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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n 15. 2021

감정의 소모

 하늘에 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밤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셨는지요? 저는 오랜만에 바쁘게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앓아야 할 감정들을 앓고 있습니다. 일을 하느라 등지고 있던 감정들이 일을 마치자마자 몰려오더군요. 


 우리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은 정해져 있습니다. 전날 얼마나 충전했느냐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지죠. 감정도 체력과 같습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감정의 양이 정해져 있어요. 오늘 저는 소모해야 하는 우울이 있지만 일을 하느라 미루어 두었던 것을 지금 앓고 있어요. 충전된 우울을 조금씩 소모하며 감정들이 어떻게 소모되는 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충전과 체력소모, 감정소모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해보았어요. 우선 체력을 가장 적게 쓰지만 효율이 높은 기쁨. 기쁨이 충전되면, 비가 와도 기분이 맑습니다.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에 비해 기쁨은 소모되는 속도가 느려 어쩌면 하루 종일 기쁜 날이 될 수도 있지요. 이런 날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을 하거나, 나들이를 가거나, 취미생활을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이어가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체력을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대표적으로 슬픔과 우울이 있습니다. 슬픔은 감정 중에서도 충전시간이 가장 짧아요. 어떤 슬픈 사건이 일어난다면 아주 단시간만에 충전이 가능하고, 기쁨만큼 오래 유지되는 감정입니다. 우울은 슬픔과는 조금 다릅니다. 가라앉는 것은 비슷하지만 슬픔보다는 우울이 잔잔한 편이에요.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픈 감정입니다.


 세 감정을 소모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기쁨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쁜 일에 혹은,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충분히 나누어 쓰면 됩니다. 기쁨은 활용성이 좋아 어디든 쓸 수 있습니다. 슬픔은 말했듯이 오래 유지됩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소모해버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슬픔을 오래 안고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눈물을 흘리는 방법을 특히 추천드리는데, 눈물을 삼키고 애써 슬픔을 눌러 참고 있으면 고인 눈물을 먹고 슬픔은 더 자라게 됩니다. 저절로 충전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빨리 소모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슬픔이 소모되어야 기쁨이 충전될 자리가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우울은... 우울은 사실 어떻게 소모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에게 우울은 충전할 필요도 없이 몸에 늘 상주하는 감정입니다. 자고 일어나지 않아도 충전되어있고, 자고 일어나도 충전되어 있는 감정입니다. 우울은 슬픔을 동반하기도 하고 잠시 기쁨과 섞일 수도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라 오랜 시간 함께 있어보아도 다루는 방법을 영 모르겠어요.


 외면해본 적도 있고, 대면해본 적도 있지만 둘 다 통하지를 않더군요. 주로 잠으로 외면하는데, 그것은 소모가 아니라 정지의 개념인지 자고 일어나도 괜찮아지지는 않았습니다. 홀로 일기를 쓰거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대면해보아도 해답이 없기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시간에 기대어 저절로 우울이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기쁨과 슬픔을 충전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쩌다 기쁨이 충전되어도 너무 적은 양이 충전되다 보니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있어요. 얼른 우울을 다루는 방법을 깨닫고 기쁨을 넉넉하게 충전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당신께서는 기쁨과 슬픔을 충전하는 방법, 혹은 우울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계신다면 저에게 깨달음을 조금 나누어주세요.


 저는 오늘치 우울을 짧은 시간 내에 감당할 수가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보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우울은 멈추어 있겠지만, 기쁨이 조금 충전되어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옵니다. 덥지 않게, 너무 춥지도 않게 편안한 밤을 보내시길 바랄게요. 저는 내일 또 편지하겠습니다. 남은 하루 즐겁게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21. 06. 15. 불.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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