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MOMA를 다녀오고 느낀 것들
엊그제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장거리 비행 멀미와 시차 부적응으로 거의 20시간을 넘게 잔 나머지… 어젯밤에는 통으로 밤을 새우고 맥모닝을 먹으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열흘 간의 뉴욕출장에서 미주신경성 증상들로 어지럼증이 계속 있어서 관광지도 많이 못 다녔지만 유일하게 머리를 부여잡고 간 곳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이다.
어릴 때부터 밥보다 철분제를 많이 먹고 자랐을 정도로 빈혈, 저혈압 증상이 심해 유독 불특정 다수가 모여있는 장소나 밀폐된 환경들을 피해 본능적으로 그런 곳들을 잘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지마다 미술관은 짧게라도 보고 오는 편이었는데, 여러 작가들의 숱한 고민에서 오는 터치감들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약한 체질과 관련 깊게도 외향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터라 혼자서 상상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리가 저린 줄도 모르고, 종일 배고픈지도 모르고 그림 그리는 데에 몰두했고 그 시간들이 그저 행복했다. 고등 입시 미술을 거치기 전까지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대학 입시 목표가 되면서 그림의 목적이 예전 같지 않아 졌고,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생각이 많아진 스스로를 느끼며 도화지를 굳게 닫아 두었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이전부터 그리던 습관과 순수한 열정으로 그림책도 내고 개인전도 활동했지만, 그 이후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아 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장래희망은 어릴 때도, 30대 중반이 넘어선 지금도 여전히 화가이다.
지금도 머릿속에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할 때면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형형 색깔들을 충동적으로 칠하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상업적 목적이 아닌 순수한 마음의 상태여야만 한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남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부끄러운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다가 어젯밤에는 뉴욕 MOMA에서 봤던 작품들 중 마음에 깊이 남은 앤 라이언의 콜라주 작품들을 곱씹어 보며, 실로 오랜만에 장래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금 ‘화가’.
모마에서 본 앤 라이언(Anne Ryan)의 작은 캔버스 안에 겹겹이, 그것도 섬세하게 여러 가지 작은 천들을 덧대어 하나의 작품을 그려(잘라) 두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큰 깨달음과 위로를 주었다. 완벽한 채색의 형태가 아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 동양화였다 보니 붓으로 흰 도화지를 채워 나가는 방식만 알았지, 콜라주도 그림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콜라주 기법이 물론 새로운 형태도 아니었지만, 앤 라이언의 작품들은 평면적인 채색 형태의 밸런스로 나의 마음에 평온하게 다가왔다. 앙리 마티스의 가위질도 보면서 내게 그림에 대한 압박감을 덜어 낼 수 있는 통로를 보여주는 듯했다.
엄마에게 갖가지 천들을 잘라다가 인형 옷 만드느라 꽤 혼났던 가위질, 풀질로도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림이 다시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손으로 접고, 만지고, 느끼는 그 무엇들을 다 좋아했는데 표현의 영역들, 방식들을 생각보다 한정 지으며 나의 압박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창조의 무게감이 한 꺼풀 벗겨지는 듯한 쾌감이 들었다.
그림의 틀이 깨지고 나니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검은 머릿속이 온통 흰 도화지가 되어 영감이 무궁무진하게 피어났다. 사실 깊은 내면 속에 살고 있는 아이는 형형색색의 색깔들을 엄청 좋아한다. (심지어 내 그림책들도 색깔이 없는 아이가 알록달록 세상을 만나고, 무지개가 사는 숲 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다) 디자이너가 되면서부터는 마우스로 정제된 디자인을 하느라 색깔들이 곳곳에 튀어나오고 싶을 때, 압박감에 쉬이 그리지 못했는데 새로운 틀의 기법들로 내 방 곳곳에 붙여 둘 생각하니 오랜만에 설레고 신이 나기도 한다.
나의 오랜 장래희망을 꿈꾸느라 잠은 통으로 날아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현실이 알록달록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