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범근 May 31. 2020

실패의 기록을 담담하게 쓴다는 것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 

나라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책을 덮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겪었던 2018년의 블록체인판을 써보면 어떨까.


난 옐로모바일처럼 거대한 회사에 속했던 것도, 드라마틱한 성장과 추락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건 확실하다. 나는 얼마나 미숙했는지, 그 경험으로 뭘 배웠는지 돌아보고 싶다.  


사실 조금씩 기록해놓긴 했다. 하지만 쉽게 꺼내보기가 어려웠다. 두려웠다. 결국 나도 그 안에 있었으니까. 남들을 까면서 난 깨끗했다는 듯이 변호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가 정말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 모르겠다..'하고 덮었다.


근데 최정우님은 그걸 실천에 옮기셨다.


책을 읽는데 2014년의 옐로 페스티벌과, 블록체인씬의 '프라이빗 파티'가 겹쳐보였다. 이상혁 대표가 탔다는 2억짜리 벤츠와, 비트코인 갑부가 버닝썬에서 시켜먹었다는 1억짜리 술상이 겹쳐보였다.


가장 공감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손정의 사과상자'였다. 저자는 황당한 비전을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손정의 회장은 쓰러져가는 건물 안 사과 상자 위에서 10년 뒤 조단위 매출 기업이 될 것하고 연설했다고 했다던데... 나는 지금 그 비슷한 걸 보고 있는 건가? 내가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손정의 사과상자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ㅋㅋ 나도 수많은 ICO를 목격하면서 그런 고민 또는 합리화(?)를 수없이 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정말 진실을 담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책에 나온 것처럼, 기억은 주관적이고 기록은 왜곡된다. 저자 해석과 교훈이 다 옳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이 책을 쓴 용기가 멋있다. 자기 실패 기록을 담담하게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옐로모바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있었고,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솔직한 기록을 출판하려는 다짐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뭣보다 자기 자신도 비판받을 각오를 하고 까야 하는 일이다.


어쨌든 이 모든 걸 떠나서 그냥 재미로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건조하고 차분한 문체인데도 몰입도가 엄청 좋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2시간도 안되어 순삭했다.


기업실사보고서를 못보는 경영진이나, 자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자 해고해버리는 사건 등등을 보면 화가 나면서도 마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나, '빅쇼트'를 보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다. 나도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다 내려온 듯한 여운이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을 바꾼 책 4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