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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r 03. 2021

교대역에서 온 편지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7

발신인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반포대로22길 39

이윤주

     

언니, 잘 지내?     

언니. 저 윤주예요. 언니한테 문득 편지가 쓰고 싶었어요. 아니, 언니라면 제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것 같았어요. 지금 솔직히 저는 언니가 너무 그리워요. 언니랑 종일 같이 있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언니하고 친했다고 확신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MT 날에 언니하고 같이 산책하러 나갔을 때, 제가 늘어놓는 푸념을 끝까지 들어주고 손을 잡으며 해줬던 그 말이 저를 그나마 지금까지 지탱해줬거든요.   


"너 괜찮아. 잘 될 거야."    

 

아직도 언니 손의 온기가 생생히 기억나요.

그 온기를 떠올리며 힘겨운 취준 생활을 견뎠어요. 한 달에 15만 원 내는 싸구려 신림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버텼어요. 매일 자소서를 쓰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방에 들어와서 쓰러지듯이 잠드는 날의 반복이었어요. 고시원에 돌아오는 것도 힘들었어요. 오르막길을 20분 가까이 올라가야 했거든요. <기생충>에서는 낮은 고도가 가난의 상징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반대에요. 높은 고도의 반지하가 진짜 가난이에요. 위로 올라갈수록 차가 못 올라오거든요. 어쨌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가 힘들 때마다 언니 말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진흙 속에서 피는 꽃처럼요. 다른 사람들이 항의할까 봐 카페에서 퇴근하고 새벽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공용 샤워실에서 새벽에 샤워하면서 저에게 되뇌었어요. 나는 괜찮다. 잘 될 거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더라고요. 자소서를 50개를 썼는데, 단 한 군데도 합격을 못 했어요. 저 회사에 실제로 다니는 사람보다 더 잘 알 거 같은데, 왜 직무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왜 죄송한데 이번에는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할까요. 처음 10장에서 20장 정도 쓸 때는 한숨이 땅에 꺼지듯이 쉬어서 카페에서 항의도 받았는데, 50장 넘어가면서 초연해졌어요. 기계적으로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자소서를 쓴지 딱 50장 될 때, 1차에 드디어 붙었어요.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본사로 오라고 하는 문자를 보고 정말 표현 그대로 뛸 듯이 기뻤어요. 왜 기쁠 때 뛸 것 같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가장 좋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회사로 향했어요.     

근데, 면접을 망쳤어요. 이걸 망쳤다고 해야 할까요? 면접관들이 저를 위아래로 훑더니, 자기 소개하라는 질문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는지 묻는 거 말고는 단 한 개의 질문도 저한테 하지 않았어요. 예상 질문을 일주일 내내 준비해서 갔는데….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는데, 화장실에서 우연히 면접관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 거예요.     


“그래도 검은 옷 입은 애한테 질문 좀 하지”

“그러는 당신은?”

"그 여자애는 너무 없어 보이더라."

“너무 절박해 보여서 좀 그래."     


그렇게 제 첫 번째 면접은 두 여자의 신음을 듣고 나오면서 끝났어요. 절박해 보이는 것도 문제인가요?     

더는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요. 카페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그냥 고시원에서 종일 지냈어요. 하루에 두 번 라면 먹는 것과 화장실에서 용무 보는 걸 빼고는 고시원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니까 하루가 참 빠르더라고요. 그렇게 육 개월이 지났어요. 근데 초등학교 동창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그 친구가 군대 가면서 연락이 끊긴, 그저 그런 친구였는데, 갑자기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살도 찌고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거절했는데, 끈덕지게 부탁하더라고요. 결국 교대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주 비싼 양복을 입고 나타난 그 친구와 적당한 추억팔이를 하고 난 뒤, 그 친구가 갑자기 저한테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어요. 제가 어버버 아무 말도 못 하니까, 자기가 하는 일에 잘 맞을 거 같다고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묻더라고요. 자기도 육 개월 밖에 일 안 했는데 벌써 승진했다면서, 일이 어렵지 않다고 절 설득했어요. 눈 떠보니까 뉴라이프 회사 건물이었어요.      

언니, 저는 주니어파트너라는 번듯한 직책이 생겼어요. 이제 지긋지긋한 저 높이 있는 신림동 고시원을 지나서 교대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주니어파트너 동료들이랑 지내요. 너무 행복해요. 매일 아침에 서로의 비전에 대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고, 일도 적성에 잘 맞아요. 좀만 더 열심히 일하면 저도 시니어파트너로 승진할 수 있어요. 살도 좀 빠졌어요. 이제 라면만 먹지 않고 매일 밖에 나가니까요. 코로나 때문에 최근에 카페에서 사람들을 못 만나서 잠시 일이 어려웠는데, 이제 2단계로 다시 돌아오고 괜찮아요. 저 연애도 시작했어요. 뉴라이프 회사 안에서 알게 된 시니어파트너인데, 제 말을 너무 잘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에요. 저도 빨리 시니어파트너가 되고 싶네요.     

언니, "너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요? 드디어 그 말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요새 언니가 더 생각나요. 혹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드디어 언니를 볼 준비가 된 거 같아요. 3월 4일 목요일 저녁 어때요? 시간 괜찮으면 제가 언니 집 근처에 있는 할리스커피로 갈게요. 그때 봐요. 

언니, 고마워요.     



사랑을 담아,

언니의 영원한 동생 윤주.     



수신인

서울특별시 북아현동 북아현로4길

조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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