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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환 Jul 19. 2016

진화하는 TED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빌 게이츠가 모기장을 만든다고?

수년전 TED는 빌 게이츠에게 우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다. 

Microsoft를 창업해 세상에서 가장 큰 부를 갖게 된 그가 주목한 문제는 다름 아닌 '모기'였다. 

무대에 올라온 그는 90년대에 들어서 DDT(유기염소계 살충제)등의 발견으로 대부분의 부자나라에서 말라리아와 같은 '모기병'이 자취를 감추게 된 현상을 설명했다.


"여기가 바로 역설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병이 이제 가난한 나라에만 있으니까요.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발모제에 들어가는 돈이 말라리아 퇴치에 투입되는 돈보다 많습니다. 네.. 끔찍하죠. (웃음) 대머리. 쉽지 않습니다.  이제 가진 사람이 고민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일 년에 100만 명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감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엄청나게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대 옆의 투명한 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도 함께 이동했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여기 제가 모기를 좀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겪어보시라고요. 잠깐 좀 풀어놔 보도록 하죠.  

가난한 사람만 말라리아로 고생하란 법은 없습니다." 

라고 말한 뒤, 실제로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사람들은 당황해하며 강의장을 빠져나가야 할지 말지 서로들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빌 게이츠의 의도를 알아챈 뒤,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푼 모기들은 깨끗하니 걱정 마세요."

Bill Gates ©TED.com

이 깜짝쇼는 TED를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기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빌 게이츠&메린다 재단은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면서 과학자, 철학자, 정부 등이 시장논리에 부딪혀 하지못하는 진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동안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도 연구하고, 신약도 개발했지만 이들 덕분에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아이디어는 결국 '모기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DDT와 모기장만 사용하는 것으로도 사망률을 반으로 낮출 수 있었다. 

빌 게이츠 재단은 '모기장 펀드(Bed net Fund)'를 만들었고, TED 영상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부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나라에 보급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이 솔루션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의 일련의 활동들이 압축된 사례다. 


TED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바로 이런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다.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TED는 'Information Achitect'라는 개념을 창시한 리처드 솔 워먼(Richard Saul Wurman)과 최초로 방송에 컴퓨터 그래픽을 적용한 해리 마크스(Harry Marks)에 의해 1984년부터 시작되었다.

소위 '엘리트'들의 지적 축제였던 TED는 2000년에 크리스 앤더슨이 이끄는 새플링 재단에 인수된 뒤로 파격적인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TED.com을 만들어 그동안의 강연 영상들을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앉은자리에서 양질의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꼭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치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TED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오디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민주화'를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TED.com에는 2,100여 개의 TED talks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111개의 언어로 자발적으로 번역되어 전세계에서 39억 번 넘게 시청되고 있다.

두 번째는 TEDx를 만들어 누구나 TED와 같은 이벤트를 전세계 곳곳에서 할 수 있도록 무료로 라이센스를 발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TED영상을 함께 보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네트워킹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170개의 나라에서 16,500번 이상의 TEDx 이벤트가 개최됐다.


TED.com의 1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는 TED.com에 첫 번째 영상이 올라온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날 달, 지금의 TED를 있게 한 사람들을 캐나다의 밴프라는 로키산맥 중턱 작은 도시에 초청하여 새로운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이것이 바로 TED SUMMIT이다.

지난 10년간 TED 무대에 올랐던 TED Speaker, 이 영상들을 자발적으로 번역해 온 TED Translator, 전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TED의 가치를 실천하는 TED Fellow 및 TEDx 활동가 등 1,200여 명이 참가했다.

일주일 동안, 51명의 새로운 TED Speaker를 통해 영감을 얻고 10,000여 명이 사방팔방 흩어져 91개의 워크샵과 12개의 아웃도어 활동에 참여하면서 전세계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맺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동안 TEDxDaejeon, TEDxDaedeokValley, TEDxKAIST을 비롯해 50여번의 이벤트를 오거나이징한 공로로 초대되었다.



지식의 칵테일, TED 컨퍼런스.


Technology(기술), Entertainment(오락), Design(디자인)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진 TED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이를 소위 'Brain Explosion(뇌폭발)'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일주일 동안 쉼 없이 수많은 사람들과 아이디어들을 공유한다. 

TED컨퍼런스에는 TED talks 강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한 세션에 7~8명의 스피커가 나와 이야기를 하는데, 18분(인간이 가장 집중을 잘하는 시간을 근거로 만들어진 TED의 강연시간 규칙)씩만 한다고 치더라도 두 시간이 넘는 강연을 듣게 된다. 여기서 녹화된 강연은 내년 컨퍼런스가 열릴 때까지 일 년 동안 순차적으로 TED.com을 통해 공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강연에 열광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재미있던 것은 세션 중간중간에 참가자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마련된 다양한 워크샵(Community Session)이었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91개의 워크샵이 있었는데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순서대로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었다. 참여했던 워크샵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첫 번째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분석하며 어떻게 뇌의 활동이 변화하는지를 알아보는 워크숍이었고, 두 번째는 TED나 TEDx에서 다뤄진 인터넷을 이용해 만들어진 다양한 온라인 의사결정 플랫폼(예를 들면,  루미오는 뉴질랜드의 TEDxTeAro에서 소개됨)들을 비교하며, 과거에 비해서 사회변화를 조직하는 것은 수월해졌지만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왜 어려워진 것에 관한 토론이었다. 

