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개학은 없었다
'범근아, 이리 좀 와봐!' 요즘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듣는 말이다.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부르시는 소리다.
'영상 내보내기 했는데 검은 화면만 나온다 얘 이거 왜 이러니' 'PPT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못생겼어 어떻게 해봐'
'화면 전환하는데 깨지네.. 난 이런거 안넣었는데...'
뭐 요런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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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시다. 요즘 머릿속엔 '온라인 강의 어떻게 잘 찍지'밖에 없다. 하루 종일 PPT 만들고, 녹음 대본 쓰고, 거의 유튜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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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처음 써보는 프로그램이다. 워낙 막히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영상 편집은 물론이고, 구글 드라이브도 한번도 안 써보셨다.)
내가 전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는 물어볼 사람 없어요?' 하고 물었다. '야 우리 정보부장님이 59세야.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들이 IT기자인데 이럴 때 덕좀 보자' 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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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2주간 고생하면서 엄마의 IT 활용, 영상제작 스킬이 눈부시게 늘고 있다는 점. 처음엔 '여러분~ 문학쌤 홍진숙입니다~ 하고 녹음하시고, 오그라든다며 괴로워하셨다. 근데 이제는 삼각대, 핀마이크 등 각종 장비까지 갖추고, 나름 능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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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도 처음엔 간신히 템플릿만 채우셨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피드백을 드리자, 이젠 시원시원하게 이미지도 넣고, gif 이미지도 활용하신다. 브루로 자막 넣는 법, 인코딩하는 법을 차례차례 마스터하시더니, 어제는 PPT 단축키까지 배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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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피피티는 정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요' 하면서 Alt+H+G+A로 정렬하는 법을 알려드렸다.
'어머어머!! 너는 어떻게 이런 걸 아니? 신기하다 얘' 바로 카톡을 꺼내서 동료 선생님들한테 알려줘야겠다고 하신다.
음.. 내가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나 다른 선생님에게는 이 정도도 충분히 큰 도전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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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다른 선생님은 그냥 EBS 강의 가져다 쓰는데, 굳이굳이 더 잘 만들겠다고 밤잠을 설치고 계신 엄마를 보며, 욕심은 엄마한테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온라인 개학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