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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선 May 13. 2021

나는 매일 밤 나를 용서한다.

그렇게 내게 진 빚을 조금씩 갚고 있다.

ⓒ소선

몇 달 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n가지 행동’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다. 전체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떠올려보면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해서 정의한다’, ‘밤에 누워서 핸드폰 하는 시간이 길다’ 뭐 이런 문장들이었다. 그리고 대여섯 개에 해당하는 문장이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한 밤잠까지 설쳐가며 하는 생각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아까 내 말투가 너무 무심했나?’, ‘그 사람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문제가 있나?’, ‘오빠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였는데, 귀찮아하지 말고 한 번 더 물어볼 걸 그랬나?’ 등등. 물론 불현듯 떠오른 질문의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 밤, 바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보니 괜스레 우려가 깊어진다. 다시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들 사이를 요리조리 유영하다 보면 ‘아, 나 요즘 좀 경솔했던 것 같네.’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의기소침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가스라이팅에 일가견이 있던 사수와 1년 반 가까이 일했던 시절에 나는 참혹한 자기반성의 밤을 수도 없이 보냈다. 그럭저럭 별 탈 없는 하루를 보내고도 잠 못 드는 밤은 많아졌고, 생각의 끝엔 꼭 나를 향한 반성이 뒤따랐다. 그러다가는 다음 날 혹은 멀지 않은 순간에 사수에게 해당 고민을 말하고 용서를 구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했고, ‘아니야, 뭐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어’하면 안도했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자의식이 생기던 때도 있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수의 퇴사 후 이런 나의 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장 고무적인 깨달음은 자기 기분 정도도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전전긍긍하고 부러 마음 쓸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습관은 자기 전 나를 용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걱정과 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럴 땐 자기반성의 진입로로 접어들기 전, 현란한 드리프트로 생각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우고 자문해본다. ‘근데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있나?’, ‘만약 상대방이 이러저러한 말로 응수한다면 그것은 나를 배려하는 태도이며, 온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등이다. 그럼 99%의 확률로 ‘아니다’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고 나면 다음 단계는 아주 간단하다. 단호하고 명쾌하게 이어지는 판결, ‘(혹시 누군가, 그럴 리 없겠지만 기분이 나빴더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으므로) 오늘의 나를 용서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내가 나에게 진 빚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편하게 살아보려 해도 복잡한 세상, 몇 평 안 되는 마음속을 부단히 휘저어 가며 살아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하는 생각에 측은한 마음도 든다. 물론 잘못을 했는데도 잘못인 줄 모르고 안하무인 하게 살면 그것 역시 문제겠지만, 한 30년 겪어보니 그럴 걱정을 하기보단 쓸데없는 걱정을 지어먹느라 땅굴 파고 들어가는 것을 더 경계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지름길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 큰 걱정은 없다.


혹시,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계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 정도로 자기반성을 습관적으로 하시는 분이라면 높은 확률로 죄가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무죄입니다.’라고. 실제로 ‘스스로 용서하기’를 근 한 달째 이어가고 있는 내게 놀랄 만큼 아무런 비극(어마 무시한 진상으로 소문이 난다거나, 싸가지 없다고 눈총을 받는다거나, 친밀한 사이가 소원해진다거나)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반성을 일삼던 시절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벅찬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어쩌면 나는 나의 용서를 가장 바라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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