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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May 03. 2024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었다.

무서워 죽겠다.

내 나이 머지않아 마흔.

나는 지금까지 단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았다.

영어 과외.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생각에 이르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격렬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지 꽤 됐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일말의 애정도 없었고,

심지어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왜 그렇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거부하게 됐을까.


…자신이 없어서.


원래 이렇게까지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겉모습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때 알았다.

나는 눈으로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눈 아래 얼굴, 말하자면 입꼬리, 광대 근육으로 미소를 만들며 살았는데,

그 미소를 갑옷으로, 무기로 삼아 세상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쓰면서 웃음은 가려졌고,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학생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비친 나는 공포와 피해의식에 찬 눈을 하고 있었고, 그 눈이 내 얼굴의 전부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수록 거울 속 나는 나를 점점 경계해 갔다.

'뭘 봐. 어쩌라고.'


약 삼 년 여의 시간 동안 매일 그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 미운 얼굴이 그냥 나라고 믿게 된 것 같다.

고시원에 살면서, 매일, 종일 일만 하며 사는데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

좌절감과 무력감, 열패감을 느꼈다.

나는 나름 고학력자다.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고 공부한 친구들은 다들 번듯한 직업을 갖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 대비를 견디기 어려웠다.

완전한 패배자.

'가진 걸 활용하지 못하는 건 순전히 네가 그저 병신이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대충 그때부터 학생들 눈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된 것 같다.

교재에 눈을 내리깔고, 두 시간 동안 내 할 말만 쏟아내고 나왔다.

그 시절에 수업을 시작했던 아이들과는, 마스크를 쓰고 만난 기간이 더 길었던 그 아이들과는,

마스크를 벗고 나서도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들면 저 아이는 내 얼굴의 공포와, 피해의식과, 열패감 등을 똑바로 보게 되겠지.

나도 널 보지 않을 테니, 너도 제발 나를 보지 마.


얼마 전, 그렇게 삼 년을 함께 수업한 친구가 이제 학원을 다녀보겠다며 수업을 그만두었다.

눈도 안 마주치고 수업을 했는데 삼 년을 함께 했다니.

함께 '해줬다니'.

나는 학생에게 아무 애정이 없었다. 설명하면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일종의 직무유기 아닌가? 영어는 가르치고 있을지언정 나의 태도가 저 친구의 정신에 해가 된 것은 아닐까?

학생과 학부형은 그런 나를 삼 년이나 '참아준 것'이다.

황송함. 죄책감.


모든 수업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었고,

이제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그만두었다.


나는 평생 과외만 하고 살았는데. 그 흔한 카페 알바조차 안 해봤는데.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고 과연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누가 나를 받아줄까? 내가 지금부터 무엇을 쌓으면 그게 쌓이기는 할까?

그때까지 나는 무얼, 어떻게 벌어먹고 살까?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이번 달부터 수입이 없다.


너무나도 막막하고 두렵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일이 싫었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참으며 해왔다. 그런 나이기에,

이 불확실성의 상태가 아주 많이 두렵다.


얼마 전,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인생은 짧다.


나이 마흔은 생의 삼분의 일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그래서 일단 멈췄다.


나는 신을 믿는다.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니 신에게 면목이 없다.


신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했다.


신이시여. 제가 이렇게 가만히 서서 벌벌 떨다 심장마비로 죽기 전에 제발 어느 방향으로든 좀 자빠뜨려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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