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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Dec 01. 2022

수단으로서의 목적

목적이 이끄는 삶. Purpose-driven Life. 이 비슷한 말을 회사에서 일하면서 들었다. Market-driven Change. 한때 기계 판매 중심이었던 IBM이 서비스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내건 모토이다.


인생이든 경영이든, 더 나은 것으로의 변화를 하려면 상위의 고결한 담론이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다. 목적 주도형 인생이나, 시장 주도형 경영혁신이나, 나에게는 비슷하게 들린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성공 공식이 약간 빛깔이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왜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가? 나는 ‘목적이 이끄는 삶’ 보다는 ‘목적이 수단이 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삶에는 큰 목적이 없다. 삶에 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영웅 설화의 주인공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가 숨겨진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명, 생의 목적 등을 찾아 내고, 간난고초 끝에 이를 결국 이뤄내고,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처럼 앞으로 더 전진할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 지향적 삶을 추구한다고 치부하면서 자기를 엄청 고문하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에게 아직 미 부여된 목적을 찾아 수십 년을 헤매거나, 또는 아주 위대한 목적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 스스로를 잘못 포지셔닝하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이런 사람들은 고결한 목적을 수행해야 할 자신이 한낱 밥벌이나 하고, 깜냥도 안 되는 인간들 앞에서 굽신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응당 살아야 할 삶과 지금의 현실이 미스매칭 되어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생에 목적은 없다. 우리는 그냥 산다. 이건 법륜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법륜스님은 목적지향적으로 사는 타 종교 성직자들의 얼굴이 피곤에 찌들어 있음을 많이 보셨다고 했다. 그들은 목적지향적 삶을 살면서, 사실은 성취, 부흥, 확장 등 외형적 성장에 자신을 갈아 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법륜스님 당신도 매우 목적지향적 삶을 사신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북한 및 저개발 국가 아동복지, 그리고 다양한 무료 강연과 사회 공헌 사업을 하신다. 외면으로 보면 매우 목적지향적 삶이다. 그러나 본인은 웃으시면서 인생에 목적은 없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은 자신이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내가 건강체가 되어 여생을 행복하게 누린다는 인생 방향을 정한다고 치자. (이것은 남은 인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근력을 기르기 위해서 매일 헬스장에 가고, 특히 하루 팔 굽혀 펴기 100개 달성을 목표로 생활한다고 치자. (이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목표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건강체로 늙어서 미래에 행복한 것, 내가 팔 굽혀 펴기를 일정 횟수 이상을 해 내는 것이,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런 것들이 그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게 그나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건강한 노년, 내가 달성해낸 팔 굽혀 펴기의 갯수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이 목적이 좌표의 프레임이 되어 우리 인생을 지탱해 주고, 우리의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연료가 되주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 하나는 경제적 고통과 가족부양에 대한 고민 없이, 자연친화적인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의 단기 목표는 네팔의 어느 산을 트래킹 해 보는 것이다. 나는 그가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지, 아니면 서울 외곽 어느 신도시 역세권 아파트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갈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희망한 네팔의 어느 고원 트래킹에 결국 성공할지 안 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현재의 그가 절제 생활을 하며, 매일 근력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꾸준히 등산을 다닌다는 것이다.


목적도 수단이다. 무형의 수단, 관념적인 수단이다. 다만 다른 수단들과 다른 점은 있다.

목적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흔들림 없이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좀 더 고결한 수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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