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소수의 ’성공자‘와 다수의 ‘실패자’ 또는 ‘비성공자’들이 있다. 그런데 수많은 사후담을 읽어 보면 소수의 성공자에 대한 얘기, 기사, 뉴스, 유튜브 콘텐츠 등은 너무도 많은데, 다수의 비성공자 및 실패자들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성공자의 얘기만큼 비성공자의 얘기도 들어 봐야 성공자의 성공 방정식이 일반 법칙인지 우연인지 알 수 있다. 만약 비성공자의 접근방식, 철학, 습관, 행동 등이 성공자와 거의 같다면, 우리는 성공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는 그만이 가진 그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남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는 말한다는 것이고, 타인들은 침묵한다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법칙인 것처럼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침묵을 하고 외면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속사정을 이해해야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들려지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생존자, 성공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들이고, 그것은 실제로는 탈락자, 낙오자, 비성공자의 이야기와 별반 차이 없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우연이고, 오히려 우연의 힘을 믿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결과를 담보해 줄 수 없는 행동양식, 습관 등을 만들고 실행하느라고 연구하고, 돈 쓰고, 일찍 일어나고 하는 것이 오히려 산출물보다 투입물을 늘여서 전체 효율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치병을 앓다가 무슨 무슨 약초를 달인 물을 마시고 그 병을 치료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똑같이 그 달인 물을 마시고 죽은 사람의 얘기도 같이 들어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사람을 다시 이 세상에 데려 올 수 없고, 또 설령 죽기 전에 그가 할 말이 있다 하였을지라도 우리가 듣기 싫어했을 것이다. 뭔갈 해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고 있다. 그 달인 물을 먹고도 죽은 사람의 비율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간 사람의 비율과 동일하다면 그 약은 무해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물을 먹고 살아난 사람들의 비율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난 사람의 비율과 동일하다면 그 물은 무익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물을 먹고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그것의 유익에 대해서 묵상한다.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세상을 바로 보지 않겠다고 아예 작정을 하고, 한쪽 창으로만 골목 밖을 내다보겠다고 작정을 한 것 아닌가?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 세상의 전부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