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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May 10. 2024

처음이 어렵지 반복되면 익숙해

이제는 이게 슬픈 건지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지난 주부터 시작한 짐정리(라고 쓰고 책 정리라고 쓴다).

양극성 장애 발병 후 10년간 이곳저곳에 쌓아둔 짐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때 그때 조금씩 하다보니 아주 난장판은 아닌데 그렇다고 또 정리된 것도 아닌,

그냥 지금의 내 삶과 비슷한 애매한 풍경을 바꾸고 싶었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뭔가 이 작업을 끝내고 나면 내 일상이 변할 거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과한 의미부여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차피 인간이란 생물은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

짐 정리는 과거와의 이별과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출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이리저리 뒤섞인 상태에서 맑았다가 흐렸다가 폭풍이 몰아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잠깐 수그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체념을 가장한 포기를 한 건지 모를 나날이 지속되기도 하고.

어쨌거나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요즘 책 정리에 열심이다.

책장에 있던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고 필요 없는 책들을 버리고 안타깝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 책들을 중고로 판매하고.

그렇게 책과 이별하고 있다.


이별.

나는 이 단어에 무감각하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많은 이별을 경험했기에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혹은 잊어버리기 라는 방법으로 생존해 왔으니까.

트라우마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매커니즘으로 처리해서 생긴 문제다.


15번 넘는 이사를 다니면서 도시와 섬, 산골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도 두 번 옮겨 다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등학교는 어떻게 한 군데서 졸업했지만.

내가 원해서, 혹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제 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했다.


예전에는 딱히 몰랐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고 그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내 과거가 너무 아프게만 느껴진다.

무수히 많은 이별을 겪으면서 나는 사람과도 장소와도 헤어져야 했고 그럴 때마다 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상한 신념(선교사가 되겠다는 망상)이 있던 아빠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면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이별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잦은 이별과 그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실제로 이별을 겪으며 느꼈던 고통들은 나로 하여금 그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방법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알려줬다.

친해져 봤자, 마음을 줘봤자 어차피 이별할텐데 굳이 가까워질 필요가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환경과 이별할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 독립성을 유지하고 나만의 삶을 가지는 것에 집착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양극성 장애까지 겹치니 그런 경향은 더더욱 심해졌다.

지속된 이별과 변화에 대한 반작용인지 지금은 그 어떤 변화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사를 가야할 이유가 있음에도 어떻게 해서든 가지 않는 건 이번 이사가 마지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을 집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고집이랄까.


이별에 익숙해지면서 인간 관계에 소극적이 된 건 어느 정도는 마이너스인 게 맞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거부하고 그런 건 아니다.

그랬다면 대학교 다닐때 학생회 임원을 하진 않았겠지.

다만 관계는 맺어도 마음을 주지 않는 내 태도가 인간관계에 그리 좋지는 않았던 건 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양극성 장애 발병 이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고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꼬박꼬박 약을 챙겨먹고.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견디지 못할 만큼의 고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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