이외에도 DNA 검사 워크샵이나 새로나온 BMW의 전기차를 직접 운전하며 미래의 교통수단에 대해 상상하는 워크샵 등 참가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워크샵이 마련되어 강연과 함께 마치 '지식의 칵테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적 충만함은 결국 심신의 조화로부터.


세션 사이사이에 100개 가까이 되는 워크샵이 몇 시에 어디에서 열리는지 각자 알아서 이동해야하는 등 하루 종일 정신없는 와중에, 프로그램 중간중간 아웃도어 활동에도 참여해야 한다. 행사가 열리는 밴프 지역은 낮이 굉장히 길어서 밤 11시나 되어야 해가 완전히 지는데, 5시면 다시 해가 뜨기 시작한다. TED 프로그램은 아침 6시 45분부터 바로 진행이 된다. 주로 아침에는 하이킹이나, 요가 같은 프로그램으로 시작되는데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5km 정도 하이킹한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눈 뜨자마자 Tunnel Mountain이라는 2,000m 가까이 되는 산을 뛰어서 올라가야 한다. 요가도 그냥 요가가 아닌 '카디오 퓨전'이라는 심장강화 요가이다. 순간, 테드가 아니라 태릉에 온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를 비롯해 산악자전거, 암벽등반, 카누 등 12가지의 다채로운 아웃도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TED가 이렇게 아웃도어 활동을 접목하는 이유는 일주일 내내 엄청난 양의 두뇌를 써야하기 때문에 일종의 브레인 스파(SPA)이자, 몸을 쓰는 활동이 뇌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은 또 다른 언어가 되어 관계 맺기가 훨씬 수월하기도 했다.



Everything is 'Connected' 


컨퍼런스 기간 동안 TED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일상적 상호작용(Real-Life Interaction)'을 추구한다. 하루일정이 끝날 때마다 오늘 어떤 활동들이 있었는지와 내일 나에게 어떤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메일로 팔로우업 해준다. 참가자들을 위한 별도의 페이스북 그룹과 스냅챗도 운영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수많은 강연과 워크샵, 아웃도어 활동 이후에도 밤이면 날마다 네트워킹 파티가 계속된다. 이를 촉진하는 어플리케이션도 개발해서 행사의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TED에 초대받게 되면 'TED Connected'라는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내가 사전에 신청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나만의 행사 스케쥴을 확인할 수 있고, 각 프로그램이 어디에서 진행되는지를 맵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직접 메세지를 보낼 수도 있다. 

심지어 RFID를 기반으로하는 위치센서를 통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이 덕분에 지금의 WAGL을 함께 하는데 큰 영감을 준 피아 만시니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TED 측에서는 이 센서를 통해 행사기간 동안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가 있었는지, 사람들의 동선이 어떠한지 등을 파악해서 다음 행사를 위한 피드백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세계, TED Universe.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MARVEL) 코믹스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만화의 공통 세계관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하는 것처럼, TED도 14개로 구성된 TED 유니버스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TED.com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선정하여 10억 원을 지원하는 TED Prize,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가들을 선정해 1년 동안 후원하는 TED Fellow 프로그램, TED처럼 짧은 형식의 교육용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TED-Ed 서비스, TED의 컨텐츠를 전세계의 방송사를 통해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TED Distribution 등 다양한 방식과 채널을 통해 TED가 추구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TED의 가치에 동조하고 지원하는 전문위원(Brain Trust)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서두에 이야기한 빌 게이츠는 물론,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마케팅 전문가인 세스 고딘 등이 참여하고 있다. 

TED Universe ©TED.com


TED SUMMIT에서 제시하는 9가지 이머징 이슈


TED SUMMIT의 마지막 날, 크리스 앤더슨은 전 세계의 TED 커뮤니티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9가지 이머징 이슈를 공유하며 TED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 9가지는 아래와 같다.

1. Climate change

2. Corruption + Violence

3. Justice
4. Political Systems

5. Inequality

6. Social Media

7. Techno-scientific Innovation

8. Personal Learning + Growh
9. Education

그 중, 그동안 비정치적인 주제를 다뤄오던 것과 달리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TED가 던지는 질문에 주목했다.
1. 기술은 이제 국가와 국경을 넘어 다양한 커뮤니티가 또 다른 글로벌한 형태의 거버넌스로 인식되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초월적 상황에서 누가 투표를 하고 어떤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가?
2. 경제적 측면의 이해가 부족한 현대의 수많은 정치적 리더들이, 미래의 정치 지도자로서 지속가능한 계획을 만들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필터를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3. 머니파워는 항상 권력의 한 형태가 되어왔는데, 선거과정과 정치 시스템에서 어떻게 이것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더 공정한 대표와 정책을 보장할 수 있을까?  


©TED SUMMIT GROUP

TED에서는 그동안 정치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리스 앤더슨이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처음으로 외친 말이 "oh! Brexit"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시스템은 붕괴의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지금의 시스템 박스(System Box) 밖에서 사고하는 꿈 꾸는 사람들과 혁신가들에게 함께 힘을 모아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퍼뜨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가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Ideas Worth Spreading(퍼뜨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는 TED의 슬로건이다. 
나는 '아이디어'를 맹신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Action'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TED SUMMIT을 경험하면서 그동안의 TED가 변화해 온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은 사실 '아이디어'를 믿는다기 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믿는 것 같다.   

이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들의 희망과 꿈을 공유하며, 서로가 만들어낸 성공과 기쁨을 전 세계의 구석구석에 전파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함께 배우고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 또 다른 무브먼트를 만들어 내는 것.
그 시작은 결국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TED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능성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TED의 진짜 모습이지 않을까.


©TED SUMMI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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