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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May 20. 2023

최초의 주장이 사라진 세계

최근에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거기 나온 한 대목을 읽고 든 생각이다.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드 베게너 (Alfred Wegener 1880-1930)은 1912년에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다. 그 주장은 원래 지구는 그가 ’판게아‘라고 부른 하나의 대륙만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유라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남극 등이 다 합쳐진 한 대륙이다. 베게너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이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륙들이 원래 모두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는 그의 주장이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긴 했어도 그가 대륙의 이동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애 나머지를 이것을 증명하는 데 바쳤다. 그러다가 이를 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1930년 11월에 그린란드를 횡단하던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고 7년이 지난, 1937년에 남아프리카의 지질학자 알렉스 뒤 투아가 《떠도는 대륙들》이라는 책에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가 오늘날의 위치를 잡기까지 약 2억 5000만 년이 걸렸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여러 증거들, 즉 대륙간 해안선의 일치, 지질구조의 연속성, 고생물 화석의 분포, 빙하 퇴적층의 분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륙이동설은 옹호되고 있고,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대륙이동설을 바탕으로 현대의 판구조론이 정립!)  


첨으로 어떤 주제를 발제한다거나, 첨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개진한다거나, 첨으로 어떤 사상을 주장한다거나 하는 것은 얼핏 보면 무모한 짓 같다. 왜냐하면 당대에 그 주제가 사회를 이끌 중심주제가 안 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쉽게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사상은 뭔가 불손하거나, 시대 및 집단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폄하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나중에는 어떻게든 검증된다. 누군가에게 검증을 하고 싶은 동기를 불어 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최초의 그 주장은 의미가 있다. 그 주장이 마침내 옳은 주장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는 시대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주장이 옳지 않다고 드러난다고 해도, 그래도 그 주장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그런 주장이 다시 주의를 끌 필요가 없는 세상, 또는 그런 류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도구들이 이미 잘 개발되어 있는 세상을 도래시킨 것이다.


최초의 주장은 참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검증할 가치나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더 중요하다. 최초의 주장은 그 주장의 진위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세계를 발전시킨다.


과거에 나는 어떤 주제를 발제한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한다거나, 나만의 개똥 사상을 주장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그 주제는 주목받지 못했고, 아이디어는 외면받았고, 나의 개똥 사상은 ‘뭔가 좀 이상한…’ 정도의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이제 나이가 좀 들었으니 그런 ‘최초적’ 행동은 더 이상 할 필요가 별로 없고, 남들이 이미 검증한 안전한 길로만 가는 것도 수월치 않다고 느낀다.


내가 외견상 최초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였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것은 내 주변에도 역시, 새 주제의 발제자도 없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긴가 민가 할 법한 ’신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이 세상은 수십 년 동안 점점 고요해진 것일까?


나의 세계가 고요해진 것은 내가 타인이나 이 세상 자체를 묵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묵살은 아니더라도, 내가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 안 올리고 귀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성대의 피치를 조금만 올리면 된다.


내 주변에, 낯선 주제, 이상한(이상해 보이는) 아이디어, 최초의 주장이 하나도 없다면, 과연 ‘나’라는 세계는 지금 발전하고 있나라고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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