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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선 Dec 24. 2020

삶이 물음표로 가득할 때, 나는 단편소설을 읽는다.

화자가 던지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 삶은 순식간에 다채로워진다

ⓒ소선

나는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마음에 걸리는 일 없이 여유로운 휴가 첫날, 매력적인 소재의 장편소설을 두어 권 곁에 두고 첫 책장을 넘길 때면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둔 것처럼 마음에 침이 흠뻑 고이는 듯하다. 머지않아 작가가 유려하게 풀어놓은 서사 속으로 풍덩 빠지고 나면 눈으로 글자를 찍어내듯 허겁지겁 결말까지 쉴 새 없이 내달린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새벽이 되는 동안 갖가지 감정은 켜켜이 쌓여 어느새 뻐근하게 마음에 들어차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잔뜩 쌓아둔 감정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가시지 않는 여운을 천천히 즐기는 것이다. 전생 체험이라도 한 듯 생생하게 남아있는 주인공들의 삶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거나 한껏 애틋해하면서 말이다.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 그러했고,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장편소설만 좋아라 읽어대는 나의 독서 편식이 때로 걱정스러웠다.


여러 장르를 읽어보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단편소설은 더욱 공들여 읽어보려 했다. 그러나 상징적인 소재와 절제된 표현, 고차원적인 메시지의 정수라는 단편소설은 내게 너무 어려웠다. 유독 함축적이고 추상적인 메시지를 맞닥뜨리면 작품 자체가 불친절하고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적어도 책만은 억지로 읽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만큼 했는데 안 되면 안 되는 거다'하는 마음으로 독서 편식을 받아들였을 때, 단편소설의 매력을 알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할 때이자 '나 요즘 좀 자의식 과잉인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였으며, 오랜 휴학 후 간만에 찾은 강의실을 한껏 어색해하던 참이었다. 매주 한국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고 서평을 쓴 뒤 토론하는 강의였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첫 번째 소설은 이순원 작가의 <얼굴>이었다. 수십 페이지 남짓이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후루룩 읽고도 남았을 분량이었지만, 납땜질이라도 해놓은 듯 낱장의 종이는 아주 무겁게 넘어갔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시민 탄압에 가담했던 화자는 시간이 지나 당시의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끊임없이 돌려보며 자신의 얼굴이 찍히지는 않았는지 내내 돌려보며 불안에 떤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당시의 언론보도와는 달리 반민주적이며 비윤리적인 행태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화자의 불안을 통해 '살인과 폭력에 가담한 가해자가 동시에 정신적 피해자로 여겨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처음엔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싶었지만, 어느 순간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 나는 내 목숨을 걸고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얽히고설켜 평소 열광하던 장편소설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분량임에도 10배 정도 버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나는 편혜영 작가의 <저녁의 구애>,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혹은 천운영 작가의 <바늘> 같은 것들을 읽으며 자주 잠을 설쳤다. 분량의 한계 때문인지 단편소설 속 화자는 빠르게, 하지만 밀도 높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여전히 나는 장편소설을 가장 사랑하지만 애와 노의 기운이 유독 강한 날 혹은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봐서 드디어 팝콘브레인이 된 건가 싶을 때면 단편소설을 찾아 읽는다. 최근엔 출근길에 장류진 작가의 <펀펀페스티벌>이나 김애란 작가의 <물속 골리앗>을 읽다가 창 밖을 한참이나 쳐다보기도 했다. 뭣도 없는데 자신감이 넘치는 '이찬휘'같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궁금해져서, 장마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결국 물을 잔뜩 담아 둔 비닐봉지를 하나하나 찢어버리던 '엄마'의 절망감에 아연해져서, 그러다 결국 내 삶과 이어지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마음이 되어 몇 날 며칠을 곱씹는다.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운 와중에 나 대신 물음표를 던져주는 모든 화자는 애틋하다. 그리고 답을 주지 않고 결말도 명쾌하지 않은 그런 질문 투성이인 단편소설을 읽을 때, 나는 삶의 가능성을 본다. 우린 여전히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그러다 마침내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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