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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n 11. 2021

불편한 사이

 어제저녁부터 날이 흐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축축한 땅을 신나게 밟고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제법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적당한 선이 있지만, 오히려 선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좋은 사이인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서 선이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마냥 편하지 않다는 뜻으로 관계 사이에 선이 있고, 그 선을 지키는 사이를 말합니다. 개인의 사연을 다루는 것에서 특히 그 선은 중요합니다. 선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십거리를 좋아해요. 개인이 어떤 고통을 안고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이 가진 이야기 자체를 도마 위에 올리고 사람들을 모아 사연 품평회를 여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선이 없으면, 개인의 사생활이 위로와 축하의 대상이 아닌 그저 가십거리가 됩니다.


 대화를 나누고 나면 무언가 마음 가득 채워지지 않고 오히려 텅 빈 것 같을 때가 있으신가요? 저는 주로 선이 없고 배려가 없는 사람과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선이 없는 그들의 도마에 올려질 것을 생각하면 대화를 나눈 후 뒤돌아서면서 괜히 찜찜해질 때가 있어요. 대화 또한 취조 형식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작은 일도 크게 부풀리고, 사소한 실수도 큰 잘못이 되는 경우를 종종 겪었습니다.


 때로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합니다. 주로,

 "그걸 뭐하러 그렇게 해?"

 "에이, 그건 유난이다."

와 같은 말로 열심히 하거나 세심한 사람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죠.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선을 조금 굵게 긋기를 조심스레 추천드립니다.


 반면 선이 뚜렷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제법 편안합니다. 그들이 그어놓은 금을 함부로 밟지 않으면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소재들로 가볍게 대화가 가능해요. 예를 들자면,

 "오늘 날씨 좋죠?"

 "어제 그 드라마 봤어요?"

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에요.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보면 즐겁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러다 분위기를 타고 대화의 깊이가 깊어지면 조금 더 자세한 사생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선을 지키고 배려하는 사람은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내색을 하면 얼른 화제를 전환합니다.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고, 동시에 따뜻해집니다.


 힘들 때 손 내밀면 덥석 잡아주는 사람 못지않게 무례하지 않은 대화를 위해 신경 써주는 사람에게는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더불어 나와의 대화가 그 사람에게도 영양가 있는 대화였기를 기대하며 더욱 신경 써서 선을 지키려고 합니다.


 대화는 내뱉는 동시에 채우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위로나 재미, 기쁨과 같은 것들을 말이에요. 이야기를 나눈 후에 되려 더욱 허무해지는 대화는 지양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배려하고 선을 지키며 대화하는 습관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 나누는 대화들로 무언가를 그득 채워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는 오늘 채우는 대화를 나누셨나요? 부디 대화의 즐거움을 누린 하루를 보내셨길 바랍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립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고 저는 내일 또 편지하겠습니다. 남은 하루도 좋은 시간으로 가득하시길.


21. 06. 11. 금.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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