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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선 May 25. 2020

분명한 기억인데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나는 꽤 오래 그 기억을 지어먹고 살았는데 말이다.

ⓒ소선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지방 소도시로의 이사가 결정된 후 우리 가족은 중차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겨울방학까지 한 두어달 남은 시점에서 전학을 갈 것인지 혹은 이번 학년까지는 기존 학교에서 마치고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안건이었다.


어찌보면 심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뜩이나 예민해진 오빠와 나는 난생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 있을 아이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또한 어린 나이지만 큰 힘이 되어준 당시의 친구들과 도저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 몇 개월이라도 더 관계를 연명하고 싶은 마음에 며칠 밤낮을 울고 떼를 썼다.


그 결과, 엄마가 먼저 이사를 가고 나와 오빠는 큰이모네 집에서 통학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토록 고집을 부린 것이 무색하게 나의 결정을 후회하는 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큰이모네 집은 오빠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편도 1시간 45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가뜩이나 해가 짧아진 겨울 아침 오빠와 나는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 올라야했다. 한참을 졸다가 청량리에 버스가 닿으면 부지런히 지하철로 갈아타 30분을 더 달렸다. 지하철을 타러 뛰어가는 중간에 핫도그니 호떡이니 주전부리에 눈길이라도 뺏기는 날엔 ‘아 빨리 오라고!’하는 오빠의 잔소리가 멀찍이서 뒷덜미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착실히 통학을 이뤄내던 어느 날, 매일 이른 새벽에 오빠와 나를 깨워주시던 이모가 늦잠을 자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직장인이 된 뒤 간담이 서늘한 일 Top 3안에 드는, '어딘지 몸이 가볍고 햇살이 눈가를 간질이는 (지각날의) 아침'을 11세에 최초로 경험하던 순간이었다. 시간은 8시 언저리. 택시를 타고 날아가도 1교시 시작 전에 도저히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오빠와 나는 날 듯이 가방을 낚아채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중교통을 오르내렸다.


간간히 새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교정을 지나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교실에 어떻게 들어가지?’,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하지?’등의 번민으로 천근만근같았다. 교실 앞에 실내화 가방을 걸어두고, 깊이 심호흡한 뒤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쏟아지던 시선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땅으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2초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갑자기 요란한 박수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친한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하는 생각과 함께 영문을 몰라 얼어버린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네가 그동안 일찍 학교에 나오고 부지런히 생활한 것을 반 친구들 모두가 알고 있어. 전학가서도 늘 건강하고 밝은 모습 잃지 않길 바라!’ 뭐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희미하지만 분명히 이런 워딩이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자리에 앉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2주 정도 뒤에 겨울방학이 찾아왔고 나는 전학을 갔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내내 마음에 품고 있던 나는 당시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십 여년만에 만나던 날 추억팔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친구가 전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너랑 제일 친한 친구가 나였고, 나도 한 기억력해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분명히 기억할텐데, 그런 적 없었어!’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옥신각신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나도 어렸을 때 꼬리로 걷는 고래를 본 적이 있는데, 내 기억엔 정말 생생한데 다들 아니래’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을 끝으로 진상규명에 대한 모든 의지를 상실해버렸다.


진실을 알 수 없는, 미완의 헤프닝으로 기억되는 이 일은 가끔 ‘분명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곱씹어볼 때 불쑥 떠오른다. 행복했던 기억을 이 세상 누구도 함께 기억해주지 못 하고, 오로지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떡하나. 사실 그것은 너의 착각이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들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행복했던, 인상깊었던 내 삶의 순간들을 자유롭게 노다니고 있다. 이 중 몇몇은 또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그 기억을 지어먹으며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기억들은 나에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삶의 빽빽한 페이지가 되어줄테니 그걸로 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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