련해준 덕에 초원과 산을 보며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전날 시르미오네를 가면서 지치고 더웠던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침에 찍은 숙소 뷰.
디저트류가 다양했던 아침. 하지만 아침부터 당이 땡기진 않아서 몇개 맛만 봤다.


일정을 알아보며 알게 된 건데, 돌로미티에서 알프스를 여행하는 것이 스위스보다는 싸다고 한다. 물론 비수기인 덕도 있었겠지만 밥값이나 곤돌라 가격, 숙소비, 액티비티 가격들은 스위스보다 싼 편이었다. 스위스에서 타본 패러글라이딩이 궁금해서 찾아봤었는데 패러글라이딩도 쌌다. 다만 스위스는 숙소 앞이나 지정된 장소에 있으면 픽업을 해주지만 돌로미티는 곤돌라, 케이블카 등을 타고 내가 패러글라이딩 장소까지 가야 하는 듯했다. 케이블카 패스도 있는 듯하니 잘 활용하면 이득일 수도 있겠다.


돌로미티를 며칠 지내는 거면 나도 그 패스를 이용해 보고 싶었는데 반나절 일정이라 각각 값을 지불했다. 오르티세이에 오는 큰 이유라는 세체다(Seceda)와 그 반대편의 싸소룽고(Sassolungo)를 멀리서 볼 수 있는 산 위의 레스토랑(Almgasthof Mont Seuc)을 가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케이블카와 곤돌라는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버스로 가기도 했지만, 도보로 간단한 오르막을 올라서 방문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이 드신 분들도 천천히 걸어서 도보로 이동하 시기도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서양 어르신들은 지팡이 집고서라도 여행 다니시는데,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에스칼레이터로 도보 오르막도 연결이 잘 되어있다. 이런 시스템은 토스카나 도시들에서도 만났다. 은근히 친절한 이탈리아. 대중교통만 문젠가..
세체다 올라가는 케이블카. 뒤돌아봤다가 급경사에 놀랬다.

세체다로 올라가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한번 갈아타야 했다.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첫 번째 케이블카는 혼자 타고 올라갔고 두 번째 케이블카는 20명 정도가 큰 케이블카에 함께 탑승해서 올라갔다. 첫 번째 케이블카까지는 하이킹하는 분들도 보이고 그냥 산 올라가는 기분이었는데, 본편은 두 번째 케이블카에서 나왔다. 앞쪽에 서서 올라가는 풍경만 봤는데 뒤 쪽을 보니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온 상태였다. 


더 놀란 건 세 체다의 풍경이었다. 표지판을 따라 20여분 걸어서 마주한 세 체다. 그 광활한 풍경에 압도당했다. 스위스에서 본 알프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산 모양 그대로라면, 이곳은 누가 조각해놓은 듯한 거대한 돌조각을 보는 느낌이었다. 돌로미티의 대부분 스팟들은 그렇다고 들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 와닿지 않은 것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엔 정말 멋진 곳이 많구나. 아직도 여행 가야 할 곳이 많겠다 싶으니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다.

세체다. 누가  멋지게 긁어낸 듯한 가파름에 압도당했다.
세체다 집착 샷. 오빠 멋져요...
세체다 주변의 풍경들도 멋지다. 어디 책자에서나 봤을법한 그래픽 같은 풍경들이 내눈 앞에 있었다.


케이블카에 내려서 다른 스팟으로 하이킹이 가능하고 이 주변만 하이킹하고 케이블카로 다시 내려갈 수도 있었다. 돌로미티 대부분 지역이 이게 가능하다 하니 케이블카 패스를 사서 스팟 사이를 하이킹을 하여 다른 지점에서 케이블카로 하산해도 되겠고, 나처럼 원데이투어로 한 스팟만 올라가서 좀 걷다 내려와도 좋을 것 같았다. 주변에 핀 작은 꽃들 뒤로 푸른 하늘과 큰 산들이 있는 게 알프스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운동화로 걷기 좋은 길이라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스위스 때는 9월에 가서 꽃도 없었고 비가 오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날씨 좋은 알프스는 처음이었다. 이름 모를 노란, 보라 꽃들이 지천에 펼쳐져 있었다. 알프스에서 볼 수 있다는 에델바이스를 찾으려 했으나 이곳엔 없는 것 같았다.


식집사에겐 이런 풍경이 천국입니다...근데 노란꽃 넌 이름이 뭐니...?


에델바이스를 찾으며 바닥만 보다가 길 끝에 시선이 머물게 됐다. 이런 하이킹 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문득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케이블카와 에스칼레이터로 친절하게 연결이 되어 있고 스위스 대비 가성비 좋게 알프스를 즐길 수 있는 곳. 한국에 돌아가면 부모님을 설득해 부모님과 함께 돌로미티 여행을 다시 해도 좋겠다 싶어졌다. 여행을 할수록 또 알게 되는 사실은, 좋은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나고 함께 다시 이곳에 와야겠다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2022년 6월 16일 밀라노로 향해 26일 로마에서 돌아온 이탈리아 여행기입니다.

현재 8편을 보셨습니다.


북부/ 밀라노, 크레마, 베르가모(스쳤음), 시르미오네(대중교통)

돌로미티/ 오르티세이, 볼차노(대중교통)

토스카나/ 피렌체, 산지미냐뇨, 시에나, 몬테풀차노, 안세도니아(렌트)

로마/ 산타 세베라, 반나절 속성 관광(영업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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