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 큐레이터의 말] Justin Trudeau 관련 기사를 보고
2019년 3월, 퍼블리 큐레이터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선정하고 '큐레이터의 말'을 썼다. 퍼블리에서는 큐레이션 서비스 종료로 볼 수 없어 브런치에 옮긴다.
선정 기사 https://nyti.ms/2C7zLBC
페미니즘은 우리 시대에 중요한 의제입니다. 제 일상 안에서도 페미니즘은 점점 더 큰 의미가 되고 있습니다. 지지 안에서 피해 경험을 힘주어 말하고, 직업인으로서 불평등한 환경을 이야기하는데 망설이지 않으며, 함께 모여 시도를 만드는 여성을 더 자주 목격하고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49%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말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페미니즘은 정치 영역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을 2017년 당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2018년에는 페미니즘 정책을 내세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이고, 여성 장관 비율은 27.8%입니다. 전국 가임기 여성 지도와 같은 터무니 없는 행보도 마주합니다. 일상에서 무언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고무감이 단번에 상실되고 허무해지죠. 정치는 항상 현실의 변화를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정치에 유독 변화가 느린 것은 정치의 영향력이 구조적이고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맥이 빠지기만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를 통해 몇 발 앞선 미래에 갈 수 있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현실로 앞당길 수도 있을테니까요. 제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여러모로 이전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높아지고 호응도 커졌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변화가 더뎌서 허망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정치는 페미니즘이라는 변화의 흐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페미니스트 총리 쥐스탱 트뤼도를 보면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2015년에 캐나다 정권을 10년 만에 바꾸고 내각 성비를 동일하게 구성하면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냐는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라고 답을 했거든요.
이후에도 자신은 페미니스트이며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남성 정치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이 유난한 일이 되지 않을 때까지 꾸준히 이야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덕에 젊은 여성 유권자에게 큰 지지를 받았고요.
하지만 최근 쥐스탱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의문을 제기받습니다. 쥐스탱이 대기업의 뇌물 수사를 무마하고자 여성인 법무부 장관 조디 윌슨 레이볼드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조디 윌슨-레이볼드 법무장관과 제인 필포트 재무장관은 쥐스탱을 강력히 비판하며 사임했습니다. 초대 내각을 구성할 때 선임한 뛰어난 여성 장관이 사임하면서 페미니스트 총리로서의 정당성을 크게 잃게 되었죠.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정책을 만들어내고 선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사 내리는 의사결정에 큰 무게가 실린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결정이 온전히 여성 이슈에 집중한 내용이 아니라고 해도요. 다시 말하면 페미니즘 정치는 ‘어떤 지원과 정책을 만들어내는가’ 보다는 ‘페미니즘을 기준으로 일관된 의사결정을 만들어내는가’에 더 방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일관된 의사결정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니까요. 개인의 실책이 모두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발생된 것처럼 해석되기도 하고 페미니스트로서의 모든 진정성을 단숨에 통째로 의심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려우니까 페미니스트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접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 더욱 강하게 의사결정의 중심에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까요? 스웨덴의 정치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스웨덴은 2014년부터 정책에 접근하고 결정하는 방식에 페미니즘을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정부 홈페이지에는 국가가 스스로 ‘페미니스트 정부’라 말합니다.*
* 관련 기사: This Is What a Feminist Country Looks Like (The New York Times, 2019.3.8)
특히 외교 정책은 의사결정부터 자원 배분까지 우선 순위에 페미니즘을 두고 있는데요. 스웨덴의 외무부 장관인 마르고트 발스트룀은 페미니스트 외교 정책을 위해 통상적으로 세 가지 질문을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는가?
의사결정권자에 여성이 있는가?
자원이 여성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가?
이 기준에 따라 스웨덴 외교 정책의 목표에는 여성의 신체적, 심리적, 성적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사회의 모든 영역에 대한 정치적 참여와 영향력, 경제적 권리와 임파워먼트 등을 포함합니다.
근본적인 정책에도 페미니즘 관점이 녹여있습니다. 싱글, 입양 관계없이 부모는 480일 간의 육아 휴직을 나눠 쓸 수 있고 390일은 임금의 80% 를 받습니다. 싱글 부모에게는 100% 제공되고요. 미취학 아동부터 공립 교육 기관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에 제한되지 않도록 호칭부터 신경써서 교육합니다. 정부에서는 성 중립성을 갖는 단어를 만들어 젠더 구분이 있던 단어들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는 인칭대명사 ‘hen’ 처럼요.
여성 정책에만 제한하지 않고 교육, 외교, 복지 등에도 페미니즘을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페미니스트로서 자격이 있는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통된 태도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지향을 합의하고 고민하며 그에 맞는 판단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여성 장관 비율은 52%이고 국회의원 비율은 43.6%입니다. 이 결과도 각 정당에서 자발적인 당의 원칙을 수정해 여성 공천 비율을 높이고 노력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정치인들이 페미니스트를 선언하고 페미니즘 정책을 이야기할 겁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표심을 위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와 이미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 미래로 데려다 주길 바랍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고무감을 현실의 정치에도 느낄 수 있도록요.
페미니즘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일관된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 미래는 저절로 그려질거라 믿습니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되는 것은 이렇게나 단순합니다. 아주 어렵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